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가 12월 11일부터 19일까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와 스폰지 하우스에서 열린다. 필름온은 서독제의 웹 데일리 파트너가 되어, 영화제 기간 동안 서독제의 모든 것을 지상 중계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 순서로 서독제 관객심사단이 보내온 영화들에 대한 짧은 감상을 소개한다. 독립영화에 관한 애정으로 써내려간 글들이니 영화제를 앞둔 여러분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독립장편경쟁 3]<워낭소리>(이충렬, 2008)
<워낭소리>의 영문 제목은 ‘Old Partner’이다. 이 영화를 표현하기엔 영문 제목이 더 어울린다. 이 다큐멘터리를 본 후 최원균 할아버지와 소를 이어주는 매개인 ‘워낭 소리’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관계를 정의하는 ‘무엇’이 더 중요하다.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는 ‘동료’였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동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눈빛만 봐도 통하는 동료’ 말이다.
다큐멘터리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워낭 소리는 고요한 사찰에서 듣는 풍경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풍경 소리는 그 소리의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하고 워낭 소리는 그 소리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게 한다. 무엇보다 궁금하게 만드는 것은 할아버지의 놀라운 반응이다. 할머니 말에는 대꾸도 안하시는 분이 워낭 소리가 울리면 귀신같이 돌아보시는 모습에 ‘뭔가 알고 계시는 걸까’ 하는 질문이 쌓여간다.
할아버지와 소는 함께 했던 지난 30년 동안 ‘동료’였다. 다리가 아파 제대로 걷지 못하는 할아버지에게 소는 고된 농사를 짓게 해준 조력자였다. 먼 곳을 갈 때 발이 되어주었고, 언제나 들려주는 워낭 소리는 즐거운 수다와 같았다. 몸을 부대끼며 산 할머니보다 더 가까이 있었고, 또 그런 소가 더 가까이에 있길 바라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모습을 달리 하고 있는 나’였다. 소의 입장에선 인간의 모습을 한 나였고, 할아버지 입장에선 소의 모습을 한 나였다. 평생 묵묵히 일만 하며 살아온 그들은 너무 많이 닮아 있었다. 그들은 이제 다 늙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이 들어 몸도 성치 않아 일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유야 다르지만 똑같이 걷는 것도 힘들어졌다. 그들의 위태로운 걸음이 말해주듯 정말 힘들게, 고되게 살았다. 그래도 그들은 일한다. 일이란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의무이며 운명이기 때문에 쉬이 놓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소의 교감만큼 마음에 크게 와 닿았던 것은 할아버지와 세상의 괴리였다.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할아버지는 멀찌감치 떨어져 계셨다. 일일이 손으로 모를 심고, 낫으로 벼를 베며 사료도 쓰지 않고 계셨다.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이 꼭 내가 일부러 멀리 떨어뜨려 놓은 것처럼 죄책감이 들었다. 특히 할아버지가 소를 500만원에 판다 하니 사람들의 비웃음 소리가 불쾌할 정도로 불편하다. 거기서 내 모습을 발견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큐멘터리에서 언뜻 보기에 부인 이삼순 할머니는 소와 할아버지를 떼어 놓으려는 악역을 맡고 계시다. 소를 팔자고 할아버지를 독촉하시고, 소에게만 정성을 다하는 할아버지에게 싫은 소리도 하신다. 하지만 한숨을 자주 내뱉고 앓는 소리를 하셔도 누구보다 할아버지를 걱정하시고 소를 생각하신 것이 할머니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우선순위가 달랐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를 방해하는 요소처럼 보인 것은 아닐까. 할아버지에게 소가 나를 빼닮은 동료인 것처럼 할머니에게는 할아버지가 평생을 함께 한 동료요, 앞으로도 함께 할 동료인 것이다. 그러니 할머니는 소보다 할아버지가 먼저였던 것이다.
이야기가 흐르는 동안 이상할 정도로 별다른 감동은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원래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당연할 것일 수도 있지만, 동물을 싫어한다고 해도 끝까지 소에게 일을 시키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퍽 불편하다. 그런데 소가 일어나지 못한다면 수의사를 불러낼 때, 할머니가 ‘같이 가지 않고 왜 먼저 가냐’고 말할 때, 비쩍 마른 소를 땅에 묻을 때 슬픈 감정과 눈물이 밀려온다. 전초전이 없었는데 갑자기 밀려와 당황스러울 정도이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누군가와 오랫동안 함께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를 떠나보내는 것은 더 힘들다. 직․간접적으로든 그것을 지켜보는 것도 힘들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하지만 이별만큼 어렵고 힘든 일은 없다. 마음을 울린 것은 교감도, 괴리도 아닌 이별이었다. 최연영(서독제 관객심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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