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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의 마지막 게임. 고담시를 향한 조커의 대대적인 테러 경고 발동 후 고담시 시민들은 그가 경고한대로 폭탄이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교량을 피해 배를 타고 이 저주받은 도시를 벗어나려 한다. 이제 막 고담시를 떠난 배 두 척. 그 중 한 척에는 안전지대로 피신하려는 일반 시민들이 가득 차 있고, 나머지 한 척에는 붉은 죄수복을 입은 죄수들이 간수들의 지시에 따라 엉겁결에 배에 올라타 고담을 벗어나려 한다. 이윽고 두 척의 배가 강 한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선박 아래 숨겨진 거대한 양의 폭탄이 발견되고 동시에 곱게 포장된 뜻 모를 기폭장치까지 승객들의 눈에 노출된다. 곧이어 선내로 울려 퍼지는 조커의 지령. 주어진 기폭장치는 상대편 배에 장치된 폭탄의 기폭장치이며, 스위치를 누르면 상대편 배는 폭발하지만 자신의 발아래 장치된 폭탄의 기폭장치는 자연히 해제되며 생존할 수 있다. 단, 이 딜레마를 견디지 못하고 배 밖으로 뛰어내리는 사람이 있으면 자연히 게임 아웃. 물론 두 배 모두 12시까지 스위치를 누르지 않으면 양쪽 배의 승객 모두가 죽는다.  

처음부터 양쪽 모두의 생존을 담보하는 경우의 수를 제외했기에 ‘죄수의 딜레마’보다 더욱 처절한 딜레마로 사람들을 몰아넣는 조커의 선상 게임은 <다크 나이트>에서 펼쳐지는 코스모스(질서)에 대한 카오스(혼돈)의 개입을 극대화한 장면이자 전면적인 실험이며 동시에 실재하는 현상을 압축한 장이다. 정의수호를 위해 고담시의 밤을 활보하는 배트맨이 결코 의로운 영웅의 선에서 가볍게 재단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와 다를 바 없는 무법자나 혹은 그를 좇아 박쥐 가면을 쓰고 자경단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선동가로 낙인찍히며 외부세계에서는 끝내 코스모스와 카오스의 경계선에 서있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다크 나이트>의 세계는 선악이 공존하고 또 선과 악이 언제든 위상을 바꿀 수 있는 실제 세계와 밀착해 있다. 실제로 범죄의 발본색원을 목표한 배트맨과 하비 덴트의 강박적인 정의수호는 여타의 <배트맨> 시리즈와는 달리 실재하는 현실세계의 악에 더욱 집중한다.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규정한 악이란 다름 아니 고담시 내에 존재하는 거대한 갱 조직들이며 이는 국가 단위의 조직이 관여해도 청산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기틀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게다가 이들은 경찰이나 검찰마저 포섭하며 고담시 전체를 야금야금 잡아먹고 있는 실정. 배트맨과 검사 하비 덴트의 싸움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극단의 선과 극단의 정의, 극단의 신념을 확인하는 작업과 일치해야 하는 것도 어느 순간 당연해 보인다. 그리고 이 극단의 작업에 서린 절대적인 패배가 암시하듯 영화는 명쾌한 결론도 또 완벽한 승리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쓰디쓰게 재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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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선보인 슈퍼히어로물은 무수히 양산된 그 양도 양이지만 질적 측면에서 확연한 성장을 이루며 등장 때마다 새로운 가능성을 속속 선보였다. <다크 나이트>는 이런 흐름에 정점을 차지하는 영화일 뿐만 아니라 모든 슈퍼히어로물의 공통의 논제를 가장 어둡고도 진중하게 다루는 작품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그의 모든 전작들에서 ‘복수’의 코드를 내세워 왔듯이 <다크 나이트>에서도 하비 덴트를 내세워 복수는 선이나 악으로 정의내릴 수 없는 치열한 자기 파괴의 과정임을 다시금 언급한다. 전작인 <배트맨 비긴즈>에서 배트맨의 탄생에 집중해 검은 스프레이로 갑옷을 색칠하는 인간적인 영웅의 모습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이라는 두 개의 가면 아래 감춰진 기저의 욕망을 탐구하는데 집중했던 그의 작업은 이번엔 <다크 나이트>로 잔혹한 세계와 직면한 개인의 신념어린 욕망을 실험한다. 보통 사람들이 세상을 변혁시키기 위해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에 반해 세계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코스모스의 전도사 배트맨과 카오스의 전도사 조커의 충돌은 그렇게 영웅이란 이름에 맺힌 가치를 완전한 희생과 소멸로 귀결시킴으로써 이 실험에 대한 진중한 보고서를 제출한다. 뿐만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묵직한 물음들마저 끊임없이 생산해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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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무시하고 자행되는 한 개인의 음습한 자기만족이나 강박증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배트맨의 활동은 정의로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만큼 영화의 세계는 실제 세계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코스모스도 완벽한 카오스도 아닌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또한 배트맨을 위협하는 조커가 본명도 주소도 지문이나 치아기록조차 없는 완전한 무(無)에 근거하고 있는 것은 그의 존재가 지나친 선에 의해 탄생한 강력한 반발제이며 동시에 배트맨이라는 ‘비뚤어진 존재’를 향한 테러임을 환기시킨다. <다크 나이트>는 이를 통해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 선보인 배트맨과 조커의 상관관계보다도 더욱 직접적인 관계를 직조해낸다. 이는 팀 버튼이 조커를 브루스 웨인의 부모를 죽인 인물로 지정하여 훗날 브루스 웨인을 배트맨으로 화하게 한 직접적인 원인으로 그리며, 또 마찬가지로 갱단 부두목 잭이 배트맨에 의해 얼굴에 총을 맞고 화학물질에 빠져 조커가 된 것으로 설정한 것과는 분명 다르다. 오히려 그 관계에 비하면 <다크 나이트>에서의 둘은 한참이나 소원한 관계에 놓여 있는 듯하다.

그러나 팀 버튼이 부여한 배트맨과 조커의 개인적인 관계들에서 벗어나 세계 자체를 상대로 펼치는 <다크 나이트>의 배트맨과 조커는 오히려 더욱 면밀한 관계를 맺는다. 배트맨과 조커 각각이 지닌 거대한 불만은 그 방향은 서로 반대를 향하지만 가늠할 수 없는 불만지수의 그 엄청난 수치만큼은 지극히 일치하기에 더욱 거대한 그림을 그리며 꽉 맞물린 선과 악의 모습을 이끌어낸다. 말하자면 <배트맨>에서는 배트맨과 조커가 서로의 탄생신화에 직접적 원한을 개입시키며 개인 대 개인의 싸움을 하고 있는 데에 반해, <다크 나이트>에서의 배트맨과 조커는 처음부터 세계 자체를 동전의 양면처럼 단면화한 뒤 각각의 세계를 대변하는 한 편에 서서 치열한 전투를 지속해나간다. 물론 이 전투는 선과 악의 아마겟돈이 아니다. 또한 코스모스와 카오스의 전쟁도 아니다. 애초부터 ‘카오틱 코스모스’와 ‘코스믹 카오스’였던 둘의 대결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 사이에 백짓장 한 장 정도의 차이만을 남겨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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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는 개인의 직접적인 대립관계 속에 배트맨과 조커를 몰아넣지 않기에 훨씬 더 효과적으로 주제와 현실세계 자체를 포괄한다. 사람들이 지금껏 쌓아오고 답습하고 교육받은 모든 것들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조커의 테러는 그 자체로 문명과 질서, 코스모스에 대한 전면충돌을 형상화한다. 또한 존재조차 모호한 그가 자신의 입 꼬리를 찢은 상처에 대해 일부러 여러 번 다른 에피소드로 구축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존재에 대한 근원은 맨 처음 그가 언급한대로 단순히 어렸을 적 학대에 기인하는 것으로 확신할 수 없을 만큼 모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그는 더더욱 공포스럽다. 팀 버튼의 <배트맨>에 비해 둘 사이의 관계는 헐거워졌지만 관념적으로 (또 실제적으로도)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어나가며 구체적 형상의 대리물로 맞대결하는 두 사람. 투페이스의 존재가 증명하듯 어느새 배트맨과 조커라는 극단의 존재는 곧 동류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이는 코스믹 카오스와 카오틱 코스모스가 완전한 동량이며 마침내는 카오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비 덴트가 동전을 던지는 행위는 언뜻 운에 의존하는 방법으로 비치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확고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상징하는 행위였다. 이렇듯 조커의 마지막 카드인 하비 덴트의 투페이스화는 동전의 양면, 즉 코스모스와 카오스의 밀접한 관계를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하비 덴트가 아닌 투페이스가 던지는 동전이 어느 순간 잔혹한 방아쇠가 되는 것은 선과 악의 명쾌한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다크 나이트> 세계에 대한 은유인 동시에 우리의 세계를 향한 직접적 은유이기도 하다. 어느 있는 집 자식의 박쥐인간화는 처음부터 한 개인의 복수를 위함도, 세계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다크 나이트>는 이 모든 만화적인 설정들을 온전히 현실 세계의 치열한 다툼 속에 꾹꾹 밀어 넣으며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현실이며 가장 현실적인 영웅담임을 체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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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니콜슨의 광대 조커와는 전혀 다른 히스 레저의 ‘지옥의 광대’ 조커는 섬뜩한 화장과 움추린 목, 입맛을 다시며 가끔씩 혀를 날름대며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화면을 압도한다. 범죄에도 명예와 존경이 필요하다는 외침에 낄낄대며 침을 뱉는 듯한 도입부의 은행털이 신부터 시작해 갱단 수뇌부들의 회의장에 홀로 들어와 ‘연필마술’을 선보이며 좌중을 압도하는 이 새로운 조커의 존재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묵직한 철학의 축을 오로지 장르영화적 마술로 구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히스 레저의 조커 안에는 호러와 스릴러와 드라마와 액션이라는 장르영화의 불균질한 캐릭터성이 모두 녹아 있으며 이는 계속해서 목적을 바꿔 설명하는 그의 불확실성과 비정형성을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형상화하는 동시에 ‘무(無)로 존재함’이라는 역설을 긍정할만한 가장 독창적인 모습을 창조해낸다.

이렇듯 장르영화에 기반을 둔 <다크 나이트>는 상업영화의 스펙타클 측면에서도 정점의 경지를 이룬다. 트레일러를 180도 회전시키는 장면이나 배트포드 체이스신, 마천루를 비행하는 배트맨의 모습 등은 하나같이 진귀한 장면들이다. 이 모든 것을 완벽히 이끌어내며 처연한 자기희생적 영웅을 구현한 <다크 나이트>는 분명 올 한해 장르영화의 최정점을 차지하는 작품이다. 동시에 거대한 지옥도를 관객의 코앞까지 들이밀며 머릿속까지 강박하면서 전혀 다른 축에서조차 중요한 지점을 점거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배트맨과 조커가 그랬듯 양 극단의 가치를 결국 하나의 카오스로 구현했던 <다크 나이트>는 가장 상업적인 틀 안에서 가장 진중한 현실의 세계를 포착해낸다. 강상준 기자 (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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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zinsayascope.com BlogIcon 진사야  수정/삭제  댓글쓰기

    심층적인 평 잘 읽었습니다.^^

    메인 포스터에서 비춰진 잿빛 풍경이 영화 속 모든 분위기를 설명하는 영화였죠. 포스터 보고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_+ 보면서 배트맨이 왜 그리 안되어 보이던지요.
    조커 무섭더군요. 후덜덜덜 역시 괜히 호평을 듣는 게 아니었어....

    여전히 고든 형사 귀환 시퀀스는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좀 안 되지만, 결론적으로는 볼만했습니다.
    아이맥스로 다시 볼까 하고 있습니다. 꼭 아이맥스판으로 확인하고 싶은 장면도 있구요 :-)

    2008/08/09 08:59
  2. 김성희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간신히 매진 직전의 표를 사서 보았습니다. 쓰신대로 정말 멋진 영화였어요.
    보면서 배우의 죽음이 얼마나 안타깝던지요... 살아있었다면... 전세계적인 대스타가 되었을텐데...
    영화내용과는 상관없이 마음이 짠합니다.

    2008/08/1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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