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추억이라면, 영화관은 추억의 앨범이다. 굳이 35인의 거장 감독들이 영화관에 얽힌 내밀한 추억을 담은 영화 <그들 각자의 영화관>이 아니더라도 영화를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특별한 영화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우선 FILMON 기자들이 빌딩숲으로 우거진 서울 구석구석에도 특별한 극장이 있음을 증명하노니 아울러 당신의 영화관은 어디에 있는지 돌이켜보았으면 한다. 당신의 영화관은 어디입니까?
사람 가리지 않는 극장? '시네마정동'
시네마정동은 그리 인상적인 극장이라곤 할 수 없다. 서대문역과 광화문역 사이, 경향신문과 문화일보, 그리고 길 건너 서울신문 사이에 애매하게 껴 있는 위치도 그렇거니와, 특별한 프로그램이라고는 영화 3편을 모은 심야상영(이 부분만큼은 한국 극장가에서 거의 처음으로 본격적인 행동을 보였다)뿐, 특색있는 영화를 튼다거나 이벤트를 벌이는 일도 별로 본 적 없다. 관은 여러개지만 멀티플렉스다운 위용은 없다. 어쨌거나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에서 등장하는 맛있지도 맛 없지도 않은 라면 맛 같은 극장이다. 사실 시네마정동은 지역민을 위한 극장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지 모른다. 인근의 중고등학생들이 자율학습 땡땡이를 치고 갈 수 있는 극장, 직장인들이 조직의 스트레스를 영화 한 편으로 풀어버리려고 찾는 극장, 백수나 재수생, 삼수생들이 슬리퍼에 추리닝 바람으로 찾는 극장, 길 건너 삼성병원이나 적십자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은 채로 다녀올 수 있는 그런 극장 말이다. 덕분에 주머니는 홀가분하고 차림새가 점잖지 않는 사람이라도 한가로운 이곳에서는 심심찮게 관 하나를 통째로 빌린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엄청난 위락시설을 보유한 멀티플렉스처럼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일 없이도 선택의 폭은 꽤 넓다. 영화를 즐기러 온 관객을 돈 쓰러 온 소비자, 딱 그만큼으로만 바라보는 화려한 극장 체인과는 어딘지 느낌이 다르다. 이사를 가는 마당에 자주 찾지 못하게 됐지만, 계속 수수한 모습으로 남아주길 바랄 뿐. 송순진 기자(FILMON)
사랑을 속삭이는 시간이 좋다 '명동 중앙시네마'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 극장이 늘어나면서 전통 극장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뭐, 전통 극장 또한 영화를 갖고 영업을 하는 곳이라 그들의 퇴출에 심히 슬퍼할 이유는 없지만, 수십 년간 많은 영화들이 상영되고, 그 만큼 많은 관객들이 울고 웃었던 곳이 사라진다는 건 슬프다. 특히 영화제라고 하는 것이 똑같은 얼굴을 한 극장들에서 진행되고 개성을 잃어가는 것은 한스럽기까지 하다. 그 가운데 오랜 이름을 유지하고 있어 자주 찾게 되는 곳이 명동의 중앙시네마다. 중앙시네마에는 인디스페이스, 스폰지 하우스 등 타 극장들과 좀 다른 영화를 상영한다. 근데 이 극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영화 시작 전후 조용히 생각을 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2층에 마련돼 있다. 그래서 영화를 기다리는 마음, 영화를 감동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밀물에 쓸려 내려가듯 쫓겨나지 않고 감흥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좋다. 스크린이 좀 작으면 어떤가.(1, 2관은 크다.) 영화와 사랑을 속삭일 시간과 장소가 있다는 게 행복할 뿐이다. 안효원 기자(FILMON)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 '대한극장'
난 멀티플렉스 체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팝콘 냄새가 두통을 일으키고 극장이라기보다는 쇼핑몰에 가까워 인파에 금세 지쳐 버린다. 물론 작은 규모의 독립영화 혹은 예술영화 극장도 별로다.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건 흐뭇하나 불편한 좌석과 열악한 시설이 맘 상하게 한다. 차라리 집에서 DVD를 보는 게 낫지. 그래서 난 대한극장만 간다. 50년이 넘은 역사를 지녔고 최초로 70mm 영사기를 도입했다는 백과사전적인 사실은 잘 모른다. 대한극장에서 <벤허>를 본 경험 역시 없다.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 PC로, 혹은 조금 기다려 DVD나 IPTV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채널이 이처럼 다양해지고 있는 지금, 굳이 극장에 가서 영화를 감상하는 이유는 뭘까? 물론, 데이트 같은 인맥 챙기기의 목적은 제외하고. 우리가 돈과 시간을 들여 극장 의자에 앉는 건 영화를 보다 실감나게 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거실의 47인치 HDTV와 비싼 5.1채널 스피커로도 채워지지 않는 ‘극장에서 영화 보기’의 쾌감 때문이 아닐까. (롯데시네마 같이 ‘말로만 멀티플렉스’가 아닌) 개봉하는 거의 모든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진정한 멀티플렉스이면서 사람들에 안 떠밀리고, 앞좌석에 아무리 키 큰 사람이 앉아도 스크린이 온전히 눈에 들어오는, 액션이면 액션, 로맨스면 로맨스 장르 고유의 사운드로 ‘극장에서 영화 본다’는 기분을 만끽하게 해주는 영화관. 이것이 내가 집 근처에 포진한 3개의 CGV를 무시하고 좀 더 먼 대한극장으로 가는 이유다. 정미래 기자(FILMON)
우리 동네 영화관 'CGV공항'
이런 자리에 멀티플렉스 극장을 선정한 것만으로도 참 운치 없는 짓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곳곳에 난립해 연일 둥지를 트는 듯한 CGV 제국 중 CGV공항만은 좀 특별하다.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 구석에 자리 잡은 CGV공항은 서울시에서도 가장 외곽, 그러니까 이름은 서울시 강서구라지만 ‘서울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너무 밖에’ 있는 이곳의 지리적 특성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극장이다. 어쩌다보니 아파트 바로 뒤 산도 있고 가끔 약수터도 갈 수 있고 공원도 코앞에 있는 지하철 5호선 종점 방화동에 벌써 10년 넘게 살고 있는데 이런 소소한 장점에 흡족해하면서도 여전히 아쉬운 건 있었으니 바로 서울 외곽 가장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문화생활이나 학창생활 그리고 나아가 직장생활을 모두 머나먼 시내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었던 게 바로 그것. 물론 영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바로 지하철 두 정거장 거리에 그 이름도 찬란한 멀티플렉스 극장이 생김으로써 오락이면서 일이기도 했던 영화감상은 동네 구멍가게에 들러 밤새 먹을 주전부리를 주섬주섬 챙기는 것과 마찬가지가 됐다. 한적한 CGV공항은 퇴근하면서도 부담 없이 들러 롯데리아 햄버거 세트를 싸들고 들어가 허기와 문화욕을 동시에 채울 수 있었으며, 감지도 않은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설렁설렁 가서 혼자 내리 두세 편을 ‘때릴’ 수도 있는 곳이다. 오고 감이 부담 없다. 인파에 부대끼지도 않는다. 못 본 영화 미련 없이 몰아볼 수 있다. 이 단순한 이유가 CGV공항을 내 생애 최고의 영화관으로 군림케 한다. 강상준 기자(FILMON)
그곳에 가면 '분위기'가 있다 '하이퍼텍 나다'
오늘날 극장은 더 이상 영화를 위한 배경이 아니다. 이제 극장은 하나의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관객의 추억을 완성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학로에 위치한 하이퍼텍 나다는 단연 눈여겨볼 만한 곳이다. 사실 하이퍼텍 나다는 영화를 보기에 그리 ‘편안한’ 극장이 아니다. 편의와 덩치로 승부하는 대형 체인 극장에 비하자면 126석 규모의 1개관이 전부인 하이퍼텍 나다는 확실히 비좁고 불편하다. 그러나 그곳에는 예술영화 전용관에 어울리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있다. 아담한 극장 마당에 들어서면 금방 지나온 대학로 길거리의 정신없는 풍경을 씻어주는 미풍이 불어온다. 자그마한 복도에는 김옥랑 대표가 수집한 전통 목각 인형이 전시돼 있다. 상영관에 들어가면 좌석마다 번호와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인사들의 이름이 붙어 있고 영화가 시작하기 전까지 상영관 옆면의 유리창으로 작은 정원에 고양이가 기웃거리는 풍경을 지켜볼 수 있다. 그곳에는 영화와 ‘분위기’가 있다. 그 두 개가 합쳐져 길고 긴 예술영화와 프랑스 영화를 보는 내내 무릎을 바짝 구부리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계속해서 하이퍼텍 나다를 찾게 하는 마술을 부린다. 장성란 기자 (FILMON)
Tracked from 진사야의 무비 다이어리 (zinsaya's movie diary)삭제
<b>서문</b>
씨네21의 675호 특집기사인 ’우리들의 시네마 천국‘ 을 보면서 나름대로의 감상에 젖어들었습니다. 잡지 속 톡톡 튀는 개성적인 극장 여덟 군데를 머릿속에 담으면서 저 곳은 꼭 가 봐야겠다! 라는 생각 외에 든 생각이 하나 또 있어요. 바로 ’나한테 가장 강하게 각인된 영화관은 어디일까?‘ 라는 것이었죠. 본격적으로 영화관에 재미를 들린 작년(2007년) 중하반기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우선 생각을 해 봤지만 뭔가 딱히..
대한극장.. 그 특유의 오프닝 시그널이 거슬린다고 하시는 분들이 꽤 계신 것 같은데
그것만 극복하면 꽤 괜찮았던 곳 같습니다.
특히 좌석은 저도 공감합니다. 그렇게 앞뒤 좌석 높이 차이가 최적인 곳은 아마 거의 못 본 것 같군요.
키 때문에 타 극장에서 가운뎃자리 앉으려면 몸을 있는대로 숙여야 했는데 여기서는 그 생각을 안 했던 듯.
중앙시네마는 다양한 영화정보를 한 곳에서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스폰지하우스와 인디스페이스가 함께 붙어 있어서 그런지, 타 극장에서는 찾을 수 없는 영화전단지 등을 얻을 수 있는 게 좋아요.
그리고 시네마 정동과 CGV 공항은 아직 못 가 봤네요. 다음에 꼭 가 봐야겠습니다 : )
전 (굳이 한 곳만 꼽아서 얘기해야 한다면) 씨너스 이수(AT9)를 꼽고 싶네요.
일단 놓친 영화들을 극장을 통해 다시 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반갑고, 무엇보다도 극장 내에 위치한 AT9 SPACE가 상당히 매력적이라 좋아합니다. 영화 보고 나와 마주치는 작은 쉼터 같은 느낌이랄까...
와! 잘 봤어요. 내가 모르는 어떤 극장이 있을까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cgv공항을 보고 너무 반가워서 글 남깁니다. 저도 잘 가는 곳이거든요. 밤에 후줄근한 옷 입고 영화보러 갔다가, 또 설렁설렁 걸어서 집에 올 수도 있고... 저한테도 정말 '우리 동네 영화관' 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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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극장.. 그 특유의 오프닝 시그널이 거슬린다고 하시는 분들이 꽤 계신 것 같은데
2008/12/29 13:20그것만 극복하면 꽤 괜찮았던 곳 같습니다.
특히 좌석은 저도 공감합니다. 그렇게 앞뒤 좌석 높이 차이가 최적인 곳은 아마 거의 못 본 것 같군요.
키 때문에 타 극장에서 가운뎃자리 앉으려면 몸을 있는대로 숙여야 했는데 여기서는 그 생각을 안 했던 듯.
중앙시네마는 다양한 영화정보를 한 곳에서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스폰지하우스와 인디스페이스가 함께 붙어 있어서 그런지, 타 극장에서는 찾을 수 없는 영화전단지 등을 얻을 수 있는 게 좋아요.
그리고 시네마 정동과 CGV 공항은 아직 못 가 봤네요. 다음에 꼭 가 봐야겠습니다 : )
전 (굳이 한 곳만 꼽아서 얘기해야 한다면) 씨너스 이수(AT9)를 꼽고 싶네요.
일단 놓친 영화들을 극장을 통해 다시 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반갑고, 무엇보다도 극장 내에 위치한 AT9 SPACE가 상당히 매력적이라 좋아합니다. 영화 보고 나와 마주치는 작은 쉼터 같은 느낌이랄까...
색다른 그들 각자의 영화관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
대한극장 오프닝 시그널 사운드가 심하게 크긴 하죠. 가끔 깜짝 놀란다는 ㅋㅋ 진사야님 키가 크시군요! ㅎㅎ
2008/12/29 14:08와! 잘 봤어요. 내가 모르는 어떤 극장이 있을까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cgv공항을 보고 너무 반가워서 글 남깁니다. 저도 잘 가는 곳이거든요. 밤에 후줄근한 옷 입고 영화보러 갔다가, 또 설렁설렁 걸어서 집에 올 수도 있고... 저한테도 정말 '우리 동네 영화관' 이예요.
2008/12/29 13:37동네분이시군요. 오며 가며 서로 후줄근한 모습으로 스쳤을 지도 모르겠네요.:)
2008/12/29 15:26저도 공항CGV를 동네극장으로 다니고 있어서 반갑네요. 예매가 절대 필요없는 항상 여유로운 곳. 좋습니다요.^^
2008/12/30 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