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기 위해 버리고 잊어야할 것들이 있다. 인정하고 싶진 않겠지만 누구나 그 과정을 거치고 어른이 되듯 록커를 꿈꾸던 켄지 역시 젖먹이 조카를 키우기 위해서는 편의점 사장이라도 되어야 했고, 또 공터에 비밀기지를 세우고 정의의 사도가 되어 악의 무리와 맞서 싸우리라 다짐했던 어릴 적 일들도 자연히 유치한 짓거리나 하찮은 일들로 치부해야만 했다. 밥 딜런이나 존 레논과 함께 했던, 그리고 <내일의 죠>나 <거인의 별>을 읽으며 마을 공터를 뛰놀던 삶은 더 이상 다 자란 편의점 사장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는 지나간 시간일 뿐이다. 이는 아들을 잃고 절망에 빠진 엘리트 사원에게도, 사무기기 외판원이나 공항 세관원, 또 국수집 사장이나 팬시점 주인에게도 마찬가지다. 하나둘 흘려보낸 꿈들이 어느새 작은 섬을 이룬 어른들에게 추억이란 그렇게 잔인한 이름이 되어 묻어야 할 시간일 뿐. 그게 어른의 삶, 바로 고단한 20세기 소년들의 평범한 생활이며 현실이다. 켄지 일행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20세기는 처음부터 그런 시간이었던 건지 모른다.
어릴 적 낭만어린 시간들을 토대로 종말론과 SF를 아우르며 그로테스크한 미스터리 스릴러를 쌓아가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0세기 소년>은 사이비 종교를 위시한 종교적 맹신과 무기력감이 만연한 세기말 풍경에 20세기의 향수를 덧칠하며 과거지향적인 모험담을 창조해낸다. 이 생경한 만남은 고단한 현실이 치여 사는 평범한 생활인들에게 세계를 구할 ‘정의의 용사’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마침내는 슈퍼히어로와 거대로봇이 활약하는 옛날 만화와 70년대 올드락의 향취까지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엮어가는 주요한 코드를 부각시키며 전대미문의 근미래 모험담을 이끌어낸다. 거대로봇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바이러스로 전 인류가 말살 당할 것이라는 꼬마들의 가당치도 않은 상상을 담은 ‘예언의 서’에 따라 파멸을 향해가는 세기말 상황은 켄지 일행의 초등학교 시절인 1969년부터 20세기말, 그리고 마침내 독재자 ‘친구’의 세계정복시점인 21세기까지 이어지며 20세기의 추억을 무기로 싸워야 하는 ‘어른아이’들의 장대한 이야기를 완성한다. 과거의 뿌리를 쫓는 과거지향적 모험, 즉 켄지 일행이 꼬마 시절의 사소한 추억들까지 모조리 상기해내며 겪는 모험은 곧 우라사와 나오키가 선사하는 20세기의 상징어들을 뒤쫓는 모험이 된다.
엔도 켄지(카라사와 토시아키)
12개국에 출간되어 발행부수 2천만 부를 자랑하는 초특급 베스트셀러. 이 숫자를 스크린으로 환원하기 위해 3부작, 60억 엔(600억 원)이라는 숫자를 대입시킨 영화 <20세기 소년>‘제1장 강림 편’은 훗날 ‘피의 대그믐날’로 회자되는 2000년 12월 31일의 참상을 클라이맥스 삼아 평범한 현대인들이 자신의 생활을 버리고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기까지의 과정을 영화화하고 있다. ‘친구’의 존재를 파헤쳐 가는 본격적인 모험담과 ‘친구’가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하며 암울한 미래세계 이야기를 앞둔 3부작 시리즈의 1편은 원작에서 그대로 건져 올린 듯한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141분이라는 비교적 긴 러닝타임 안에 별다른 영화적 가공이나 재해석 없이 원작을 영상화한다. 원작의 중요한 장면의 경우 구성, 구도, 연출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캐릭터의 경우에는 만화 속 캐릭터의 외관을 꼭 빼닮은 배우를 캐스팅한 것은 물론이고 의상까지 원작 그대로 활용하는 등 영화는 처음부터 성서화된 걸작에 대한 맹신적 해석을 목표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 개개인에게 깊이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덧붙이며 각자의 히스토리를 이야기의 거대한 줄기와 면밀히 결합시키는 우라사와 나오키 특유의 방식은 매체의 한계 상 전혀 발휘되지 않는다. 또한 세계 멸망의 전조가 어릴 적 공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설정을 진중하게 밀어붙이고 있지도 못해 실재하는 시설(하네다 공항, 일본 국회의사당 )에 대한 가공할 폭발신이 연이어짐에도 영화는 이 모든 사건들이 켄지 일행의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한계를 깨뜨리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무엇보다 ‘친구’의 정체에 대한 미스터리로 구심점을 이뤄야할 이야기가 그 초유의 궁금증만은 쉽게 희석시키며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편으로 이양하는 듯한 태도는 애초부터 관객의 타깃을 <20세기 소년>의 만화팬으로 한정짓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오치아이 쵸지, 일명 오쵸(도요카와 에츠시)
전 세계 38개국으로부터 선 판매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 <20세기 소년>은 처음부터 우라사와 나오키의 걸작만화에 대한 기대감에 한껏 의존하고 있는 영화다. 그러나 아무리 초특급 베스트셀러라 해도 읽은 사람보다 읽지 않은 사람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법. 또 다른 결말을 예고하고 있는 2편 역시 방대한 세계관을 아우르는 명작만화의 영화화에 의의를 두고 기존 만화팬들에 대한 서비스 정신에 의존하는 모습만을 보여준다면 영화는 앞으로도 겨우 <20세기 소년>을 읽지 못한 사람을 향한 필독의 이유를 마련하는데 그칠 게 분명하다.
어쩌면 20세기 상징어에 대한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의 상징적 만화에 대한 도전 자체가 처음부터 무모한 모험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원작의 아우라가 대단하다 할지라도 3부작 동시제작으로 완성된 600억짜리 블록버스터가 원작의 존재감을 배가시키는 데에 그치는 것은 원작자이며 동시에 영화의 각본을 맡은 우라사와 나오키도 용납하기 힘든 사실임은 분명하다. 내년 공개 예정인 영화 <20세기 소년> 제2편과 3편은 <20세기 소년>의 국내 만화팬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일만한 명백한 이유를 담고 있길 기대해본다. 강상준 기자(FILMON)
영화 기본정보 감독 : 쓰쓰미 유키히코 출연 : 카라사와 토시아키(엔도 켄지 역), 토키와 타카코(유키지 역), 토요카와 에츠시(오쵸 역) 등 줄거리 세계를 잠식해가는 ‘친구’의 등장... 소년들의 ‘예언’이 현실로 뒤바뀌는 순간, 지구종말은 시작된다! 1997년 도쿄. 한때 록스타를 꿈꾸었지만 이젠 평범한 소시민이 된 켄지는 동창생 동키의 자살소식을 접한다. 그러나 켄지는 동키의 편지를 통해 그가 살해당했음을 확신하고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사건을..
20세기 소년 리뷰 - 원작의 아우라가 너무 컸다. 원작을 정말 재밌게 봐서 제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일까요? 극장문을 나서면서 약간은 씁슬하더군요. '20세기 소년'이 재미있는 이유중에 하나는 바로 '친구의 과연 누구일까?'하는 궁금증에 있습니다. 이미 친구가 누군지 다 아는 마당에 극의 흐름에 집중을 할 수가 없더군요. 게다가 원작 자체도 과거(주인공들의 어린시절), 현재(20세기가 끝날즈음), 미래(2015년)을 넘나는 이야기라 짧은 러닝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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