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연인이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재회하는 것만큼 불편한 상황이 또 있을까. 한창 사귈 때 사랑의 힘으로 돈을 빌려줬지만 결국 헤어지게 되고, 한참 뒤에야 빚의 존재를 알게 된 채권자가 어느 날 느닷없이 채무자를 찾아가 “그 때 빌려준 돈 당장 갚으라”며 손 내미는 대략 난감한 상황. 영화 <멋진 하루>는 토요일 아침부터 일어난 달갑지 않은 재회로 시작된다.
희수(전도연)는 생전 처음 가보는 경마장 곳곳을 뒤져 1년 전 헤어진 남자친구 병운(하정우)을 찾아낸다. 예전에 빌려주고 미쳐 못 받은 돈 350만원을 받아내기 위해서다. 허허실실 노닥거리던 병운 앞에 나타난 경직된 표정의 희수가 당장 돈을 내놓으라며 조용히 협박한다. 반갑다고 너스레 떠는 병운을 차갑게 무시하며. 그러나 병운은 이미 돈 한 푼 없는 처량한 신세.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다. “오늘 그 돈을 꼭 받아야겠으면 날 따라와.” 병운은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희수에게 갚을 돈을 꾸러 다니기 시작한다. 얼떨결에 따라 나선 희수는 병운의 ‘돈 꾸기 릴레이’에 동참하게 된다.
그런데 병운이 찾아가는 사람들이라고는 어째 죄다 여자다. 중년의 사업가부터 이혼 후 홀로 딸을 키우는 동창생, 의처증 남편을 둔 후배, 초호화 아파트에 사는 호스티스까지 천차만별의 여자들과 폭 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병운을 보며 희수는 그저 기가 찰뿐이다.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아는 여자들로부터 돈을 꾸며 되레 큰 소리 치는 병운이 황당하기만 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희수가 발견하게 되는 건 병운이라는 남자에 대해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실이며, 서울에 발붙이고 사는 여러 인간군상에게 비친 자신의 모습이다.
대한민국 둘째가라면 서러울 넉살과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인 병운은 알고 보니 사업 실패 후 이혼의 아픔까지 겪은 남자고, 희수는 약혼자가 졸지에 실업자가 되면서 파혼을 한데다 결혼한다고 회사까지 때려치운 터라 현재 백수 노처녀 상태다. 이들에게 서울의 화창한 토요일은 우울할 뿐이다. 그러나 어색하고 불편하게 시작된 두 사람의 하루는 이내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마법 같은 시간들로 변해간다. 하루를 꼬박 붙어 다니면서 희수와 병운은 사랑했을 때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병운을 ‘그깟 350만원도 안 갚는 뻔뻔한 놈’으로 여겼던 희수는 급기야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병운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마치 서울 곳곳을 누비는 로드 무비이자 미션 수행 게임처럼 보인다. 병운의 인맥을 한명 씩 찾아가 어떤 이에겐 100만원, 또 누구에겐 40만원, 형편 닿는 만큼의 돈을 꾸면서 350만원을 채워가는 과정이 ‘돈 꾸기 게임’을 관전하는 듯 익살맞다. 무의식적으로 남은 돈을 계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피식할 관객이 적지 않을 듯하다. 이렇게 350만원을 채워가면서 두 사람은 눈 마주치기도 꺼려하던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서 따사로운 과거를 공유한 옛 연인으로 변해간다.
전도연, 하정우가 힘 빼고 연기한 소품 같은 영화 <멋진 하루>에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익숙한 듯 새로운 서울의 모습이다. 로케이션으로만 촬영된 영화에선 고급 아파트부터 서민적인 동네까지 서울의 다채로운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경마장에서 출발해 바이크족의 파티에도 들렀다가 페스트 푸드도 먹고, 학교도 방문한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길을 찾아가다가, 불법 주차로 차가 견인 당해 지하철과 굴절 버스를 타기도 한다. 또 아침엔 화창했던 날씨가 오후가 되자 비로 바뀐다. 별다른 기교 없이 풍경화 찍듯 깔끔하고 무심하게, 그러면서도 섬세한 감성을 담아 스크린에 펼쳐지는 서울의 표정은 내가 알던 그곳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와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윤기 감독의 수수한 로케이션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희수가 무작정 병운을 찾아 간 이유가 단지 빚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30세를 넘긴 성인에게 손 떨릴 만큼 큰돈이 아닐 수도 있는 350만원. 옛정을 생각해 눈 딱 감고 떼어 줄 수도 있을 돈을 핑계로 희수는 병운을 찾아가고, 병운은 희수에게 잊지 못할 하루를 선물한다. 비로소 두 사람에게 남아있던 미련인지 앙금인지 모를 감정은 말끔히 사라지고 새 출발할 수 있는 용기가 만들어진다. 암울한 두 청춘이 얻게 된, 350만원보다 값진 깨달음다. 우연히 옛 연인을 만난 것처럼 아련하고, 억울하게 떼인 돈을 받아낸 것만큼 시원한, 강렬함은 없지만 깊은 맛이 계속 우러나는 <멋진 하루>는 작지만 참 멋진 영화다. 정미래 기자(FILMON)
어제(24일) 헬로TV와 캐치온이 함께하는 멋진하루 시사회가 있었습니다. 헬로TV를 사용하시는 분들을 위한 자리였는데요. 티비가이도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오늘 개봉할 영화이니 스포일러는 접고, 시사회의 이모저모를 전해드릴께요.(기대하세요~) 압구정 시네시티를 도착한 티비가이 영화관 입구에 멋진하루 포스터가 눈에 띄더군요. 이미 많은 분들이 도착해서 표를 받기위한 긴 줄을 보고 놀랬습니다. 티비가이 역시 줄서서 차례대로 표를 받았습니다^^ 상영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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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보았습니다^^
2008/09/26 04:44전 오늘 심야영화로 보고왔습니다
물론 지루해하시분들도 있겠지만
전 근래 본 영화중 참 좋은 한국영화 한편 보고 나온것 같은 기분에
집으로 오는내내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전 어제 봤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2008/10/09 10:24별로라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 어떨까 했는데..
한심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병운 때문에 웃고
전철 안에서 희수가 울때는 같이 울고-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