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먼저 기획을 했든,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방영된 지 두 달이 지난 후에야 극장에 걸린 영화 <미인도>는 <바람이 화원>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두 영화는 ‘비교’의 대상이 되기 힘들다. 신윤복과 김홍도라는 실존인물과 ‘신윤복은 여자다’라는 가설만 같을 뿐 <미인도>는 <바람의 화원>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때문이다.
천재의 비화는 언제나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만인이 부러워하는 능력을 지닌 데다 남모를 상처와 비밀을 간직한 천재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난 해 여름 발표된 장편소설 <바람의 화원>에서 이정명 작가는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던 신윤복의 화풍을 바탕으로 자신의 성을 숨기면서까지 화원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신윤복의 사연을 꽤 설득력 있게 상상해냈다. 규율과 양식만 강조하며 창의적인 발상을 차단하는 도화서에서 사제지간이면서도 경쟁자이고, 동료이자 정인이었던 김홍도와 신윤복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발전하는 과정을 통해 강렬한 예술혼과 훈훈한 열정을 담아낸다. 또 윤복의 아버지이자 홍도의 친구였던 화원 서징의 살해자를 추적하고 홍도가 윤복의 정체를 알아가는 부분에서는 웬만한 추리소설 못지않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소설 <바람의 화원>은 영상화하기에 더 없이 매력적인 작품이었고, 발 빠르게 동명의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제작되어 9월 24일부터 전파를 타고 있다. ‘국민 여동생’ 문근영을 신윤복으로, 사극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배우 박신양을 김홍도로 내세운 드라마는 원작의 골격을 최소한으로 유지한 채 좀 더 친근하면서도 극적으로 각색되어 흥미로운 퓨전 사극으로 탄생됐다. 윤복과 홍도의 관계가 삼촌과 조카처럼 좀 더 거리낌 없고 친밀하게 설정되었으며, 원작에서 고고한 천재로 묘사됐던 윤복이 드라마에선 사랑스런 천재소년으로 변화됐다. 홍도 또한 원작의 강직함에 괴짜의 면모가 더해져 캐릭터가 강조되는 드라마로서의 특징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드라마에서 영복은 속된 그림을 그렸다는 죄목으로 장파형을 당할 뻔 하거나, 형 영복의 죽음 이후 왕 앞에서 어진을 찢는 만행을 저질러 사형 직전까지 가기도 한다. 이렇게 원작엔 없던 극적인 고비들은 정조를 밀어내려는 정순왕후 측근과 도화서 원로들의 안일함에 맞서는 윤복의 영웅담으로 비친다. 시대를 비웃던 쿨한 천재 윤복이 좀 더 인간적이고 애틋한 영웅으로 재해석된 것이다. 또 후반부에 가서야 신윤복의 정체가 드러나는 원작과 달리 ‘신윤복은 여자다’라는 일급비밀을 시청자에게만큼은 알리고 시작해야 하는 드라마의 특성 상, 원작에서는 다루지 않은 ‘남장여자 에피소드’가 여럿 추가됐다. 윤복이 ‘단오풍정’을 그리기 위해 여자 옷을 훔쳐 입고 미역 감는 여인들의 무리 속에 당당히 끼어들거나, 목욕하는 모습을 홍도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안달하는 에피소드 등은 안방극장 수준의 성적인 긴장감을 유쾌하게 끌어 올린다.
무엇보다 영상으로 재구성된 <바람의 화원>이 원작소설과의 차별화를 보이며 드라마로서의 매력을 발산하게 되는 것은 ‘되살아난 그림’이다. 신윤복의 팩션이 ‘영상’이라는 수단을 만났을 때 시청자를 잡아끌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바로 그림이 그려지던 찰나를 실감나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신윤복의 대표작이라 할 ‘단오풍정’을 비롯해 ‘주사거배’ ‘무녀신무’ 등이 종이에서 튀어나와 그대로 동영상이 되는 장면은 역사책과 박물관에서 잠자고 있던 신윤복의 천재적인 자질과 예술혼을 친절히 일깨운다.
누가 먼저 기획을 했든, <바람의 화원>이 방영된 지 두 달이 지난 후에야 극장에 걸린 영화 <미인도>는 <바람이 화원>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두 영화는 ‘비교’의 대상이 되기 힘들다. 신윤복과 김홍도라는 실존인물과 ‘신윤복은 여자다’라는 가설만 같을 뿐 <미인도>는 <바람의 화원>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미인도>는 <바람의 화원>의 ‘보충학습’ 정도로 보면 되겠다. <미인도>는 마치 <바람의 화원>과 짠 듯이 신윤복의 대표작 ‘단오풍정’ 속 여인들을 영상으로 살려낸다. <바람의 화원>의 경우 공중파 드라마라는 한계 상 가슴과 엉덩이를 드러내고 목욕하는 그림 속 여인들을 있는 그대로 재생시킬 수 없었다. 드라마를 보며 ‘뭥미?’라고 생각했던 이가 적지 않을 듯하다. 그림과 영상이 다르잖아! 여인의 아름다운 육체를 예리한 묘사와 관능적인 색채로 표현했던 신윤복의 작품세계를 보다 자유롭게 영상화한 건 바로 <미인도>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스크린에 재생된 ‘단오풍정’은 과연 이 영화의 백미다.
영화에선 그림에 대한 뛰어난 재능으로 친오빠를 자살에 이르게 한 후 죄책감을 짊어진 채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남성이 되어야만 했던 윤복의 비애에 초점을 맞춘다. 윤복이 당시로선 금기시 했던 여성의 모습과 야릇한 남녀상열지사를 주로 그리게 된 이유를 억제된 여성성에서 찾고, 강무라는 남자를 등장시켜 여성으로서의 성적 욕망을 실현하도록 한다. 또 강무의 직업을 청동거울 만드는 사람으로 설정하고, 곳곳에 거울의 이미지를 강조시켜 윤복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비춰보게 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그렇게 해서 영화는 ‘미인도’가 신윤복의 자화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어쩌면 <미인도>는 주인공이 굳이 신윤복이 아니어도 되었을 조선 스캔들이다. 신윤복이라는 예인의 천재성을 담아내기보다는 한 남장여자의 성적 욕망에 더욱 충실하기 때문이다. 신윤복의 뛰어난 화풍을 소개하기보다는 그의 그림 속 남녀상열지사에만 몰두한다. 이렇게 <미인도>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성생활과 노골적인 춘화를 농도 짙게 묘사함으로써 <스캔들 조선남여상열지사> <음란서생> <가루지기> 등이 선보였던 ‘에로틱 퓨전사극’의 계보를 잇는다. 이는 기방의 은밀한 곳에 양반들이 모여 중국에서 공수한 춘화 속 체위를 그대로 재연하는 두 여인 쇼를 구경하는 다소 충격적인 장면에서 확실히 입증된다. 천재화가로서의 신윤복보다 여자로서의 신윤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미인도>는 윤복과 강무의 사랑을 질투하는 홍도, 윤복에 대한 홍도의 마음을 시기하는 기녀 설화까지 가세해 한 편의 걸쭉한 치정극으로 마무리된다. 이는 원작소설과 드라마에 감명 받은 이에게는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갈 수도 있을 듯하다. 정미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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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인도>를 보고 왔습니다. (수많은 야한 장면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렇게 재미가 없지도, 그렇다고 재미있지도 않더군요. 지적하셨듯이 <스캔들><음란서생>으로 이어지는 에로틱 퓨전사극(그리고 여기에 <황진이>도 포함시키고 싶군요)의 공식에 철저한 나머지, 이색적인 소재가 통속극의 형식에 갇혀버린 느낌이 들더이다.
2008/11/17 23:36껴 넣을 곳이 마땅치 않아 안 썼는데, 강무(김남길)의 통속극적 삽질이 참 안쓰럽더군요. 가만 있으면 될 것을 괜히 오버해서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 더라는 ㅋㅋ;; 그래도 김남길이란 배우가 존재감을 좀 챙긴 거 같아서 기쁘더라는 ㅎ
2008/11/18 1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