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회장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 몇 가지가 있다. 촬영현장에서 정말 행복했어요(정말??), 영화 즐겁게 봐주세요(일단 보고), 그리고 많은 홍보 부탁드립니다(엥?). 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사회장인 경우에도 "많은 홍보 부탁드립니다"라는 멘트가 빠지지 않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배우는 연기를 했고, 홍보는 홍보사가 하고 있고, 기자는 영화를 보고 기사를 쓰자고 만난 자리인데 배우가 기자들을 향해 "많은 홍보 부탁드립니다"라고 하는 것이 가끔은 귀에 거슬리기까지 한다. 이는 어쩌면 영화판의, 영화 언론의 부끄러운 현재를 고도의 유머감각으로 승화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오래 전부터 "좋은 영화 만드세요"보다는 "대박 영화 만드세요"가 일상적인 인삿말이 되었더라는 누군가의 얘기처럼 영화언론을 우스꽝스럽게 꼬집으려 시작했을지 모를 "많은 홍보 부탁드립니다"도 이제는 유머가 아닌 일상어로 자리잡고 있다. 딴에는 줏대 있는 인생을 살겠노라고,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이 말한 "일등에 목 매느니 목을 매겠다"는 말을 비수처럼 맘 속에 품고 생긴대로만 살겠다는 사람이더라도, 이 거대한 광고, 홍보, 호객, 자기 PR의 시대를 흔들림 없이 버텨내기란 쉽지 않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온갖 자기 자랑을 양념 삼아 자기소개서를 완성해야 하는게 현실이니까. 그런 분위기 속에서 본업은 제쳐두더라도 홍보, 호객 정신만은 내재화하는 것은, 차라리 생존을 위한 영리한 진화에 가까울지 모른다.
바로 어제, 영화 <달콤한 거짓말>의 기자시사회가 있었다. 크리스마스용 로맨틱 코미디인 이 영화는 철없는 방송작가 지호(박진희)가 첫사랑과 이루어지기 위해 기억상실증으로 위장한다는 이야기다. 미스코리아 뺨치는 외모에 아줌마의 영혼을 갖고 사는(혹은 그럴 것 같은) 여배우 박진희와 어깨에 힘을 완전히 빼고 수수한, 혹은 시시껄렁한 동네 총각으로 변신한 조한선 콤비 외 개성만점 주조연들의 만담 퍼레이드와 슬랩스틱 코미디가 꽤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연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먹고 살기가 뭐 같은 불경기 개봉을 예견한 이 영화의 선택이 처절할 만큼 노골적이어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시선은 엉뚱한 곳으로 향하곤 했다. '롯데리아'에서 시간 때우고 '햇반'으로 밥상을 차리고 '폴로' 로고가 큼지막하게 들어간 티셔츠를 나란히 입으며 '구찌'에서 산 구두를 선물받는 주인공들의 하루 하루. 협찬사의 리스트만 놓고 보면 어느새 줄거리가 한 큐에 꿰어질 것 같은 드라마. 배우도, 감독도, 시나리오 작가도, 스탭들의 존재도 모두 사라지고 관객들 마저도 극장에 앉아있는 자신의 존재를 잊은 채 '오늘 저녁엔 햇반을 사다 먹어야겠다', '나도 남자친구한테 구찌 구두 받아 보았으면.', '우리도 커플티 폴로로 할까?'를 떠올리게 되는 거대한 집단 최면의 현장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이 영화의 목적은 늘 곁에 있어 가소롭게 생각했던 사랑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늘 우리 곁에 가까이 있었지만 눈여겨 보지 않았던 각종 브랜드의 존재를 각성시켜 주는 것이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누군가 사정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이 무슨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냐고 할 법하다. 요즘처럼 어려운 처지에 협찬사 한 군데 엮기가 쉬운 일인 줄 아냐고 말이다. 그렇담 질문 하나. 어쨌든 영화가 대놓고 뭐라도 팔아줘야 한다면 왜 하필 그렇게 팔아줘야 하는가. 반대로 협찬사는, 그렇게 브랜드 광고가 하고 싶었다면 굳이 영화를 택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박진희가 입는 이 티셔츠는 F/W 신상품이구나' 수준의 관객 반응을 원하는 것은 문화를 가장한 상술치곤 계산이 너무 얄팍했다는 것만 증명하고 있는 것 아닌가. 고작 이런 것으로 홍보 효과를 봤다고 만족하는 브랜드라면, 정작 그들이야말로 영화도 자기 브랜드도 싸구려 취급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 가격을 높여 비싸게 팔지만 말고, 그들 자신의 문화적 자존심도 좀 비싸게 팔아주면 안될까? 사람 값도 헐값이 되어버린 마당이니, 원. 송순진 기자(FILMON)
그래도 <미스 홍당무>나 <추격자> 같은 영화들이 등장했으니 기대를 아예 버릴 순 없지요. 오히려 상황이 어려울수록 거품이 빠지고 내공 있는 영화가 많이 등장하리란 기대를 품게 됩니다. 영화의 질적 문제를 논하기도 전에 마케팅 정신을 앞세우게 되는 현실은 여전히 안타깝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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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갈수록 수준과 질과 양이 떨어지네요.
2008/12/02 12:06영화배우 출연료가 수억씩 하는데 그런 거품 빼지 않고 관객들에게 무조건 보라고 하면 먹혀들어가지 않죠.
저 같아도 안보게 되더군요.
올 연말 기대가는 한국영화도 없고 외화밖에 볼게 없네요
그래도 <미스 홍당무>나 <추격자> 같은 영화들이 등장했으니 기대를 아예 버릴 순 없지요. 오히려 상황이 어려울수록 거품이 빠지고 내공 있는 영화가 많이 등장하리란 기대를 품게 됩니다. 영화의 질적 문제를 논하기도 전에 마케팅 정신을 앞세우게 되는 현실은 여전히 안타깝지만요^^
2008/12/03 1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