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라는 공통 시제를 던져주고 그에 대한 세 명의 ‘명장’들의 짧은 결과물 세 편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 <도쿄!>의 색은 명징하다. 흔히 ‘3인 3색’으로 치장되는 상투구나 또 미셸 공드리, 레오 카락스, 봉준호라는 특별한 세계의 소산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마치 경쟁하듯 도쿄를 읽어낸 이들 각자의 방식에는 꽤나 넓은 공통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이 바라본 낯선 도시 도쿄의 뿌리를 대도시가 품고 있는 속성에서 발견하는 점이 우선 그러하며, 톱니가 맞물리듯 한 치의 오차도 없을 것 같은 극단적 일상공간인 대도시의 풍경에 생경한 판타지의 색을 덧입힌 방식 역시 그러하다. 도쿄에 착륙한 이방인이 바라본 낯선 도시 도쿄, 이를 무대로 그들 각자의 각기 다른 언어로 쌓아올린 바벨탑은 그렇게 위태위태,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도시의 본질을 투사해낸다.
미셸 공드리의 <아키라와 히로코>
<도쿄!>는 세 명의 감독들이 초식을 겨룬 화려한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단편이라는 짧은 형식 안에 보다 강렬한 느낌을 녹이기 위한 보이지 않는 노력들은 분명 <도쿄!>라는 하나의 작품에 3명의 감독이 지닌 질량 이상을 담도록 유도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승자는 비교적 명백하다. 가장 처음 선보이고 있는 미셸 공드리의 <아키라와 히로코>는 <도쿄!>라는 바벨탑에 훌륭한 초석을 다질 뿐만 아니라 동시에 탑 꼭대기를 점유한다. 히로코(후지타니 아야코)가 느끼는 일상적 소외감, 그리고 애인 아키라(카세 료)와는 달리 여전히 명확한 꿈이나 재능조차 지니지 못한 히로코의 상대적 박탈감 등은 도시라는 주제어를 통해 건져 올릴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이야기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미셸 공드리는 실험영화작가를 꿈꾸는 아키라, 친구 집에 얹혀사는 동안 느끼는 미묘한 관계 변화와 그 불편함, 그리고 아르바이트나 집 임대, 주차문제와 같은 도쿄 구석구석의 모습을 세밀히 엮는 동시에 나무의자로 변해 누군가의 배경으로 전락하면서도 오히려 만족해하는 히로코의 판타지를 덧대며 일상 속의 익명성과 도시 속의 초라한 삶을 섬세하게 스케치한다. <아키라와 히로코>는 <이터널 선샤인> <수면의 과학> 등을 통해 각인시켰던 공드리표 판타지와 공드리적 상상력에 작지만 중요한 연장선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레오 카락스의 <광인>
레오 카락스 감독의 <광인>은 이해불가능한 야만이 문명을 만나 벌어지는 일대 테러와 그에 대한 재판을 공격적인 자세로 펼쳐 보인다. 특히 이를 두드리며 연신 자신의 뺨을 때리는 등 영화사상 가장 독창적인 언어(일차적 의미 그대로)를 선보이는 드니 라방과 장 프랑소와 발메르의 호연은 이토록 순수한 코미디적 상황을 끝끝내 부조리극의 틀 안으로 몰아넣으며 레오 카락스의 의도에 십분 부응한다.
봉준호의 <흔들리는 도쿄>
카가와 테루유키, 아오이 유우 주연, 봉준호 연출의 <흔들리는 도쿄>는 ‘집밖을 나서는 히키코모리’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 관계와 소외 사이의 역설을 돌이켜본다. 지진이라는 일본 특유의 자연재해와 히키코모리라는 사회문제를 도쿄라는 공간 위에서 연관시키는 <흔들리는 도쿄>는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 펼쳐지는 공허한 도쿄의 모습을 통해 도쿄라는 거대한 방에 틀어박힌 도시인 모두가 히키코모리일 수 있다는 은유를 도발적으로 전달한다. 특히나 영화 초반부 카가와 테루유키의 일상을 하나의 테이크로 가져 간 장면은 관객을 순식간에 영화 속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장면 흡입력과 면밀한 기획력을 단숨에 압축하는 순간으로 기억될 만하다.
도쿄를 두고 겨룬 세 편의 영화. 이는 결코 ‘도쿄’라는 한 가지 색, 혹은 3인3색이라는 뻔한 상투구에 그친 게 아니다. 오히려 세 명 각자의 시선이 어느새 한 가지 색,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그림으로 합일될 수 있었기에 ‘도쿄!’라는 제목과 공간에 걸맞는 일상적인 판타지, 판타지적 일상성이라는 의미 있는 탑을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강상준 기자(FILMON)
어렸을 때 난 여행이란 쓸데 없는 고생 쯤으로 여겼었다. 어짜피 사람 사는게 거기서 거기인데 뭐하러 그걸 보러 다니냐고...뭐 지금이야 못나가 안달났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항상 일본이라 이야기 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란 나라의 사람들은 그냥 사람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모든 잡다한 것을 다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아주 독특한 문화를 재생산하며 각자만의 독특한..
미쉘 공드리 작품 보기 : AD MV 영화 및 기타 국내에 Michel Gondry라는 이름이 알려진 것이 이터널션샤인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전 까지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뮤직비디오에 관한 마니아층이 전부 였을 것이고 아직도 미쉘공드리를 그저 신인 영화 감독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아니 그저 그렇게 기억속에서 지나가는 이름일지도-하지만 그는 뮤직비디오계의 발명가쯤으로 불리는 사람으로 99년에 개봉한 매트릭스에서 네..
지하에 잠자던 괴인의 지상에서의 무차별 살인, 그리고 이어지는 사형. 이 상황은 무척이나 희극적이지만(또 희극적으로 그려지곤 하지만) 이것이 희극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했던 게 그의 의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진지한 그들의 연기는 광인이라는 폭탄과 이 폭탄을 관리하는 사회 구조와 그 역학관계를 아주 면밀히, 그리고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합니다. 결코 안전하지 않지만 안전한 것 같은, 결코 아름답지 않지만 아름다운 것 같은, 정의로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정의롭지 않은 도시에 대한 일종의 야유 아니었을까나요. 실제로 지루하게 이어지는 그 둘의 '퍼포먼스'를 감상하고 있노라니 그 야유를 온몸으로 느끼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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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타니 아야코가 스티븐 시걸 딸이라는거 알고 충격과공포를 겪었었죠..ㅎㅎㅎㅎ
2008/11/18 18:20저는 마지막 봉준호작품이 가장 좋더군요 :)
레오까락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2009/05/20 13:19지하에 잠자던 괴인의 지상에서의 무차별 살인, 그리고 이어지는 사형. 이 상황은 무척이나 희극적이지만(또 희극적으로 그려지곤 하지만) 이것이 희극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했던 게 그의 의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진지한 그들의 연기는 광인이라는 폭탄과 이 폭탄을 관리하는 사회 구조와 그 역학관계를 아주 면밀히, 그리고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합니다. 결코 안전하지 않지만 안전한 것 같은, 결코 아름답지 않지만 아름다운 것 같은, 정의로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정의롭지 않은 도시에 대한 일종의 야유 아니었을까나요. 실제로 지루하게 이어지는 그 둘의 '퍼포먼스'를 감상하고 있노라니 그 야유를 온몸으로 느끼게 되더군요.
2009/05/20 2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