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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드라마 <일지매>

바야흐로 슈퍼히어로의 시대다. 오랫동안 미국 코믹스라는 한정된 문화 안에서 향유되던 초능력 히어로들은 책장을 튀어나와 전 세계 스크린 점거를 이어나갔고, 마침내는 범죄 근절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밤을 휘젓는 영웅 배트맨의 <다크 나이트>가 올 한해 슈퍼히어로의 뜨거운 인기와 수많은 담론 양산에 정점을 찍음으로써 질서와 정의의 회귀를 갈구하는 스크린 속 영웅 판타지를 오락 너머로 끌어올리기에 이른다. 영웅에 대한 갈망은 이제 한낱 전설이나 신화, 또는 저잣거리에서 몰래 오가곤 했던 비밀스런 환상 따위의 멀고도 얕은 품에 머물지 않는다. 대중의 욕망을 반영하는 가장 첨예하고 가시적인 장으로 그 위치를 새로이 다져가는 ‘영웅 이야기’의 끊임없는 현대적 변용은 오히려 다른 수많은 이야기들조차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이며 이야기의 최정상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다질 뿐만 아니라 담론의 중심마저 자처하기에 이른 것이다.  

다양한 형상으로 변형에 변형을 거듭하며 문화 콘텐츠로서의 굳건한 자리를 꿰찬 ‘영웅 이야기’. 그 위상변화는 한국에서도 명확히 이어지고 있다. 스크린 히어로들의 전 지구적인 인기는 국내에서도 <아이언맨> <인크레더블 헐크> 같은 마블코믹스사의 만화 원작 블록버스터들마저 인기를 구가할 수 있는 단단한 토대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이는 곧 ‘한국산 영웅’에 대한 자연스런 열망과도 맞닿게 됐다. 형사 강철중에게서 안티히어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또 해묵은 의적 일지매로부터 현대적이고 한국적인 영웅의 변용을 꾀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변화를 방증한다. 한국사회에 범접할 수 없는 악이 도사린다는 대전제와 이를 해결할 명확한 해답이 요원한 현 시점을 토대로 펼쳐지는 이 한국산 영웅의 재등장은 그 자체로 곧 공공이 꿈꾸는 판타지인 동시에 이것이야말로 당면한 의제의 집약체이며 거대한 은유임을 공고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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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의 배트맨(크리스찬 베일)


SBS드라마 <일지매>가 왕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전복에의 쾌감까지 선사하며 종영 전까지 줄곧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의적’이라는 구시대적 판타지가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한다. 이는 한국산 영웅 일지매의 실체 역시 과거 신화나 민담에 머물던 수준을 넘어 현대에 새로운 문화적 토양을 마련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의와 질서를 다잡아 세계의 변혁을 주도하는 영웅의 실체를 안방 깊숙이 밀어 넣는 데 성공한 SBS드라마 <일지매>는 그렇게 퓨전 사극이라는 트렌드의 직접적 수혜 속에 현대가 필요로 하는 영웅 이야기를 새로이 쌓아나갔다.

여기에 더해 11월 19일 MBC에서 방송 예정인 또 다른 일지매 이야기, 드라마 <일지매>는 고우영 화백의 원작만화를 원안으로 먼저 선보인 SBS의 일지매와는 또 다른 영웅 일지매를 모색 중이다. 과거에는 그저 권력을 농락하고 약자를 돕는 의적의 ‘모티브’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일지매가 그 희미한 형상화를 넘어 계속해서 또 다른 이야기로 창출되고 현대적 영웅으로서 끊임없이 컨텍스트를 쌓아가게 된 것이다. 이는 한국 영웅담론의 실체에 쐐기를 박는 명확한 움직임이기에 더더욱 흥미롭다.

한국인이 원하는 영웅의 모습은 이렇게 두 번, 일지매에서 일지매로 이어지는 너른 이야기의 장을 통해 겹겹이 완성되고 있다. SBS에서 MBC로 이어지는 이 의도치 않은 바통 터치는 그렇게 영웅을 향한 소시민들의 욕망을 배가한다. 바로 여기에 한국인이 목도하는, 그리고 한국인이 근시일내에 목도하고자 하는 현재가 담겨 있다. 각 드라마의 만듦새에 대한 궁금증보다도 앞서는 이 현상만큼은 ‘일지매 대 일지매’의 구도 이상으로 대한민국을 들여다보는 면밀한 한 쌍의 컨텍스트로 기능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꿈꾸는 영웅의 실체가 결국 일지매라면 앞으로도 계속 수많은 일지매들 간의 대결을 지켜봐야만 할 것이다. 강상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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