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유사 이래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고, 전쟁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며, 도래할 미래 전쟁을 준비하는 국가도 있다. 수없이 반복된 전쟁을 지켜보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지 알 수 있다. 전쟁을 통해 무고한 사람이 고통 받고,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멈출 줄 모른다. 부와 권력이 인간의 눈을 멀게 한 탓일까. 아니면 전쟁을 일으키는 이와 전쟁을 통해 고통 받는 이가 다르기 때문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쟁은 신이 준 최고의 저주라는 것이다.
<디파이언스>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 전개되던 1940년대 초반, 유대인 학살이 벌어졌던 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독일군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당한 투비아(다니엘 크레이그)는 동생들을 데리고 숲속으로 숨는다. 독일군의 감시를 피해 숲으로 들어온 유대인들은 그들뿐만 아니었다. 순식간에 피난민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투비아와 그의 일행은 독일군과 맞서 삶을 향한 투쟁을 시작한다. 하지만 투쟁은 쉽지 않다. 식량은 부족하고, 집단 내 갈등은 시작된다. 또 중무장한 독일군과 혹독한 겨울 추위가 시시각각 목을 조여오고 있다. 그들은 희망을 볼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커리지 언더 파이어> <라스트 사무라이> <블러드 다이아몬드> 등 전쟁과 인간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온 에드워드 즈윅 감독이 다시 한 번 선택한 전쟁 드라마다. 그는 학살과 포화가 가득한 공간에서 피어나는 생의 의지와 인간의 애정을 눈물겹게 그린다. 같은 주제로 다양한 시도록 했던 감독답게 그는 <디파이언스>에서 안정적인 연출력과 한층 깊어진 문제의식을 선보인다. 간혹 인물을 영웅으로 포장하려는 위험한 시도가 엿보임에도 불구하고, 매끄러운 영상과 이야기 전개로 가족, 사랑, 죽음, 이별 등 인간의 격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킬 모든 요소를 적절히 배합했다.
가족, 사랑, 죽음, 이별 등 다양한 이야기들은 <디파이언스>가 실화라는 사실과 합쳐지면서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영화 오프닝과 함께 ‘true story’라는 자막이 뜨고, 관객은 동시에 ‘독일군 유대인 학살’이란 상식을 떠올린다. 또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던 사실과 참상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서 그들의 고통을 체험한다. 이때 관객은 스크린 속의 인물들에게 쉽게 빨려 들어간다. ‘저게 진짜 있을 수 있어’라는 허구성과의 싸움보다는 ‘어쩜 저럴 수 있어’라는 교감의 메커니즘이 더욱 활발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화의 힘과 휴머니즘이 강조되는 전쟁 드라마의 시너지 효과는 크다.
<디파이언스>의 전투신은 스펙터클이나 시각적 쾌감보다는 인물들의 관계를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군이 진격해 올 때 숲에서 탈출을 감행하면서 벌어지는 전투신이다. 유월절을 하루 앞두고 공습이 시작되고 일부는 총을 들고, 나머지는 길을 떠난다. 총을 든 사람들은 피난행렬이 멀리 떠날 수 있게 시간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독일군의 총알은 너무도 쉽게 유대인들의 심장을 꽤 뚫고, 쓰러진 이들은 슬픈 눈으로 떠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자신을 두고 간 이들에 대한 원망이 아니다. 좀 더 시간을 끌지 못한 아쉬움과 지독히도 불운한 운명을 타고난 자신의 삶에 대한 슬픔이다.
작품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왜 사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투비아의 동생 주스(리브 슈라이브)는 아내와 아이가 독일군에 의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들 죽는데, 난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는 많은 전쟁영화에서 ‘내가 왜 죽어야 하는가’라며 쓰러진 어린 병사들이 남긴 것과는 다르다. 삶에 대한 고민은 숨이 멈추는 순간에야 비로소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디파이언스>는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주기보다, 관객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여지를 남긴다.
현재 이스라엘의 하마스 공격으로 수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죽어가고 있다. 또 전세계적으로 기아, 기상이변 등 다양한 원인으로 생명의 불꽃은 꺼져가고 있다. 이런 일들이 단지 한국에서 벌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우린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디파이언스>가 던진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함으로써 역사의 호출에 응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는 아닐까. 안효원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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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대사 중에 기억에 남는 것 하나. "유대인은 싸움을 할 줄 모른다. 바보같이 잘 죽기만 한다" 영화에선 자조적인 농담으로 나오지만 요즘 뉴스를 보니 농담처럼 들리지 않네요. 역사를 통해 배운다는데 왜 인간들은 그런 것만 빨리 배우나 몰라...
2009/01/12 2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