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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의 계곡 IN THE VALLEY OF ELAH

2007 | 감독, 각본 폴 해기스 | 제작 로렌스 벡시, 스티브 사무엘스 | 촬영 로저 디킨스 | 미술 그레고리 S. 호퍼 | 편집 조 프랜시스 | 음악 마크 이스함 | 출연 토미 리 존스, 샤를리즈 테론, 수잔 서랜든 | 120분 | 2008 JIFF 시네마스케이프

군인으로 복무하고 있는 실종된 아들의 행적을 뒤쫓는 퇴역 장교 행크(토미 리 존스)는 신실하고 투철한 애국심의 소유자인 아들 마이크의 탈영이 영 믿기지 않는다. 아들의 입국소식조차 접하지 못했던 행크는 마이크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 단정하고 단독으로 그의 행방을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마이크로 추정되는 시체가 발견되지만 군부대 소유지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이유로 경찰관 샌더스(샤를리즈 테론)의 수사는 좌절된다. 그러나 행크의 노력에 힘입어 샌더스는 마이크 사건에 대한 자신의 수사의지를 관철시키며 사건을 담당하게 되고 행크와 함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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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골리앗이 꼬마 다윗의 돌팔매에 맞고 쓰러진 엘라의 계곡에는 괴물에 맞서 싸운 용기 있는 영웅의 일화만이 남아있다. 칼로 덤비는 괴물에게 총이나 다름없는 돌팔매로 맞선 영웅의 이야기건만 이 전설의 교훈은 어디까지나 두려움을 이겨낸 다윗의 용기에 한정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행크가 이 유대인 전설을 아무렇지 않게 아이에게 건넨 이후 우리가 알고 있던 다윗의 이야기가 본래의 교훈을 지우고 더욱 무거운 함의를 끌어안는 것처럼 영화 <엘라의 계곡>은 제목의 의미를 성스러운 전장으로부터 멀찌감치 이탈시킨다. 

그저 그런 영웅 전설 정도로 생각되는 다윗의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행크가 아들 마이크의 죽음의 실체에 다가설수록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피아를 뒤바꾸며 이라크에서 횡행하는 미군 병사들의 잔학함과 이를 종용하는 전쟁터의 진실을 알리는 중요한 상징을 이룬다. 다윗의 용기를 찬양하던 성스러운 전쟁터 ‘엘라의 계곡’은 그저 괴물 골리앗이 내지르는 공포의 함성과 피비린내 가득한 전쟁터에 불과했을 뿐이다.

이라크 파병을 마치고 귀국한 아들 마이크의 탈영 소식을 전달받은 늙은 아버지 행크. 그의 추적기는 언제나 성실한 군인인줄 알았던 아들의 추악하고 슬픈 이면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마이크는 42번이나 찔려 살해당한 후, 정육점 고기처럼 토막 나, 바비큐 냄새를 풍기며 불에 탄 채로 발견됐다. 누구라도 무시무시한 음모나 원한이 도사리고 있을 게 분명하다는 추측이 가능할 만큼 그 모습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퇴역장교의 절도 있는 모습으로 대변되는 행크가 미국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수호하는 철저한 군인이자 철저한 미국이라지만, 첫째아들을 전쟁에서 잃고 둘째아들 마이크마저도 끔찍한 모습으로 먼저 보낸 그의 슬픔은 군인으로서의 강단 있는 모습만으로는 절대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는 때때로 집착이 되고 또 때때로 분노가 되어 영화 전체를 통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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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범을 뒤쫓는 영화의 점층적 전개에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자행한 폭력과 전쟁의 실상이 그대로 담겨 있다. 트럭을 몰고 이라크 시내를 달리던 마이크 일행이 공을 줍기 위해 차도로 튀어나온 아이를 보고서도 그대로 아이를 향해 돌진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은 마이크의 핸드폰 동영상을 복구하는 긴 과정을 통해 조금씩 고개를 들며 마이크의 불명예스러운 죽음의 진의와 미국의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그것은 “여기서 나를 꺼내 주세요”라고 울음을 터뜨리던 마이크에게 그저 겁이 나서 그런 것이라며 위무하던 행크가 무수히 많은 전쟁을 겪으면서도 결코 발견할 수 없던 것이기도 하다. 마이크가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자기 자신이었고, 마이크를 비롯한 미군병사들은 골리앗을 때려눕힌 영웅 다윗이 아니라 유대인을 위협에 몰아넣는 거대한 괴물 골리앗이었을 뿐이다. 

이라크에서 사람을 고문하며 깔깔대던 병사는 꼬마를 차로 치고서도 그저 개를 친 거라며 자기 최면을 거는 겁에 질린 일개 젊은이에 불과하다. 마약을 하지 않으면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전쟁터에서 마이크 역시 자랑스러운 미군도 자랑스러운 아들도 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두려움에 사무친 약쟁이에다 다친 사람을 괴롭히며 즐거워하는 잔인한 군인이었다. 동시에 어린 아이를 죽이고 괴로워하고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아주 어리고 여린 청년이기도 하다. 더욱 슬픈 사실은 전쟁을 겪고 미국으로 돌아온 그들 모두가 전우마저도 아무렇지 않게 다루는 진정한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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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크래쉬>를 통해 각본가로서는 물론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 폴 해기스 감독은 <엘라의 계곡>으로 다시금 명예로운 얼굴을 가장한 미국을 향해 진동하는 무거운 슬픔을 불어넣는다. 퇴역장교 출신의 늙은 아버지를 연기한 토미 리 존스는 사랑하는 아들의 이중성을 발견하며 미국의 이중성을 투사하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절도 있는 자세와 오직 명예로 가득한 이 기품 있는 군인이 그토록 오랫동안 쌓아온 자신의 신념을 한꺼번에 허물어 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애처롭게 영화의 의미를 선도한다. 역시나 한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한 수사관 샌더스 역의 샤를리즈 테론은 군인을 그저 소모품 정도로 취급하고 사건을 은폐하기에 급급한 군 당국에 정면으로 맞서며 미국을 향해 슬픈 시선을 보내는 <엘라의 계곡>에 훌륭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고 아들 마이크가 이라크에서 보낸 낡은 성조기를 일부러 거꾸로 매다는 행크를 보여주는 영화는 구조의 의미(영화 초반 행크는 거꾸로 걸린 성조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바로 잡으며 국기의 중요성을 설교한다. 이때 거꾸로 매달린 국기의 의미는 긴급한 구조를 요청하는 것임을 관리인에게 일러준다)와 국가의 상징을 전복하는 이중의 의미로 막을 내린다. <엘라의 계곡>은 미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국가라는 체계적 폭력, 나아가 전쟁이라는 무자비한 시스템을 섬세하게 관통한다. 강상준 기자(www.film-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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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다이스 2008/05/0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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