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대형버스 여럿이 전북대 삼성문화회관 앞에 집결할 때만 해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버스가 꾸역꾸역 교복 여고생들을 뱉어내면서부터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이하 <제시 제임스>) 관람은 분명 순조롭지만은 않으리란 생각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상영관에 들어서니 이곳은 벌써부터 여고생 천지. 소리소리 환호성을 지르고, 친구의 이름을 연호하고, 심지어 생일 축하노래까지 불러제끼는 그들은 매일매일 여고 앞을 배회하며 교복을 끌어안고 잔다는 어떤 이들의 판타지마저도 날려버릴 정도로 뜨거웠다. 진행요원들도 그 많은 인원과 그들의 불타는 혈기를 감내하기는 힘들어 보였고, 극장을 찾은 많은 외국인 관객도 이 생경한 경험을 오랫동안 함께 만끽할 수 있었다.(서부영화라는 장르적 속성 때문에 평소보다도 훨씬 더 많은 외국인들이 눈에 띄었는데, 눈에 보이는 외국인만 그 정도였으니 일본인과 중국인 등 동양계 외국인도 상당히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이후 두 가지 해프닝 때문에 그들은 더욱 기세등등. 그중 하나는 <제시 제임스>의 정품  DVD를 증정하는 이벤트 때문이었는데, 주최 측의 긍정적인 의도와는 상관없이 좌석 아래 놓여있는 노란색 종이가 바로 당첨의 표식이라는 안일한 이벤트 방식으로 인해 극장 안은 다시금 일대 혼란에 휩싸였다. 하나 아쉬운 건 영어로 이벤트 내용을 공지하지 않은 덕분에 극장 안에 자리 잡은 한국인들만이 이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 한국인들은 영화 시작 전 환호성을 지르며 일거에 머리를 좌석 아래로 파묻는 기이한 습성이 있었노라고 전해지는 건 아닐는지.(도저히 내 앞에 앉았던 외국인 관객의 뜨악한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전주국제영화제 홍보대사인 김성은과 김재욱의 게릴라 관람. 이들을 알아본 여고생들은 “김재욱이야 김재욱, 커피프린스 와플선기”라는 옆사람과의 조용한 수군거림에 그치지 않고 괴성을 질러대며 그들에게 모여드는 행각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영화 시작 전 영화관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내 자리에선 너무 멀어서 나는 찰스가 왔는지 알았다)

갑작스런 이벤트와 여고생들의 혈기왕성함 덕분에 상영 시작은 역시나 조금 지연됐다. 영화가 시작돼도 이들이 잠잠해지는데 어느 정도 시간을 요했지만 이후 관람은 장장 2시간 40분에 이르는 러닝타임 덕에 조용히 감상할 수 있었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비겁한 여고생들은 마치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불이 채 켜지기도 전에 영화관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기본 에티켓은 지켜야지”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합창을 하며 즐거워했다. 셔틀버스 좀 타보겠다고 조금 일찍 나오려던 사람들은 그렇게 조용히 암살당했다. 그래, 기본 에티켓은 우리 서로 지키자꾸나. 단체의 힘은 정말 막강하다지만, 그 힘에 기대고 살지는 말자. 그게 설령 극장 안이라도 말이다. 강상준 기자(www.film-on.kr)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by 파란다이스 2008/05/05 19:10
| 1 ... 733 734 735 736 737 738 739 740 741 ... 7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