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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흑산면 영산리.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두 시간, 다시 통통배를 갈아타고 10여 분을 더 들어가야 그 고운 자태를 드러내는 자그마한 섬. 어쩌면 평생 단 한번 만날 기회조차 없을지 모를 그 이름. 그런데 아주 우연한 기회 덕분에 그 이름이 실체가 되어 성큼 다가왔다. 촛불 정국이 격동으로 치닫던 2008년 7월 초, 벼락이 쳐 인터넷마저 끊어진 영산도에서 보낸 한 주. 그 곳에 살고 있는 산자락, 바다 풍경, 돌담, 자그마한 분교, 할머니들 얼굴, 통통배, 장대한 소나무와 함께 한 조용하고 그윽한 일상이 이번 이야기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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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취향을 듬뿍 살린 여름 특집을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뭘 할까 생각해봤지만 별 게 없다. 유독 올 여름엔 자주 집을 나갔으니, 여행기 비슷한 걸 써볼까 생각했다. 영산도 이야기를 쓰기로 결정했다. 왜 하필 영산도? 거기가 어딘데? 라고 묻는다면, 개인적인 얘기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공무원 생활을 하셨다. 지방에는, 제아무리 깡촌이라도 '보건진료소'가 있다. 부락을 모아 단위를 만들고 주민들의 기초적인 건강 생활을 살피는게 목표다. 어머니는 충북 영동에서 15년 넘게 일하시다 최근에 영산도로 자리를 옮기셨다. 그러니까 영산도 여행은-뭐 굳이 여행이라고 붙이기도 무색하지만- 부모님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들여다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침 여름이니 휴가를 겸하기도 좋다. 그런데 이것봐라. 목포까지만도 까마득한데 목포에서 영산도까지는 더 까마득하다. 기차타고 배타고, 또 배 갈아타야 도착하는 고난이도 여행길, 거기다 초행길. 어쨌든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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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기차를 타고 어쨌거나 목포에 도착했으니 반은 왔다고 생각한 순간 반전 등장. 목포 여객 터미널에 배표를 사러 갔더니, 이럴 수가. 흑산도로 향하는 배는 하루 한 대. 그것도 출발 시각이 아침 7시 50분인 것이다. 편도에 3만원 돈인 비싼 요금이야 그렇다 치고 오늘 하루 숙박은 어쩌나 싶었다. 방을 잡고 가방을 푸니 긴장도 설렘도 화르륵 사그라진다. 뱃길 여행이 쉬운게 아니었구나. 가는 길만 1박 2일. 차비만 해도 왕복 20여만 원. 여길 또 올 수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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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배를 탈 때 주의법. 자세를 낮추고 최대한 좌석에 몸을 밀착시킨다. 특히 목포에서 흑산도로 향하는 배는, 그러니까 가까운 바다에서 먼 바다로 나가는 셈이라 처음엔 견딜만 해도 한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배멀미를 하게 마련이다. 비닐 봉지 한 개쯤 준비하는 센스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정신 차리기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일찌감치 화장실 근처에 자리를 잡는 게 좋을 듯. 통로 곳곳에는 오바이트 용 휴지통이 상시 대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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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끝에 흑산도에 도착했다. 영산도 행 통통배를 타는 것이 다음 코스. 푯말도 없는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다 보면 영산도 주민들 중 대부분을 만날 수 있다. 방금 만 퍼머 머리를 분홍색 보자기로 곱게 싸 묶으신 할머니는 다름 아닌 통통배 최선장님의 어머니. 인사 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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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 안개가 걷힐 때, 안개가 깔릴 때. 안개가 산허리에 걸렸을 때와 산머리를 휘감았을 때. 한 낮일 때와 저녁 즈음일 때. 영산도의 전경은 시시각각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카메라를 들고 동네 일대를 한 바퀴 돌았다. 여기서는 새소리, 파도소리, 바람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쩌다 한번은 선장님 목소리가 마을을 울린다. "아아! 알려드립니다! 내일은 도선(도에서 운행하는 배) 정기 점검이 있어 운행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내일은 도선 정기 점검이 있어 운행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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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날
전교생 10명도 안되는 흑산초등학교 영산분교. 젊은 부부교사 두 분과 행정직 선생님 한 분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신다. 뱃일 나가는 어른들이 많다보니 아이들은 거의 학교에서 살다시피 한다고. 사실 섬이건 시골이건, 도시 사람들이야 가끔 오니 한적하고 조용해 좋은 것이지 지역민 입장에서는 굉장히 무료한 환경이다. 어른들도 심심할 지경인데 애들이야 오죽할까. 탁구대, 농구대, 각종 운동기구 및 오락거리 기증 대환영. 방문시 필수요소는 귀하디 귀한 과자 한 박스. 우편으로도 받습니다. 주소는 전남 신안군 흑산면 영산리 흑산초등학교 영산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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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날 영산도의 맛을 찾아서. 요즘 영산도는 농어가 제철이다. 농어는 성질이 고약하여 잡히면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어디든 머리를 찧어 스스로 죽고 마니, 자연산이 뭍에서 살아 돌아다닌다는 것은 죄다 사기라는 말씀. 부모님의 친구이신 영산교회 장집사님께서 친히 납시어 농어회를 뚝뚝 썰어주시고 쓸개주도 만들어주시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자연산 구별법을 전수해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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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도 섬 주변은 죄다 홍합, 다시마 천지다. 여기서 양식하는 홍합과 다시마는 주로 일본에 수출하는데 수익은 섬 주민 전체에게 돌아간다고. 서울 포장마차서 보던 껍데기가 반질반질하던 홍합이 아니라, 저렇게 돌이끼가 덕지덕지 붙은 것을 보니 이제껏 뭘 먹었나 싶다. 물에 데친 다시마도 영양만점!

여섯째날
모터보트를 타고 영산도 일주. 이날을 맞이하기까지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다. 잔잔한 앞바다만 보고 왜 배 안태워주느냐며 땡깡 부렸다간 혼난다. 섬 뒤쪽에선 파도가 미친듯이 치고 있으니까. 안개가 시야를 가리지 않을만큼 높이 떠 있어야 하고, 뭐 이래저래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섬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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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 000'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호들갑스러운 리포터가 등장해 배 위에서 바로 잡은 생선회를 맛보며 온갖 감탄사를 남발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TV를 보시던 우리 할머니, "무슨 팔자를 타고 나야 돈도 벌고 회도 먹노?" 그래, 기회가 왔구나 했건만 결과는 실패. 오늘의 교훈, 영산도엔 장마 끝나고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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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꽃미남 안재호 군(4세)의 포즈가 만들어낸 시대의 걸작, 작품명 <바닷가의 소년1>. 어쨌거나 이 어린이에겐 토마스 기차도, 뿡뿡이 자동차도, 플레이타임도 없어 심심하기 그지 없었을 인내의 시간도 드디어 끝을 바라보고 있다. 도시인들이 쉽게 생각하듯, 시골 생활이든 섬 생활이든 자연의 판타지도, 여유와 낭만의 시간도 길진 않다. 인간의 주도권을 용납하지 않는, 말 없이 행동으로만 보여주는 자연은 자주 무섭고 매우 고요하다. 그러나 "하면 된다. 안됐으면 네가 못난 탓"이라고만 말하는 비정한 세상에서 기력이 바닥났다면, 인간에게 이겨보라고 강요하지 않는 대자연의 손바닥 위에서 조용히 놀아보는 것도 좋겠다. 송순진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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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올리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은 여행이예요.
    그런데 정말 큰 맘 먹고 가지 않으면 해내기 힘들것 같은 ㅎㅎ
    올 여름 바닷가는 커녕 계곡에 발 한번 못 담가 본 저로서는 너무 부러운 여행기예요~

    2008/08/12 17:53
    • Favicon of http://film-on.kr BlogIcon 엄훠나  수정/삭제

      영산도가 그리 쉽게 갈 수 있는 섬은 아니지만, 일단 한번 가보시면 후회는 않으실거라는..^^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10/09 14:18
  2. Favicon of http://sammul12@hanmail.net BlogIcon 강을순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름다운 영산도를 소개 하신 송순진 기자님 감사 합니다.
    농어 낚시의 달인 장 통철씨는 영산교회를 이끄시는 집사님 입니다.
    농어 맛 홍합 맛 , 전복 해삼 맛 그리고 석주대문 등 영산도의 자연산 맛과
    멋을 느끼려면 아름다운 영산도에 또 오세요. 환영합니다.

    2008/08/31 19:38
    • Favicon of http://film-on.kr BlogIcon 엄훠나  수정/삭제

      ^^ 지적 감사드립니다. 언제든 기회가 되면 또 찾아뵙겠습니다.

      2008/10/09 14:19
  3. 정다은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하고 현재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계신곳이기에
    검색하다가 우연히 이곳까지 오게되었습니다.
    마치 제가 영산도에 있는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멋진 사진과 글 잘보고 갑니다^^

    2008/10/08 17:10
    • Favicon of http://film-on.kr BlogIcon 엄훠나  수정/삭제

      여행기로 부족한 점이 많은 글인데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10/0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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