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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몽> - 꿈을 좇는 슬픈 운명의 나비

REVIEW ON 2008/10/13 20:39 Posted by 농촌총각


어둠이 짙은 새벽. 진(오다기리 죠)는 차를 몰고 헤어진 여자친구(박지아)를 쫓는다. 진은 갑자기 나타난 차를 발견하지만 피하지 못해 사고를 낸다. 뺑소니를 친 진은 복잡한 심정에 눈을 뜨는데 그는 침대 위에 있다. 꿈이 너무 생생한 탓에 진은 사건 현장으로 가는데 그곳에는 꿈속의 것과 똑같은 사고가 나 있다. 경찰을 쫓아 범인을 찾아간 진. 경찰은 란(이나영)이 범인이라는 것을 확신하지만, 진은 자신이 범인이라며 란을 변호한다. 자신의 꿈이 범인이라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과연 이들에겐 무슨 비밀이 숨어있는 것인가.

애초 진과 란은 서로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사이다. 하지만 란은 몽유병 상태에서 진의 꿈대로 행동하고, 아침이면 모든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몽유병 환자가 아니라도 술 먹고 필름 끊겨본 사람이면 안다. 기억이 없는 상황에서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그래서 란은 진의 모든 꿈에 촉각을 기울인다. 진 또한 꿈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란에게 피해가 가지나 않을까 매일 그녀를 찾게 된다. 그러면서 과거 자신들이 사랑했던 이들과의 기억을 하나둘 찾게 된다.


‘내’가 꾸는 꿈대로 누군가 행동을 한다는 설정이라면 영화는 무궁무진한 장르로 발전할 수 있다. 만약 꿈속에서 악과 싸운다면 정의를 외치는 슈퍼 히어로물이 될 수 있고, 아리따운 사람과 사랑을 나눈다면 말랑말랑한 멜로가 될 수 있다. 심지어 로봇으로 변한다면 <트랜스포머> 저리가라 할 수 있는 로봇영화가 될 수도 있다. 왜? 꿈은 상상의 경계가 없기 때문에. 하지만 김기덕 감독이 선택한 것은 비극적 사랑이다.

진이 꿈속에서 찾아가는 곳은 란의 전 남자친구가 있는 곳이다. 란을 미친 듯이 사랑하고, 그만큼 그녀를 구속하려 했던 남자친구(김태현). 란 또한 그를 많이 사랑하지만, 그의 구속에 질려 이별을 선택했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헤어진 남자친구를 찾아가다니, 새로운 삶을 살려고 했던 그녀인데 결국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 란은 이 모든 것이 괴롭기만 하고, 그에 대한 분노는 폭력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과거의 인연을 잊지 못하고 과거와 현재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영화 <비몽(悲夢)>은 장자의 ‘나비의 꿈’에서 출발한다.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훨훨 날아다니는 꿈을 꾼 장자는 자신이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자신이 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무엇이 됐던 간에 사람(사물)과 사람(사물)은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큰 깨달음’을 꿈을 통해 얻었다는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진의 꿈이 때문에 란이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아니면 란의 몽유병 때문에 진이 그런 꿈을 꾸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이 꿈을 좇을수록 자신들이 잊고 싶었던 기억 혹은 사랑과 점점 가까워짐을 느낀다. 불안하면서도 격렬한 그 감정. 어느덧 헤어진 이들과 그들과의 기억, 사랑을 지울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이미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과 란, 그들의 전 애인들 총 네 명은 모두 하나의 존재가 되어 비극적 사랑의 결말로 치닫는다.


김기덕 감독의 열다섯 번째 작품 <비몽>은 그의 최근작 <시간> <숨>과 비교해 난해하다. ‘저건 왜 저럴까’라는 합리적인 사고로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이건 뭔 가요’하는 당혹감이 밀려올지도 모른다. <비몽>을 선택했다면 굳이 영화를 이성으로 판단하려고 하지 말자. 꿈에서 출발한 영화가 어찌 우리네 이성에 부합하겠는가. 또 사랑이란 것이 합리적이지 않아야만 더 애절해지는 것 아닌가. 만약 합리적 잣대를 들이대려면, 영화가 시작한 후 3분 안에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진의 말(일본어 대사)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해하고 대화하는데, 그게 한국의 일본어 교육이 훌륭해 가능한 것인가?

대신 영화 속 등장하는 나비의 행방에 시선을 맞추는 것도 <비몽>을 보는 한 방법이다. 진과 란이 꿈을 좇기 위해 나란히 차를 탔을 때 백미러에는 나비 목걸이가 걸려 있다. 그들은 꿈의 장소를 가기 위해 자연히 나비를 쫓게 된다. 그 나비는 이곳저곳 장소를 옮기는데 그 때마다 인물들의 감정, 갈등구조가 바뀐다. 그 과정을 찬찬히 보다 보면 진이 왜 가혹하도록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지 알 수 있다. 또 영화의 화려한 색감, 김기덕 감독 특유의 강렬한 신 구성 등 이미지에 초점을 맞춰 볼 것을 권한다. 안효원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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