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협 10주년, 오늘의 독립영화⑨-김일권 프로듀서
릴레이 인터뷰 아홉 번째 순서로 독립영화 제작자로 꾸준하고 활발한 활동을 해온 김일권 프로듀서를 만났다. 현재 독립영화가 한 단계 도약해야 할 시기에 와 있다는 제작자로서의 고민과 최근에 설립한 독립다큐멘터리 배급사 ‘시네마 달’에 대한 고민을 함께 들어봤다. ‘시네마 달’이 독립 다큐 배급에 새로운 길을 뚫고, 잘 버텨내 한독협의 든든한 파트너가 되길 바라며 인터뷰를 시작해 본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소감 한마디 해 달라.
10주년 기념 영상물에 보니 삼성동 사무실 있을 때 축문 읽는 장면이 있었다. 나도 그 현장에 있었는데 당시 차장이었던 홍세영 씨가 부침개 부치고 그랬다.(웃음) 그 전까지는 독립영화인이라고 얘기하기에 부족했던 사람이었다. 그때부터 인연을 맺고 협회 일을 했는데 지금 보면 어렵게 10년을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언제 영상인가?
1998년도에 한독협 창립식 전에 집들이 영상이다. 삼성동에 한독협과 문화학교서울이 같이 사무실을 열었었다. 그곳에서 몇 년 있었다.
10년이 흘러 당시와 많이 변했다.
당시에 비해 한독협 규모나 예산도 굉장히 커졌다. 그러면서도 아직 할 일들이 여전히 많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요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상황에서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준비할까,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마음도 무겁고 개인적으로 새로운 다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창작은 ‘또라이’같은 용기가 필요하다
언제 영화 관련 일을 시작했나?
군대를 늦게 가서 제대하니까 20대 후반이었는데 제대 후 사회진출을 어떻게 할까, 앞으로 뭘 할까 고민이 많았다. 그때 생각한 게 영화다. 영화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도 있었다. 내 나이 또래가 다 그렇듯 운동의 끝물 세대였다. 영화가 파급력이 크지 않나. 그래서 연출자의 꿈을 가졌고, 자연스럽게 충무로 중심 영화 일을 했다.
그럼 어떻게 독립영화와 인연을 맺었나.
우연한 기회로 서울단편영화제, 인디포럼, 그리고 동숭 씨네마텍에서 독립영화제를 접하면서 ‘아, 이런 영화가 있었는데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했다. 생각해 보니 학교 다닐 때 단편영화 만든다고 16mm로 찍어보기도 했고, <파업전야> 상영회도 하고 그랬다. 그래서 독립영화 영역에서 기획, 제작하는 게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한독협이 만들어졌다.
처음엔 무슨 일을 했나.
당시 인터넷 붐이 일던 때라 홈페이지도 만들었고, 인터넷 콘텐츠 배급을 하자고 처음 제안했다. 주류에서 하지 않았던 것을 독립영화가 미리 선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작품도 하고 한독협 홈페이지도 만들고 그랬다.(웃음)
홈페이지 제작, 보통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다.(웃음)
공대 출신이다. 그게 좀 도움이 됐다. 사실 공대 갈 때도 고민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 문과를 선택하고 싶었는데 나와서 밥벌이가 안 될 것 같아 이과를 선택하고 대학도 공대를 갔다. 그래도 한 쪽에선 꿈을 못 버려 전공 수업은 안 듣고 다른 수업을 들었다.(웃음)
연출에 대한 미련은 남았을 것 같다.
이건 개인적인 얘긴데 친구들이나 선후배를 만나서 술을 마시면 “내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나”하고 물어본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지금 잘 살고 있으니까 그대로 살아라”, “말도 안 되는 얘기 좀 하지 말고 니가 알아서 살아라”라고 말한다.(웃음) 근데 한 친구는 진지하게 “창작을 하거나, 도를 닦거나 해라”라고 했다. 제작 말고, 연출하는 게 잘사는 일 같다고 하는데, 그건 영화하는 사람이라면 다 똑같은 마음인 거 같다. 창작은 용기고, 용기를 내려면 약간 ‘또라이’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난 그게 좀 부족한 거 같다.
제작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1998년도에 단편을 찍었고, 1999년도에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근데 그때는 배우는 기간이었다. 영화기획, 제작, 프로듀싱 이런 걸 영화학교나 워크숍에서 배운 게 아니라 혼자 공부했다. 현장 경험 있는 분들에게 물어봤더니 A4 한 장에 ‘식대 곱하기 인원, 곱하기 몇 회, 장비는 얼마. 예산은 이렇게 짜면 됩니다. 그리고 잘 움직이시면 되요’라고 10분 정도 말하고 끝내더라.(웃음)
정말 피와 살이 되는 교훈이다.(웃음)
현장에서 시뮬레이션을 하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에는 역할들은 나뉘어 있었지만 제작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과정을 다 이해하는 분들이 없었다. 다들 감독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어서 다른 사람 작품 할 때 역할 바꿔서 해주고, 그런 거 아니면 충무로 스탭들이 와서 제작과정을 봐준다거나 이런 상황이었다.
어떤 작품을 제작했나.
지금 하는 것은 MBC 드라마넷과 공동제작하는 최지영 감독의 <바다 쪽으로 한 뼘 더>(가제)다. 지난해 인디스토리가 제작한 <판타스틱 자살소동>과 비슷한 형식의 프로젝트다. 그리고 신동일 감독의 <반두비>는 막바지 편집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외 한독협 10주년 기념식에서 상영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인디스페이스 개관작 <은하해방전선>, 최하동하 감독의 <택시 블루스>, 김태일 감독의 <안녕, 사요나라> 등의 작품들이 있다.
저예산과 독립영화 교류 필요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계속 제작 현장 쪽에 있었던 건가.
독립장편은 1999년 하반기에 시작했다. <그녀 이야기>라고 ‘노랑꽃 3부작’ 중 하나다. 그 후 이송희일 감독과 옴니버스 단편을 만들었고, 그러다가 독립영화 내에서도 시스템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2000년대 초반 디지털 기술이 보급되면서 단편을 만드는 작업이 수월해졌다. 그때가 장편영화로 넘어가야 하는 시기였다. 근데 단편과 장편은 다르다. 호흡도 길고, 투입되는 자본과 물량도 많다. 그래서 제안한 게 ‘사자성어 프로젝트’다.
잠깐 소개해 달라.
옴니버스 장편을 만들고, 그걸 토대로 인력풀 등 시스템을 갖춰 펀딩을 하자는 것이었다. 인하우스 컴퍼니를 만들고 감독들이 프로젝트를 공동 개발하고, 프로덕션 기간을 단축시키면서 스탭에게는 안정적인 생활을 제공하는 거다. 그래서 1년에 독립 장편이 3~4편 정도 안정적으로 나올 수 있게. 근데 그게 망했다.(웃음)
슬프다. 왜 망했을까.
그때가 2001년이었는데 일단 의욕만 앞서고 준비가 안됐던 것 같다. 사람과 시나리오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자본을 조율하고 운영하는데 믿음이 가는 주체였어야 했는데 우리가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고, 또 그 정도 시장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
분위기는 좋았지만 저예산 장편 영화들을 꾸준히 만들고 배급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흥행하고, <다찌마와 리> 같은 인터넷 영화가 잘됐다. 당시만 해도 장편을 만들어서 극장에 걸면 기본 4~5천명 이상 들고 부가판권 팔면 어느 정도 회수는 되고 했는데, 자본의 입장에서 작은 규모의 작업은 별거 아니라는 거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3, 4억 들여서 7, 8억 버는 것과 100억 들여 100억 버는 건 게임이 다르다.
큰 영화도 좋지만 작은 규모의 영화가 활발하게 등장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책적으로 독립영화들을 산업화 시켜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산업화란 수요와 공급이 생기는 거다. 자본이 회전돼야 수익도 생기는 건데 자본의 입장에서 별 매력이 없던 거다. 그건 문화다양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근데 요즘 그런 경향이 보인다. 대작 영화 아니면 10억 이하의 영화들로 구분되는 상황이 가속화되고 있다. 근데 그걸 그때 한다고 했으니.
‘사자성어 프로젝트’, ‘인하우스 컴퍼니’를 지금 하면 가능할까.
사실 지금도 어려운 것 같다. 독립영화 제작, 배급사 인디스토리, 내가 하는 시네마 달, 그리고 감독 개인이 하는 제작사들이 있지만 자본의 입장에서 이런 인프라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뻔하다. 대한민국 영화 시장에서 저예산과 독립영화가 더 많이 유통하고 교류하면서 섞일 필요가 있다. 저예산 영화들을 보면 홍상수 감독도 1억 갖고 작품을 만들지 않나. 독립영화 쪽에서 갖고 있는 제작 노하우나 방식을 저예산 쪽에서도 알 필요가 있다.
방법이 없을까.
독립영화는 진짜 기발한 영화도 나올 거고, 독립적인 현장 시스템이 있다. 이런 게 풍성하고 활발하게 가야한다. 정책하시는 분들이 이걸 산업화시킬 생각을 하고 접근을 해야 한다. 그 안에는 배급, 상영 시스템을 갖추는 문제가 있다. 근데 요즘 독립영화 배급 예산이 삭감된 게 많다. ‘다양성 영화 마케팅 지원 사업’ 등은 아예 없어졌다. 그 제도 때문에 <우리 학교>, <우린 액션 배우다> 등 좋은 독립영화가 많이 개봉됐다.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 수도 있겠다.
이건 ‘충무로다, 독립영화다’ 이런 문제가 아니다. 100억짜리 입장에서 보면 10억 이하면 독립영화인 거고, 강한섭 위원장 말로 치면 대한민국 전체 영화가 독립영화다.(웃음) 저예산작품들의 틀을 갖추면서 수익적 측면은 물론 다양성 측면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게 많다. 작은 영화 시장을 합리적으로 산업화시키거나 조정하는 부분이 필요하다. 그 안에 독립영화와, 저예산 영화든 상업영화든 전체적인 고민을 같이 할 필요가 있다.
시네마 달, 끝까지 버티자!
시네마 달에 대한 얘기 좀 해보자.
다큐멘터리를 예전부터 하고 싶었다. 좋은 감독님들과 작업할 기회가 생겼고, 다큐멘터리가 어떻게 제작, 배급, 유통되는지 배울 수 있었다. 그때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와 다르게 진행된다는 걸 알았고 그 가능성이 좀 더 많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정원이 있는 2층 집을 지어서 1층에는 다큐멘터리 감독들 작업실을 만들고, 2층에는 사무실을 만들어서 같이 살면서 고기도 구워먹고 낭만적인 삶을 사는 게 꿈이었다.(웃음) 그런 와중에 ‘푸른영상’에서 일했던 이상엽 프로듀서가 작년부터 다큐멘터리 제작을 전문적으로 하겠다고 하며 시네마 달을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시네마 달의 방향이 있다면.
시스템 구축이다. 극장 배급도 중요하지만, 일본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우리 학교>가 진행한 바 있는 대안상영도 중요하다. 대안상영은 다른 영화에 대한 또 다른 체험이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자기와 같은 피해를 당하는 다른 사람들의 영화를 보는 것은 굉장히 다른 경험이다. 그래서 대안상영을 좀 더 체계적으로 만들자 했다. 상영 공간을 만드는 것은 사회운동이나 시민단체 운동과 같이 하면서 커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도 일조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극장배급도 체계적으로 하고, 가장 큰 다큐멘터리 시장인 방송을 뚫기 위해서도 라이브러리를 갖추고 있는 게 중요하다. 해외도 마찬가지고. 그게 우리 방향이다.
대안상영이라 하면 극장 상영 외에 것들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인가.
그렇다. 최근 아파트 부녀회의 요청으로 <어느 날 그 길에서>를 상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반응도 좋고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환경에 관한 얘기이기 때문에 아파트 주민들에게 너무 재밌는 주제였던 것 같다. 이렇게 자발적인 것들이 더 많아지고 일상화 되면 좋겠다.
시네마 달이 이제 네 달째인데 실제 해보니 어떠나.
음, 오늘이 또 월세 내는 달이다.(웃음) 시작하면서 같이 결의했던 것 중 하나가 ‘최대 목표는 버티는 거다’였다. 수익이 단기간에 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냥 버티는 게 중요하다. 김동원 감독님은 푸른영상 작품들을 주시면서 “너네 밖에 없으니까 주는 거야”라고 말하셨다. 다큐멘터리를 전문적으로 배급하겠다고 한 것에 대한 책임감도 크다. 우리밖에 없는데 우리가 망하면 어떡하나 하는 책임감이 있어서 잘 버텨야 한다.
버티는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
사람간의 관계가 아닐까. 잘 버티려면 끊임없이 일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감독이나 배급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잘 해놓지 않으면 힘들어진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배우고 있는 중이다. 배급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으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도 배우면서 하고 있다.
독립영화, 도약해야 할 시기
운영 중인 ‘달 BAR’에 손님이 많은 것도 큰 도움이 될 거 같은데.(웃음) 현재 독립영화인으로서 고민이 있다면.
제작자의 입장에서 얘기한다면 독립영화를 제작비 1, 2억 갖고 하기 시작한 게 이제 1, 2년 됐다. 실제 1억 넘는 영화들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나 영상위원회 지원 받고, 부산영화제에서 후반 작업 지원 받으면 겨우 1억 조금 넘는다. 지금 그 지원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1, 2년 사이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여전히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좀 경쟁력 있게, 이제 막 승부해보려는 시점에 있다.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시점인데 요즘 분위기가 안 좋지 않나. 그렇게 어렵게 만들었는데 배급 상황이 여의치 않는 난감한 상황도 생긴다.
지금이 과도기라는 건가.
지금은 한 단계 도약해야 할 시점이다. 근데 아직 그걸 넘어가기에 유연한 조건이나 상황은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한 단계 뛰어넘을 수 있나 고민하고 있다. 또 요즘은 시네마 달이 잘 살아남아서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배급로를 뚫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다. 아, 가게 장사(달 BAR-대학로 성대 앞에 위치)도 잘 안 된다.(웃음)
과도기를 극복해야할 독립영화들은 어떤가.
허덕이지만 즐겁게 만들고 있다. 이정도면 관객들에게 보여줘도 창피하지 않은 영화를 막 시작하고, 실험하고 있다. 더 많은 것들을 실험해야 할 시점이다. <똥파리>나 <약탈자들> 같은 좋은 영화들이 막 나오고 있다. 또 다큐멘터리에서도 좋은 퀄리티의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는 시점이다.
고민이 많다. 고민에 대한 답은 좀 찾았나.
디지털 기술이 발전이 된 것이 저예산으로 제작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 큰 축이 됐다. 디지털 시네마 기술의 발전으로 배급 비용 자체가 낮아지는 상황이기도 하다. 독립영화 내부에서도 작품을 한 편, 두 편 만드는 창작자들이 계속 생기고 있다. 이건 중요한 문제다. 관객들과 피드백을 갖고 경험이 쌓이니까 창작자들이 다음 작품에선 뭘 해야겠다는 것이 명확하게 생긴다. 그러면서 작품은 점점 좋아진다.
한독협에 제언 한마디 해 달라.
제언할 입장은 아닌데.(웃음) 시네말 달도 버텨야 하지만 한독협도 잘 버텨야 할 거 같다. 특히 요즘 같으면, 영진위와 소통이 잘 안 되는 면도 있는 것도 있다. 일단 내부적으로 더 결속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서로의 고민을 확인하고 같이 이야기도 하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앞으로 십년을 준비하려면 내부적으로 더 많이 교류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회원 관리에 신경 쓸 필요가 있는데 워낙에 규모가 커지고 회원도 많아지다 보니까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활동가에 비해 일이 너무 많아 힘드시겠지만 그런 부분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대외적으로도 인디스페이스가 1년이 지났고 서울독립영화제 올해 관객이 많이 늘면서 안정화 되는 것 같다. 이제 또 다른 10년을 위한 장기적 플랜을 세웠으면 좋겠다. 안효원 기자(FILMON), 김나라 기자(컬처뉴스)
시네마 달 http://cinemadal.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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