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민족에 승리를 안기는 인디아나 존스
<원스 어폰 어 타임>은 <라듸오 데이즈>에 비해 훨씬 영리한 전략을 구사한다. <원스 어폰 어 타임>은 시작부터 나라와 민족 따위 상관 않고 오로지 재물을 탐하는 가네무라(박용우)와 도둑 해당화(이보영)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시대의 무게를 덜어낸다. 특히 조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해당화, 즉 춘자는 끝까지 철저히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고수하는 인물이다.
슬랩스틱코미디와 가벼운 액션을 통해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사이 영화는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조선인과 독립군의 애환을 효과적으로 그려 넣는다. 일본인 총감(김응수)은 조선인인 야마다 중좌(김수현)가 이등 가문임을 일깨우고, 차례로 야마다 중좌는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조선인 경찰서장(김구택)에게 삼등가문임을 확인시킨다. 경찰서장은 또 다시 순사 덕술(임형준)을 조선인이라는 점을 들어 괄시한다. 반대로 야마다 중좌는 경찰서장에게, 경찰서장은 덕술에게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감춘다. 이들은 임무 수행을 통해 일본제국을 향한 애국심을 증명해보이려 하지만 정작 일본인 총감은 패전을 예감하고 ‘동방의 빛’을 챙겨 달아날 궁리를 한다.
조선인으로 태어나 “오장육부와 뼛속까지” 완벽한 일본인으로 거듭나는 것만큼 독립군으로 사는 것도 힘들기는 매한가지. 때는 해방직전의 1945년, 나라를 빼앗긴지 3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독립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니 자연히 독립군 행동대원 동일(성동일)과 희봉(조희봉)의 무력감은 극에 달해 있다. ‘상부에서 죽으라면 죽는다’는 동일과 ‘독립운동도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는 희봉이 사사건건 아옹다옹하는 것도 결국은 36년 동안 쌓인 기나긴 불안 때문이다.
시종일관 유쾌하던 영화는 야마다 중좌가 ‘동방의 빛’을 훔쳐간 해당화를 불러들이기 위해 조선인 100명의 사살을 명령하는 장면에서 심각한 얼굴을 드러낸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도 잠시, 때맞춰 광복이 선포되고 ‘동방의 빛’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첩보대 대장 봉구(일본인 사업가 가네무라는 사실 봉구가 작전을 위해 가장한 인물이었던 것)가 꾸민 비밀 작전이었음이 밝혀진다. 작전은 대성공을 거두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 했던 희봉과 동일 또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영화는 조선의 완벽한 승리를 그리며 끝을 맺는다.
따지고 보면 <원스 어폰 어 타임>의 조선인과 독립군이 느끼는 모멸과 불안은 <라듸오 데이즈>의 로이드가 느끼는 무력감과 닮았다. 그러나 <라듸오 데이즈>는 그것을 자조하는 반면 <원스 어폰 어 타임>은 그것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그린다. 두 영화 모두 개인에서 민족으로 나아가는 결말을 선보이지만 여기에도 차이는 존재한다. <원스 어폰 어 타임>의 봉구는 흡사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주인공 존스(해리슨 포드)처럼 언제나 태연하고 가벼운 태도를 유지한다. 봉구에게 독립운동은 그의 말대로 “신나는 일”, 즉 즐거운 모험이었던 셈이다. 이로써 <원스 어폰 어 타임>은 개인에서 민족으로 이야기를 확장하면서도 결코 초반의 가벼운 분위기를 잃지 않는다.
일본인을 상대로 하던 술집 ‘미네르바’가 광복 이후 다시금 미군들로 가득 찬 마지막 장면. 영화는 광복 이후 천하태평의 시대가 열린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암시한다. 그러나 영화는 지금까지의 방법대로 “밤이 새도록 노래하고 춤추자”는 춘자의 노래와 함께 흥겨운 분위기에서 막을 내린다. 민족의 애환과 극적인 승리, 뒤에 남겨진 시대의 불안을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관객이 받아들이기에 가장 부담 없이 요리한 경우라고 하겠다.
<놈놈놈>, 모두가 사연 있는 놈, 모두가 살고자 하는 놈, 단 하나 끝까지 살아남는 놈
<놈놈놈>은 2008년 일제강점기 시대극 중 나라와 민족의 굴레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화다. 중국인, 조선인, 일본인이 뒤섞인 무법천지였던 당시 만주를 배경으로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보물 지도를 놓고 다투는 창이(이병헌), 도원(정우성), 태구(송강호), 마적 삼국파에게 나라나 민족은 없다. 애초에 창이와 도원은 각각 친일파 김 판주(송영창)와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군 나연(엄지원)의 청탁으로 보물 지도를 쫓지만 곧 이들을 배신한다. “우리 같은 놈들 양반 밑에서나 일본 놈들 밑에서나 그게 그거지.” 도원의 말대로 이들에게 더 이상 나라나 민족의 존재는 중요하지 않다. 계속해서 도원은 말한다. “나라는 없어도 돈은 있어야지.” 이들은 이제 철저한 개인이다. 개인에게 남은 유일한 욕망은 만주 한복판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다. 돈은 곧 목숨이다.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보물을 차지한다. 그게 무법천지 만주에 통하는 유일한 법이다.
다른 일제강점기 시대극과 달리 <놈놈놈>은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는 결말을 선보이지 않는다. 대신 사막에서 함께 밤을 보내는 도원과 태구의 대화(“새로운 삶 살아보려고 (만주에 왔지).” “사연 없는 조선인이 어디 있겠어.”)를 통해 나라 잃은 조선인의 비애를 간략히 짚어낸다.
<다찌마와 리 2008>, 일제강점기의 제임스 본드
<다찌마와 리 2008>은 <놈놈놈>과 정반대 방법으로 나라와 민족의 굴레를 벗어난다. <다찌마와 리 2008>은 냉전시대의 <007>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일제강점기를 철저히 영화적 장치로 활용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다찌마와 리는 민족적 영웅이자 절대선’이고 ‘일본군은 민족의 원수이자 절대악’이라는 대전제를 분명히 한다. 확고한 선과 악의 대결 구도는 무적 영웅 다찌마와 리의 활약상을 돋보이게 하는 병풍에 불과하다. 영화의 모든 관심이 다찌마와 리의 영웅담을 최대한 과장되게 그리는 데 맞춰져 있기 때문에 시대의 아픔을 진지하게 그리는 장면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다찌마와 리가 통쾌하게 승리하고 일본군이 파멸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것은 민족적 승리라기보다 완벽한 오락적 결말에 가깝다. <다찌마와 리 2008>은 영화의 성격에 걸맞게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를 가장 ‘오락적’으로 소화하고 있다.
<모던보이>, ‘낭만의 화신’에서 ‘독립의 화신’으로
그렇다면 <모던보이>의 경우는 어떠한가. 나라와 민족은 해명의 안중에 없다. 그는 일본인으로 사는 것이 좋다면 차라리 일본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다. 동경 유학을 마치고 조선총독부 1등 서기관이 된 해명은 일본인 검사 신스케(김남길)와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다. 난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신스케 행세를 하기도 한다. 그는 스스로를 “낭만의 화신”이라 천명한다. 과연 그 말대로 해명은 손에 잡힐 듯하다가도 자꾸만 사라지는 연인 난실을 되찾는 데 인생을 건다. 해명의 가치관은 2008년 일제강점기 시대극 중에 가장 획기적이라 할 만큼 ‘반민족적’이다.
그러나 난실의 정체가 독립군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해명은 오로지 난실의 남자가 되겠다는 욕심 하나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 독립운동에 휘말린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소설과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한다. 소설은 만주사변 승전 기념식에 난실 대신 자살 폭탄 테러를 하겠다고 나선 해명이 끝내 테러에 나서지 않았음을 알리며 끝난다. “나는 결국 조난실과 한패가 될 수는 없었다. 공범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중략) ‘나의 둥그런 푸른 무덤’은 총독의 무덤도 그 누구의 무덤도 아닌, 바로 나의 무덤으로, 묻힌다면 나 혼자만이 묻혀야 하는 것이다.”는 구절이 그렇다. 소설은 끝까지 해명을 철저한 개인으로 남긴다.
영화는 소설의 결말을 완전히 뒤집는다. 해명이 테러를 감행하지만 실패하자, 난실이 직접 테러에 나서 죽음을 맞는다. 영화는 난실이 테러에 나서기 직전 해명과 눈물로 생이별하는 장면을 통해 그들의 사랑이 진실이었음을 증명한다. 결국 해명은 “나는 당신이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난실의 바람대로 연분홍 양복을 벗어던지고 굳은 표정의 독립군으로 변신한다. 누구보다 ‘반민족적’이었던 ‘낭만의 화신’ 해명이 결국 누구보다 ‘민족적’인 ‘독립의 화신’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는 2008년 일제강점기 시대극 중에서도 가장 민족적인 결말이다. 영화 초반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던 해명이 어쩐지 관습적인 슬픈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전락한 것 같아 아쉽다.
<모던보이>가 소설과 정반대로 ‘민족적’ 결말을 택한 데는 분명 상업영화의 자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일제강점기 시대극의 ‘비민족적’ 결말이 대중들로부터 어떤 비난을 사는지는 <청연>의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다.
<청연>은 일제강점기에 여성 비행사로 활약한 실존 인물 박경원의 삶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 경원(장진영)은 힘든 일본 유학 생활 끝에 조선인과 여성에게 가해지던 차별을 이겨내고 비행사의 꿈을 이룬다. 그러나 조선인이라는 신분은 끝내 경원의 발목을 잡는다. 독립운동가란 누명을 쓰고 고문을 당한 경원은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늘에 올라 죽음을 맞는다. 영화는 하늘을 날기 위해 사랑과 우정을 저버리고 일장기를 흔들었던 경원의 죽음을 ‘애절하게’ 그렸다는 이유로 개봉 당시 인터넷에서 친일파를 옹호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나라와 민족을 떠나 개인적 욕망에 충실했던 경원의 삶은 새로운 시대극에 호응했던 2000년대 대중들에게조차 버림받고 만 것이다.
개인과 민족을 어떻게 매끄럽게 연결시킬 것인가. 2000년대 시대극은 ‘교과서 밖의 상상력’과 ‘교과서 안의 민족주의’ 사이에서 여전히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고 있다. 그 고민에 대해 <원스 어폰 어 타임> <놈놈놈> <다찌마와 리 2008>이 성공적인 해답을 끌어낸 반면 <라듸오 데이즈>와 <모던보이>는 거친 이음새를 그대로 드러내고 만 것이다.
‘살아남는 것’의 중요성
그러나 2008년 일제강점기 시대극이 새로이 ‘살아남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희망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원스 어폰 어 타임> <놈놈놈> <모던보이>가 그렇다. <원스 어폰 어 타임>은 동일과 희봉이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통해 독립운동의 목적이 “조선인으로 죽”는 것인가, 아니면 “조선인으로 사”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직접 던진다. 결국 동일과 희봉은 독립과 함께 “조선인으로 사”는 행복을 누린다. 민족의 영광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정당화하지 않은 것이다. <놈놈놈>은 2008년 일제강점기 시대극 중에서 가장 끈질긴 ‘삶의 의지’를 보이는 작품. 창이, 도원, 태구가 서로에게 쫓고 쫓기면서 그렇게까지 죽도록 달리는 이유는 오로지 ‘살기 위해서’다. 영화 전체가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비해 <모던 보이>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난실의 행동을 미화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난실은 테러 직전 해명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살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테러를 행하는 독립군 난실의 가슴에도 실은 한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해명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민족의 편에 서는 관습적 결말을 선보였다는 점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2008년 일제강점기 시대극이 남긴 열매와 고민은 고스란히 2000년대 시대극이 앞으로 안고 가야할 숙제로 남았다. ‘교과서 밖의 상상력’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은 2000년대 시대극의 변화와 발전을 계속해서 지켜볼 일이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TV 사극 <대왕세종> <바람의 화원> <바람의 나라>를 비롯해 시대극영화 <미인도> <1724 기방난동사건> <쌍화점>이 줄줄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 지금도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그 치열한 혁명이 계속되고 있다. 장성란 기자 (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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