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관습이라는 안전한 길
영화는 언제까지나 현실의 하수인으로 남을 것인가. 뤼미에르와 켄 로치의 꿈은 여기서 꺾이고 말 것인가. <미쓰 홍당무>는 <영화는 영화다>와 다른 방식으로 영화와 현실의 화해를 주선한다. 일단 출발은 비슷하다. <미쓰 홍당무> 역시 영화적 관습을 거부한다. <영화는 영화다>가 액션 영화의 ‘가짜 액션’ 관습에서 벗어남으로써 영화의 비현실성을 극복하려했던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안면홍조증에 시달리는 러시아어 교사 미숙(공효진)은 학생들에게까지 무시를 당하는 외톨이. 같은 학교 교사 종철(이종혁)을 오매불망 짝사랑하지만 남자 선생님들의 구애를 한 몸에 받는 동료 교사 유리(황우슬혜)가 종철과 남다른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미숙은 자신의 제자인 종철의 딸 종희(서우)와 의기투합해 밤낮으로 종철과 유리를 갈라놓기 위한 작전을 펼친다.
여기까지 줄거리만 보면 어떤 영화가 될지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진다. 미숙은 사랑에 서툰 못난이 여자 주인공, 종철은 모든 여자가 꿈꾸는 백마 탄 왕자님, 유리는 미숙과 종철의 사랑을 방해하는 얄미운 악역임에 틀림없다. 유리의 미모에 눈이 멀었던 종철은 종희의 도움으로 미숙에게서 사랑스러운 구석을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미숙을 향한 마음을 키워간다. 마침내 미숙과 종철이 서로를 향한 사랑을 깨달으면서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달려간다. 이로써 영화는 제 할 일을 마치고 극장 안에 불이 켜지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우리 머릿속에 자연스레 이런 그림이 그려지는 이유는 그동안 이와 비슷한 구조의 로맨틱코미디를 수도 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노팅 힐>(1999)이 그랬고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리즈(2001~2007)가 그랬고 <엽기적인 그녀>(2001)가 그랬고 <미녀는 괴로워>(2006)가 그랬다. 사실 로맨틱코미디의 대부분이 이와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단 로맨틱코미디 뿐 아니다. 액션, 공포, 스릴러, 느와르 등등 각 장르마다 그만의 관습이 있다. 영화적 관습은 각 장르가 오랜 세월 변형과 분화를 거듭한 끝에 얻은 요령의 집합체. 주인공을 어떤 인물로 설정해야 좋을지, 이야기를 어떻게 진행시켜야 좋을지, 프로덕션 디자인은 어떻게 꾸며야 좋을지, 어떤 음악을 써야 좋을지 등등의 문제에 대해 장르는 세월을 거듭하며 지혜를 모아왔고, 그것이 하나의 틀로 굳어진 것이 바로 영화적 관습인 것이다.
영화적 관습을 잘 활용하면 보다 많은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다. <노팅 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리즈, <엽기적인 그녀> <미녀는 괴로워> 등의 흥행 로맨틱코미디 대부분이 ‘신데렐라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신데렐라 이야기’야말로 로맨틱코미디를 대표하는 영화적 관습이 아닌가.
<미쓰 홍당무>, 현실의 자갈길을 선택하다
<미쓰 홍당무>는 ‘신데렐라 이야기’는 물론이고, 로맨틱코미디의 관습을 무엇 하나 잠자코 따라가지 않는다. 영화는 종철의 마음을 미숙에게 돌리기 위해 미숙의 모습을 적당히 사랑스럽게 다듬지 않는다. 미숙의 괴팍하고 추레한 모습은 일반 로맨틱코미디가 허용하는 못난이 여주인공의 범위를 한참 벗어날 정도로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시종일관 허름한 차림새에 답답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주는 종철에게서 역시 좀처럼 왕자님다운 면모를 찾아보기 힘들다. 유리도 결코 악역이라 할 수 없다. 영화는 미숙을 친언니처럼 믿고 따르는 유리의 순수함을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미쓰 홍당무>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미숙의 붉고 거친 피부와 촌스런 모양새, 종희의 까칠한 얼굴과 메마른 입술, 무슨 일에도 심드렁한 학생들의 태도와 휑한 학교, 유치찬란한 부직포 리본이 넘실대는 축제 풍경. 어디에서도 영화를 위해 애써 꾸민 듯한 인물이나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당초 미숙과 종철의 연애담을 향해 갈 것 같던 영화는 번번이 관객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따돌리며 은근슬쩍 미숙과 종희 사이에 싹튼 우정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장면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미쓰 홍당무>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 <미쓰 홍당무>는 스스로 뻔한 로맨틱코미디가 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아주 독특한 코미디의 길을 만들어 나간다.
정교하게 깎고 다듬어진 영화적 관습을 따라가는 길이 익숙한 재미를 준다면 영화적 관습으로부터의 일탈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자갈길을 골라 가는 것 같은 재미를 준다. 그 긴장감과 생동감에 힘입어 영화는 스크린 안의 안전한 세계를 벗어나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드넓은 현실의 초원에 들어선다. 미숙이 유리의 말을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 미숙과 종희의 의기투합이 뜻하지 않은 우정을 낳는 점 등등이 현실 세계의 울퉁불퉁하고 어지러운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미쓰 홍당무>, 현실과 영화의 화해를 이루다
<미쓰 홍당무>는 스크린 위에 이룩한 사실감을 가지고 지극히 ‘영화적인’ 매력을 만들어낸다. 영화가 절정에 다다르는 학교 축제 장면이 특히 그렇다. 학교 축제 날, 미숙, 종희, 종철, 유리, 종철의 아내 은교(방은진)가 학교 어학실에 모여 사건의 진실을 밝힌다. 어학실의 팽팽한 긴장감이 축제 준비에 한창인 학교의 소란스러운 분위기와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사소한 거짓말과 오해 때문에 얽히고설킨 5명이 자못 심각한 분위기로 모여 앉는다. 여기서 영화가 어학실의 풍경을 날카롭고 진지하게 그리는 태도가 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 영화는 계속해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 카메라는 학생들의 공연과 이에 열광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현장음을 걷어낸 채 느린 화면으로 비춘다. 어느새 학교 축제는 기괴한 느낌을 자아내는 광란의 카니발이 된다.
영화는 현실의 껍데기를 들추고 그 안을 들여다본다. 미숙, 종희, 종철, 유리, 종철의 아내 은교가 겪는 소란은 사실 따지고 보면 그다지 큰일이 아니다. 특히 미숙의 학교 학생들이나 주변 인물들은 이들의 일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 모든 소란의 결과를 보더라도 종철의 가정이 깨지는 것도 아니고, 미숙이 누군가와 연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운명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미쓰 홍당무>는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지극히 사소하고 별 것 아닌 일을 스크린 위에 가져와 그것이 가진 긴장감과 생동감을 살려냄으로써 그 의미를 주목하게 만든다. 현실 세계에서라면 외면 받았을 미숙과 종희의 꿈과 욕망이 영화 속에서 당당히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불공평한 세상, 보잘 것 없는 미숙과 종희가 맺은 우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절절히 느끼게 된다.
<미쓰 홍당무>에서 영화와 현실은 사이좋게 서로를 껴안는다. 종철이 유리에게 한눈을 팔고 학생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현실’ 속에서 미숙과 종희는 둘만의 거룩한 우정(‘꿈’)을 가꿔나간다. 거기에는 인간의 현실과 꿈이 모두 들어있다. <영화는 영화다>의 영화 속 영화도 한 순간이나마 ‘현실’이 되는 동시에 강패와 봉 감독의 ‘꿈’을 이뤘다.
어쩌면 뤼미에르 형제와 켄 로치가 꿈꾸던 ‘현실의 영화’와, 멜리에스와 팀 버튼이 그리던 ‘꿈의 영화’는 처음부터 그다지 다른 것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저 멀리 우주로 날아오른 인간의 꿈도 그 시작은 땅 위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고 사막과 같은 척박한 현실 속에도 인간의 꿈은 끈질기게 하늘로 피어오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언젠가 <영화는 영화다>의 강패도 그의 현실과 꿈이 하나가 되는 행복한 순간을 맛볼지 모를 일이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도, 멜리에스의 영화도 그 끈질긴 희망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 희망을 동력 삼아 영화는 오늘도 열심히 ‘현실’을 ‘꿈’꾸고 있다. 장성란 기자 (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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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란 기자님 기사는 언제봐도 대단!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2008/11/12 14:49이렇게 감사할 때가!
2008/11/24 1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