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의 대화 현장 취재2_단편경쟁 8 (12월 13일 토요일)
(<125 전승철>의 박정범 감독에게) 어디까지 실화인가? 각색했다면, 어떻게?
전승철은 나의 7년 친구였다. 영화 내용 전체가 실화라기보다는 탈북자들의 하루를 스케치해본 것이다. 125로 시작되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사무소인) 하나원의 번호라 중국 비자를 받을 수 없었다. 최근 베이징 올림픽 때문에 달라지긴 했다. 이제는 임대주택의 거주지 번호로 주민등록번호를 받게 되었다.
감독님들의 영화를 각자 소개해달라.
최창환 감독(<호명인생>): 2000년에 내가 겪은 실화다. 영화를 찍으려고 막노동판에서 일했던 때다. 영화의 인혁보다 나는 좀 더 강하게 나갔었다.
박정범 감독(<125 전승철>): 영화가 완성된 뒤 이틀 후에 승철이는 세상을 떠났다. 암 투병을 오래 했었다. 또 그 친구에 대한 내용의 영화를 준비 중이다.
이진우 감독(<오후 3시, 봄날>): 지하철역에서 신발 한 짝을 벗고 계신 할아버지를 뵈었다. 나는 지하철이 와 탔는데, 그분은 타지 않으시더라. 그때 받았던 인상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임형섭 감독(<외할머니와 레슬링>): 실제 나의 할머니 캐릭터를 따와서 만들었다. 할머니가 이 영화를 보고 좋아하셨다. 영화에 나오는 할머니와의 말싸움(프로레슬러들이 정말 큰 아픔을 느끼나, K-1과 프로레슬링 어느 것이 재미있나 등)은 진짜 있었던 일이다. 할머니는 아직도 (영화에서처럼) 이겼다고 뽐내며 좋아하던 레슬링 선수가 멍청한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임형섭 감독에게) 왜 제목을 그렇게 지었나?
할머니가 실제로 레슬링을 좋아하신다. 할머니는 식사 후에 화장대 위의 할아버지 영정 앞에 커피를 갖다 두는 재미있는 분이시다. 할머니가 (졸업영화 소재를 주셔서) 졸업을 많이 도와주신 셈이다(웃음).
(박정범 감독에게)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노래는 전승철이 부른 것이다. 언제 부른 것인가? 또 영화 곳곳에서 미닫이문의 사용이 인상적이었는데, 특별한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잘 부르는 노래가 있나 물어봐서 추천받은 것이고, 12월 중순에 우리 집 거실에서 노래한 것을 녹음했다. 그리고 며칠 뒤, 승철이는 병원에 입원했다. 미닫이문은 임대주택에, 공간들에 갇힌 느낌을 주고 싶어서 쓰게 됐다. 실제로 임대주택엔 여닫이문을 쓸 만한 공간이 없어서 미닫이문을 쓴다.
(이진우 감독에게) 영화에서 이야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건가?
지하철에서 받은 '인상'을 풀어가고 싶었고,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진우 감독에게) 연기자들의 연기방식이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에서처럼 오브제가 다뤄지는 듯한 느낌이다.
영화를 찍기 전에 머릿속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그런데 처음에 영화를 찍을 땐 지인들을 배우로 썼다. 그렇기에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가 힘들었다. 손동작, 동선 등을 하나하나 맞춰주다 보니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프로페셔널한 배우와 작업하게 되면 다른 방식으로 찍어보고 싶다.
(이진우 감독에게) 오후 3시, 봄날은 나른하고, 노곤하고, 조용한 느낌인데 비가 오는 설정을 하신 의도가 있는지?
그날 비가 와서(웃음). 미리 날씨 정보를 알아보고 경우의 수에 대비하긴 했다. 촬영 도중에 비가 왔고, 뒷부분에 나오는 우산도 즉석에서 구해 넣은 거다.
(최창환 감독에게) 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더 착할까요? 또 흑백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착해서일까요(웃음). 목소리를 많이 못 내서 착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인혁과 갑보 둘의 관계에서 보면 (불만을 더 잘 표출하는) 인혁이는 갑보 보다 나쁘죠. 또 흑백을 선택한 이유는 공사장이니 전부 회색으로 보였으면 했기 때문이에요. 흑백이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느낌도 있었다.
(박정범 감독에게) 전승철의 집 벽에는 여행지의 사진들이 많이 붙어 있다. 실제 전승철도 그렇게 어디론가 가려고 했었나.
전승철 개인적으로는 해외여행에 대한 꿈이 있었다. 몸이 좋아지면 가려고 했는데 못 갔다. 그런 부분을 해소해주려는 면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탈북자들은 한국생활 중에 영국이나 미국으로 또 불법 입국을 한다. 똑같이 접시 닦는 일을 한다면 임금이 센 곳에서 하는 게 낫다는 거다. 영국이 보조금도 주게 되어 영국으로 많이 가는 추세다.
(최창환 감독에게) 공사장이라서 산만하고 소란스러울 수도 있는데, 대칭적 구도도 많고 정지된 느낌이 많이 들었다.
인혁과 갑보는 대구의 프로 연극배우들이다. 비전문 배우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힘든 면이 있어서 그들을 썼다. 개인적으로 정지된 느낌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진우 감독에게) 웨스턴, 슬랩스틱 등의 느낌이 있다. 좋아하거나, 영향을 받은 영화가 있나?
앞부분에서 서부극처럼 찍으려던 것은 맞다. 삑삑 하는 소리를 내는 악기는 하나의 유머로 봐 주셨으면 한다.
(최창환 감독에게) 2000년의 실제 경험을 담은 영화라고 하셨다. 그때와 비교해 현재 생각이 변한 점이 있나?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에는 '착취'가 들어갈 수밖에 없고 당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구조적 문제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임형섭 감독에게) 재미있는 요소가 많고 일상적 포착을 잘 한 것 같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구성한 디테일들이다. 주위에 재미있는 친구들이 많다. 졸업의 절실함에서 비롯된 일상 속의 발견이랄까.(웃음)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작품 계획을 얘기해달라
최창환 감독: 답답한 영화만 찍는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것 준비를 많이 했다. 그런데 지원금이 나오지 않더라. 지금은 게이액션좀비무비를 준비 중이다.
박정범 감독: 2월에 나올 장편을 준비 중이다.
이진우 감독: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임형섭 감독: 열심히 살겠습니다.(웃음)
글 김효정(서독제 데일리팀) / 사진 이나경(서독제 기록팀)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심사단 리뷰 <김추자: 무인도> - 주름진 미소, 그리움
누구에게나 추억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것은 어떤 사건일 수도 있고, 누군가와 주고받은 대화일 수도 있고, 혹은 피부에 스며든 감정일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은 마모되고 아련해지지만 그러하기에 그리움은 더욱 간절해진다. 노년에 접어든 사람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지나온 긴 세월들에 일일이 대답하는 것이 막막해 그저 침묵하는 노년이지만 지난 시간들을 홀로 꺼내보고 쓰다듬으며 오늘을 버티는 것이, 또한 노년의 삶일 것이다.
상구 할아버지는 비탈진 언덕의 쪽방에서 살며 무료 급식소에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독거노인이다. 세월의 굴곡이 그대로 전해지는 깊은 주름과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는 다른 할아버지들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상구 할아버지의 눈 속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보인다. 추억하고픈 어떤 순간을 향한 간절함. 지금은 쉽게 구할 수 없는 김추자의 ‘무인도’ LP를 찾기 위해 할아버지는 걷고, 걷고 또 걷는다.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오르내리고 쏟아지는 비를 맞기도 한다. 급식 대신 주는 500원을 받으려고 똑같은 길을 몇 번이고 왔다 간다.
LP를 찾는 할아버지의 걸음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할아버지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지, 무엇이 할아버지를 그토록 간절하게 하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는 끝내 할아버지의 내면이나 과거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오랫동안 찾아다녔던 김추자의 ‘무인도’를 들으며 홀로 행복한 미소를 짓는 할아버지의 고단했을, 그러나 아름다웠을 그 순간을 가만히 지지해 줄 뿐.
무인도와 같이 홀로 떨어진 삶이지만 쓸쓸하거나 애처롭지만은 않다. 온 힘을 다해 추억하고픈 시간들이 있으니. 훗날, 상구 할아버지와 같은 주름진 미소를 짓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삽입된 김추자의 노래 ‘무인도’는 흑백 영상과 적절히 어우러져 할아버지의 그리움에 깊이를 더해준다. 최한나(서독제 관객심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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