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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다

“연기? 뭐 별거 있나? 인생 잘 만나서 흉내만 내면서 사는 거지.” 연기, 즉 영화는 기껏해야 ‘흉내’고 ‘가짜’밖에 안 된다는 강패(소지섭)의 말이 액션 배우 수타(강지환)의 신경을 긁는다. 굳이 강패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영화는 영화다>는 그 제목에서부터 영화와 현실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시작한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영화와 현실

스크린 안과 바깥은 엄연히 다른 세계다. ‘영화 같다’는 말이 이를 증명한다. ‘영화 같은 일’이란 인파가 넘치는 공공장소에서 거창한 사랑 고백을 받았다거나 길거리에서 주운 복권으로 거액의 당첨금을 탔을 때처럼 현실에서 좀처럼 맞닥뜨리기 힘든 사건이 벌어졌을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거기엔 영화가 그만큼 현실과 다르다는 뜻이 숨어 있다.


영화는 탄생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꿈과 환상의 무대가 되어왔다. 최초의 극영화가 달나라 여행을 소재로 한 조르주 멜리에스의 판타지 <달세계 여행>(1902)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세계적인 영화의 중심지, 할리우드 역시 ‘꿈의 공장’이란 별칭으로 불리고 있지 않은가. 영화가 발명되기 전까지만 해도 꿈과 환상은 인간의 머릿속 아니면 기껏해야 종이 위의 활자, 평면의 그림, 좁은 연극 무대 속에 갇혀있었다. 인간의 꿈과 환상은 영화를 통해 비로소 손에 잡힐 듯한 영상과 생생한 소리를 입었다. 그만큼 영화는 인간의 꿈과 환상에 가까이 있다.

그러나 꿈과 환상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멜리에스를 시작으로 팀 버튼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화 작가들이 스크린을 꿈과 환상으로 물들이는 동안 한편에서는 스크린 위에 현실 세계를 재현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있었다. ‘라 시오타’ 역에 열차가 들어오는 풍경을 찍은 <기차의 도착>(1895)으로 세계 영화사의 첫 장을 장식한 뤼미에르 형제가 그 필두에 서 있다. 뤼미에르 형제부터 켄 로치에 이르는 수많은 사실주의 작가들은 스크린 위에 주름진 현실과 다양한 인간군상의 생활상을 보다 생생히 그리는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멜리에스나 팀 버튼과 달리 이들에게 영화의 비현실성을 들먹이는 것만큼 모욕적인 일은 없다. 

강패, 영화와 현실 사이에 다리를 놓다

영화는 영화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연기는 흉내이자 가짜라는 강패의 말은 비단 수타만 아니라 뤼미에르 형제와 켄 로치의 자존심을 건드린 셈이다. 하지만 그 말이 강패의 온전한 진심은 아니다. 사실 강패는 한때 배우의 꿈을 키웠던 인물. 액션영화를 찍던 수타가 시비 끝에 상대 배우를 폭행하는 바람에 영화 제작이 난항에 빠지자 수타는 강패를 찾아가 영화 출연을 제의한다. 강패는 이를 승낙한다. 단, 흉내가 아닌 진짜 치고 박는 액션을 한다는 조건으로. 촬영 중에 깊은 관계로 발전하게 된 배우 미나(홍수현)에게 강패가 말한다. “널 만나면 내가 딴 사람이 된 거 같아.” 영화를 깔보는 듯했던 강패의 마음에도 실은 영화를 통해 “딴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강패는 영화 촬영을 하면서 현실에서 역시 점점 ‘딴 사람’이 되어 간다. 백 회장(송용태)에게서 박 사장(한기중)을 처리하라는 지시를 받은 강패. 박 사장을 바다에 빠뜨리기 직전, 강패는 전에 없이 동정심을 발휘해 그의 목숨을 살려준다. 강패가 영화(영화 속 영화)에 현실을 끌어온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가 강패의 삶, 즉 현실을 변화시킨 것이다. 

영화는 영화다

<영화는 영화다>는 영화와 현실의 대립 구도를 강조하는 전략을 내세워 거꾸로 영화(영화 속 영화)를 현실화한다. 수타와 강패가 갯벌에서 구르는 영화(영화 속 영화)의 마지막 장면. 온몸에 갯벌을 뒤집어 쓴 두 사내가 엎치락뒤치락하며 격렬하게 치고받는다. 수타와 강패의 꼴이 엉망이 되고 두 사람이 진을 뺄수록 미리 동작을 맞춘 ‘가짜’ 액션이 흉내 낼 수 없는 사실감이 그대로 카메라에 와서 박힌다. 촬영하는 내내 봉 감독(고창석)의 얼굴에 기쁨과 만족의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마침내 이 장면에서 뤼미에르 형제와 멜리에스의 소원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영화(영화 속 영화)가 흉내와 가짜의 벽을 넘어 진짜 현실로 거듭나는 동시에 현실과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강패, 진짜 액션을 찍고 싶은 봉 감독의 꿈을 실현시킨 것. 이만하면 가히 영화가 꿈꿀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 할 만하다. 

결국 영화는 영화일 뿐인가?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꿈’이다. 허울 좋은 일장춘몽일 뿐이다. <영화는 영화다>는 영화 속 영화의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모두가 만족의 미소를 짓는 데서 막을 내리지 않는다. 영화 촬영을 마친 강패는 카메라를 벗어나 거리로 나선다. 현실의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강패의 호의를 받아들여 “쥐죽은 듯 살” 줄 알았던 박 사장이 버젓이 다시 나타나 강패를 곤경에 빠뜨린 것. 대낮의 서울 한복판에서 강패가 박 사장을 찾아 헤맨다. 수타가 그런 강패의 뒤를 쫓으며 묻는다. “어디 가는 거야?” 그러자 강패가 답한다. “영화 찍으러.” 하지만 카메라는 어디에도 없다. “네(수타)가 카메라야. 잘 찍어.” 박 사장을 만난 강패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불상으로 박 사장의 머리를 내리친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박 사장이 수타의 눈앞에서 싸늘한 시체로 변해간다.

영화는 영화다

현실의 현장 어디에도 카메라는 없다. <영화는 영화다>의 영화 속 영화가 강패와 수타의 ‘리얼 액션’을 통해 제아무리 현실이 되고자 몸부림친다 해도 끝내 박 사장의 죽음과 같은 진짜 현실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어디까지나 “영화는 영화”인 셈이다. 감히 영화가 흉내 낼 수 없는 현실을 목격한 수타는 말을 잃는다. 여기서 우리를 더욱 허탈하게 하는 것은 이 섬뜩한 현실의 현장마저도 철저하게 영화(영화는 영화다)를 위해 가공된 장면이라는 점이다. 박 사장의 죽음은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가짜다. 결국 영화 속에 진짜 현실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영화는 영화다>는 그렇게 스스로(영화)의 한계에 냉소를 흘리며 끝을 맺는다. 장성란 기자(FILMON) 


( '<영화는 영화다>에서 <미쓰 홍당무>로 - 영화와 현실이 화해를 이루는 길 (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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