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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 프로그램, ‘세컨드’ 전성시대

CULTURE ON 2008/12/08 21:13 Posted by 파란다이스

TV에는 성역이 없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TV를 통해 들여다본 곳에는 미지의 세계와 농밀한 비밀들이 꿈틀대고 있었고, TV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듯 매일매일 이 모든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쓰는 중이다. 당연히 별세계에 거주하는 줄만 알았던 그들, ‘스타’들에 대한 환상이 걷힌 것 역시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TV는 화려한 무대 위에서 언제까지고 박수갈채를 받으며 누구보다 빛나는 인생을 살 것 같은 그들조차 기어이 무대 아래로 끌어내려 각자의 깊은 속내를 들춰내고야 만다. 그곳엔 별다를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여느 인간이 있을 뿐이고.

물론 이런 움직임은 비단 TV만의 일방적인 ‘횡포’ 때문은 아니다. 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선보이기 위해 ‘몸뻬’ 바지도 마다않고, 넘어지고 고꾸라지는 몸개그를 작렬하며 ‘간지’도 ‘가오’도 포기하는 것이 오늘날 그들이 살아남는 법이니까. MBC <황금어장>, SBS <일요일이 좋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 대표적인 오락 프로그램이 각양각색의 콘셉과 상황극으로 이들을 몰아넣으면서 결국 그들의 화려한 치장을 하나둘 벗겨내는 것으로 단숨에 수렴되는 것은 이런 최근의 움직임을 상징하는 작은 일례에 불과하다. 

이런 측면에서 톱스타가 아닌 이들, 즉 ‘A-’의 경우 더욱 진면목을 발휘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은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처럼 톱스타를 모셔 놓고 이들의 고민 상담이란 미명 아래 갖가지 면죄부를 부여하는 계획된 굿판을 벌이지 않는다. 또 <일요일이 좋다>의 ‘패밀리가 떴다’처럼 국민 요정과 국민 MC의 망가짐에 위안을 바라지도 않는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우리 결혼했어요’의 가상결혼에 흥분한 후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 역시 물론이다. <황금어장>의 ‘라디오 스타’, <일요일이 좋다>의 ‘골드미스가 간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세바퀴’에서 초특급 톱스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더욱 인간적인, 아니 진짜 이것이야말로 인간적이라 칭할 만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기에 이들 ‘세컨드 오락 프로그램’은 단순히 2등이라 치부할 수 없다. 바로 여기에서야 스타들에만 의존하는 주류 오락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재미와, TV가 그렇게 갈구해 마지않는 진짜 인간으로서의 그들을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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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과 폭로의 서바이벌 토크쇼: <황금어장>의 ‘라디오 스타’ 

‘라디오 스타’는 말한다, 절대로 예쁜 질문, 예쁜 포장은 없다고. 또한 톱스타도, 게스트에 대한 배려도 없다고. 사전 인터뷰 없이 김국진, 윤종신, 김구라, 신정환 네 명의 MC가 눈빛을 희번덕거리며 서로의 약점 잡기와 게스트들의 스캔들 폭로에 열을 올리는 이 구조는 아이러니하게도 앞서 방송되는 코너인 ‘무릎팍 도사’의 완전한 대척점에 서 있다. ‘무릎팍 도사’가 과거와는 달리 출연자들의 편에 서서 이들의 인생 역정을 드라마화하고 앞으로도 찬란할 게 분명한 미래에 힘을 실어 주는 ‘착한 방송’을 의도한다면, ‘라디오 스타’는 오히려 그 반대의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듯하다.

‘라디오 스타’의 네 MC들은 역경을 딛고 성공한 연예인에 의존하기보다는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이나 톱의 자리에 다다르지 못한, 다다를 수 없을 연예인들을 초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대놓고 비아냥대며 놀린다. (그러면서도 끝끝내 자신들을 ‘고품격 음악방송’이라 칭한다.) 이런 전복된 상하구도는 비단 MC와 게스트간의 관계에서 그치지 않는다. MC들간에 암묵적으로 혹은 가시적으로 끊임없이 전개되는 독설과 폭로는 남보다 더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스스럼없이 내비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비교우위를 점하기 위한 이들의 이 치졸한 말다툼은 그 자체로 색다른 콩트를 이루게 된다.

이는 물론 그들의 캐릭터가 직접적으로 그들 고유의 인성이나 배경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방송이라는 공적 공간을 아랑곳하지 않고 개개인의 사적 관계를 온전히 방송 안으로 끌어오는 ‘라디오 스타’야말로 어떤 성역도 개입할 수 없는 곳이다. 그렇기에 ‘무릎팍 도사’에 대한 경쟁의식이나 자조적인 자격지심 역시 이들에게는 중요한 유머 코드가 된다. 아름다운 감동을 주기 위해 점점 더 작위적인 상황극으로 내달리는 ‘무릎팍 도사’에 비해 비록 게스트의 생활고나 스캔들을 들먹이며 인터넷 댓글을 염려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간과할 수 없는 까닭은 이런 건질 것 없는 ‘저품격’ 수다 속에 피어나는 날것의 재미 때문이다. 서로서로 맞고 때리며 난장을 벌이면서도 고품격임을 천명하는 이 뻔뻔한 유머 속에는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 그대로 담겨 있다. ‘무릎팍 도사’가 안 그래도 기가 넘치는 출연자들의 그저 그런 고민거리를 바탕으로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어렵사리 완성하는 사이, 이들은 갑남을녀의 사는 방식을 스스로가 적나라하게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동물의 왕국>이 따로 없다는 지적은 절대적으로 유효하다. 시청자를 웃겨야 먹고살 수 있는 이 극명한 생존 논리 속에서 아닌 척 고고한 척하는 것을 포기한 이들에게 이 지적은 결코 비난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매회 ‘무릎팍 도사’에 치이면서도 결코 이들을 ‘세컨드’로 칭할 수 없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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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성이다: <일요일이 좋다>의 ‘골드미스가 간다’

예능 프로그램에 익숙한 출연자라고는 송은이, 신봉선뿐. 마흔을 코앞에 둔 배우 양정아, 영화배우 예지원, 모델 출신의 진재영, 트로트 가수 장윤정이 가세한 이 신선한 조합은 분명 웃고 떠드는 데 익숙한 이들을 한데 모아 놓고 자연히 판이 벌어지길 기다리는 여타의 오락프로그램과는 확연히 다르다. SBS의 간판 예능 코너인 ‘패밀리가 떴다’에 이어 방영되는 <일요일이 좋다>의 ‘골드미스가 간다’는 각종 ‘짝짓기 프로그램’이 연예인들의 공공연한 부킹의 장을 마련할 즈음에도 솔로로 굳건히 살아남은 이들을 한집에 몰아넣고 상생을 부추기는 일종의 결혼 추진 프로젝트다.

그러나 결혼 그 자체가 궁극의 목적은 아니다. ‘골드미스가 간다’는 게임을 통해 맞선 볼 사람을 선정하고 마침내 게임의 승리자가 맞선 자리에 나서는 일련의 과정들을 곧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치환하는 것에 주력한다. 이렇게 맞선이 결정된 즈음 설레어하고, 보다 좋은 첫인상을 남기기 위해 준비하고, 조언하고 조언받는 평범한 과정 속에서 연예인이라는 두꺼운 껍데기는 단번에 깨진다. 그들은 연예인이라기보다는 각자 자기 분야에 웬만큼 자리매김한 ‘유명한 사회인’일 뿐이다. 그렇게 연애하고 싶고 나아가 결혼하고 싶은 소박한 소망을 갖기까지의 이야기들은 여자들의 수다 속에서 자연히 피어난다. 자연스럽게 게임 요소가 가미되며 쇼 오락의 분위기를 돋우는 것도 ‘성공을 향한 여성들의 일과 사랑’이라는 목표에 정확히 부합한다. 왕언니 양정아든, 동네 아는 형 송은이든, 4차원 소녀 예지원이든, 옹알공주 진재영이든, 신세대 트로트 똑순이 장윤정이든, 댄싱퀸 신봉선이든 그들 모두가 보여 주는 행동 하나하나는 곧 이들이 천명하는 그대로 이들에게는 ‘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낮에는 이렇게 열심히 웃음을 주기 위해 분투하며 ‘일하는’ 그녀들의 모습이 담기고, 밤에는 크고 작은 수다 속에 연애사나 성공을 향한 열망 같은 인생의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결혼을 전제로 한자리에 모인 출연자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여과 없이 노출하며 진정으로 염원하는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할 때 비로소 가상결혼과 같은 설정이 미치지 못하는 여성의 삶 그대로가 자연스럽게 묻어나곤 한다.

어쩌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맞선을 보고 결혼에 골인하는 것은 이들 ‘골드미스’들에게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닌 것도 같다. 이들이 이렇게 즐겁게 뛰놀며 열심히 자기 인생을 설계하는 과정 속에 어느새 그녀 모두가 연예인이 아닌 평범한 여자로서의 삶을 꿈꾸며 성공을 향해 내달리는 여느 여자가 된다는 사실만이 중요해 보인다. 그들은 그저 결혼과 성공을 원하는 이 시대 여성들의 작은 조각일 뿐이다. 그래서 ‘골드미스가 간다’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시골생활을 ‘만끽’하는 톱스타들로는 절대 미칠 수 없는 지점이 존재하게 된다. 그들은 그저 ‘여성’이다. 그리고 알면 알수록 좀 더 ‘괜찮은 여성’이다. 단지 이 점만으로도 시청자들은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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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 반상회: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세바퀴’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어느새 ‘우리 결혼했어요’와 동의어를 이룸에 따라 세상을 바꾸는 퀴즈, ‘세바퀴’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위축돼 보인다. 방송이 나갈 때마다 커플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회자되는 ‘우리 결혼했어요’에 비한다면 아줌마들이 모여 벌이는 이 퀴즈쇼는 정말로 음지에 놓인 대표적인 오락 프로그램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수판조차 놓여 있지 않은 ‘세바퀴’는 왕년 ‘브레인 서바이버’가 그랬듯이 퀴즈를 풀며 벌어지는 일련의 돌발 상황에 더욱 의존하는 프로그램으로 가히 음지에 핀 낯선 꽃이라 칭할 만하다. 상식퀴즈부터 일상생활의 유용한 팁을 아우르는 각양각색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퀴즈가 끊임없이 제시되지만, 그럼에도 퀴즈쇼라기보다는 이미 전성기를 보낸 그들, 연예인이라기보다는 이제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가 되어 버린 그들의 구수한 입담과 못 말리는 재치가 프로그램의 주요한 볼거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MC 김구라, 박미선, 이휘재는 말끔한 진행을 의도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들 연예인들이 더욱 활발히 ‘오버’할 수 있도록 돕는 듯하다. 연예인보다는 오히려 그저 그런 생활인에 가까운 그들이 벌이는 쇼는 퀴즈라는 겨루기의 장이라기보다는 왁자지껄한 반상회를 연상시킨다. 대수롭지 않은 것에 화내고, 대수롭지 않은 것에 웃고, 때때로 남편과의 효과적인 부부싸움과 같은 시시콜콜한 팁을 모색하는 이들 각자의 행동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평범한 시각들이 그대로 녹아난다.

실제로 공중파 방송임을 염두에 두지 않고 펼쳐지는 거침없는 입담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상징인 아줌마들의 위상을 확연히 드러낸다. 이들은 가정의 중요성, 부부나 가족간의 관계 형성에 대한 조언 등 생활에서 우러난 요령과 경험들을 끊임없이 내뱉지만 그럼에도 이는 결코 어르신들의 잔소리가 되지 않는다. 자신들의 미천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주책없음을 당당히 설파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대로 이 시대 가정의 한 축을 이룬다. 그래서 이들 스타였던 아줌마, 아저씨들의 반상회는 오늘도 뜨겁고 또 즐겁다.

독특한 재미, 색다른 느낌

한집에 살지만 워낙 형이 잘나가는 탓에 눈에 띄지 않는 아이는 가끔은 뒤처져 보이기도 또 모자라 보이기도 한다. 허나 ‘진상’ 캐릭터의 진면모를 선보이며 이들의 살아가는 법에 대한 절절하고도 애정 어린 고찰을 담았던 영화 <미쓰 홍당무>의 주인공 양미숙(공효진)도 말하지 않았던가. “1등에 목을 매느니 목을 매겠다”고. “세컨드면 됐지, 뭘 더 바라냐”고. 마찬가지다. 이들은 톱스타로는 보여 줄 수 없는 독특한 콘셉과 출연진을 통해 나름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것은 물론, 어디도 견줄 수 없는 오락 프로그램의 독특한 위치를 점유해 꾸준히 영역을 늘려 가고 있다. 이들이 주는 웃음이 특별한 이유는 더 이상 이들이 이류이거나 세컨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이 보여 주는 특별한 색깔 특별한 느낌들은 결코 일류나 이류로 재단할 수 없는 독특한 경지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라 해야 옳다. 조만간 형만 한 아우가 반드시 등장할지어다. 강상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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