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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절대로 화면을 통해 들릴 리 없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윽고 절정으로 치닫던 영화는 분위기가 급변하고 어딘가에서 쏟아져 나온 스태프들이 촬영기기를 잔뜩 짊어진 채 카메라 앞을 바삐 오간다. 집이라 믿었던 곳은 잘게 해체돼 실제와 다름없던 위용도 잠시, 그저 화면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세트였음을 낱낱이 드러낸다. 영상을 담아야 할 카메라가 외려 화면 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고 감독을 연기하는 배우는 진짜 감독인 양 촬영장을 지휘하고 있으며, 영화 속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연기자는 담배를 태우며 거드름을 피운다. 어쩌면 그저 여느 영화 촬영현장의 일상적인 모습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때때로 영화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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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영화’를 통한 ‘가짜 삶’의 치유: <영화는 영화다>
수타(강지환)는 영화 스타, 강패(소지섭)는 깡패. 전혀 공통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이들이 거짓말 같은 이유로 영화라는 접점을 맞이한다. 싸움을 흉내 내야 하는 수타와 싸움이 곧 삶 그 자체인 강패가 만나 짜고 쳐야 마땅한 액션신을 실제로 만들어 낸다. 카메라 앞에서 주먹질과 발길질을 모사해야 할 배우들이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진짜 싸움을 벌이고 영화는 얼씨구나 ‘리얼하게’ 이들의 싸움을 옮긴다. 그리고 자기 관리에만 급급해도 언제나 영화 밖 현실에서는 모자라기 짝이 없던 수타는 진흙탕 속에서 악다구니를 벌인 후에야 배우라는 소명과 그에 걸맞은 진짜 삶을 건져 내기에 이른다. 그의 모든 것을 보듬어 줄 것 같던 애인이나 매니저마저 허상에 불과했던 그의 현실이 오히려 가짜였다는 듯, 수타는 영화라는 ‘가짜 삶’ 속에서 강패와 ‘진짜 싸움’을 벌이며 ‘진짜 배우’가 되어 가고 동시에 ‘진짜 삶’을 찾아내는 것이다.
지난해 9월 개봉한 장훈 감독의 <영화는 영화다>는 진짜와 가짜가 혼재된 ‘영화 찍는 영화’를 통해 가짜 연기, 진짜 삶, 진짜 연기, 가짜 삶이라는 같은 듯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실제와 허상의 공식을 더듬었다. 영화라는 가짜 삶 속에 던져지면서 깡패는 배우가 되고 또 배우는 깡패로 수렴되어야 하는 이 부조리한 공식은 곧 현실이 가진 부조리함과 맞닿아 영화라는 기묘한 평행세계(Parallel World) 속에서 격하디격한 치유의 과정을 맞이한다. 진짜 연기란 무엇인지 고민하던 배우의 실제 삶은 영화보다 비루하기 짝이 없지만 연기자로서의 성장을 실제 싸움으로부터 모색한 수타에게 하여금 영화는 어느새 삶과 동의어를 이뤄 가며 너절했던 삶의 껍질에 자그마한 금을 내기에 이른다. 물론 영화라는 환상 속에서 찰나의 도피조차 완성할 수 없었던 강패는 목이 부러진 불상을 손에 든 채 피범벅이 되어 살인자라는 오명으로 퇴장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들에게 영화는 이들이 실제로 벌였던 싸움과 마찬가지로 삶을 반추하는 또 하나의 삶 그 자체였다. 그러니 수타와 강패가 만든 영화가 이들의 고된 삶만큼의 가치를 지니지 않을 리 없다. 가짜와 진짜 사이를 오가던 이들 각자에게 ‘진짜’란 이미 삶과 영화의 교집합과 다름없으니 말이다.
삶 속으로 강림한 유쾌한 영화적 환상: <매직아워>
시공간조차 불분명한 어느 마을, 밤과 낮 사이의 시간. 바로 영화 <매직 아워>의 시공간이다. 미타니 코키 감독(<웰컴 투 미스터 맥도날드> <웃음의 대학>)의 <매직 아워>는 영화가 아니면 성립할 수 없을 어느 시공간을 시침 뚝 떼고 가져와 영화 속에 펼쳐 놓으며 갱들과 맞닥뜨리면서도 자신이 전설의 킬러를 ‘연기’한다 생각하며 갖은 폼을 잡는 어느 무명 배우를 그린다. 빙고(츠마부키 사토시)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배우 무라타(사토 고이치)를 캐스팅해 그로 하여금 킬러라는 일생일대의 역할, 최고의 연기를 펼치도록 하는 과정은 좌충우돌하는 코미디이지만 어느새 영화를 가장한 무라타의 삶(=연기)은 다음 영화를 찍기 위해 또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진짜 삶을 향한 연습이자 발판이 된다.
직접적으로 인물들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듯 영화 속 공간은 어디라고 규정할 수도 없이 모호한 ‘영화적 공간’이다. 또 빛이 사라지기 직전 가장 아름다운 상을 담아낼 수 있기에 영화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시간인 ‘매직 아워’, 즉 밤과 낮 사이 시간은 이러한 영화의 지향점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현실과 환상의 접점('매직 아워' 혹은 영화와 삶) 사이에서 빙고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전설의 킬러 데라 토가시를 실재하는 현실세계에 구현해 내고, 무라타는 데라 토가시가 됨으로써 실탄이 빗발치는 가운데도 온갖 폼을 잡으며 데라 토가시로서의 용맹과 담력을 뽐낸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무라타가 정말로 영화를 찍는다고 착각하는 코미디 부분이 아니라 이것이 영화가 아니라 진짜임을 깨닫게 된 후다. 영화를 찍는 줄 알았던 무라타가 굳어 가는 시멘트 양동이에 맨발을 담군 게 영화 속 데라 토가시가 맞이한 위협이 아닌 전설의 킬러를 가장했던 자기 자신에게 닥친 위협임을 알게 됐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의 연기 인생에 대한 회의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 영화와 현실이라는 모호한 경계를 깨고 영화를 이용한 현실에의 전복을 꾀한다.
보스를 속이기 위해 무라타를 이용해 촬영을 가장한 <매직 아워> 속 영화촬영에 카메라는 필요치 않다. 어느새 슬그머니 카메라가 돈다 하더라도 이것은 무라타를 속이기 위해 촬영을 ‘연기(演技)’하는 것일 뿐 필름에 담긴 무라타의 모습은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영화를 이루는 의미 없는 조각일 뿐이다. 그러나 카메라가 없는 상황에서도 각종 영화적 특수효과를 이용해 현실 속에 영화적 환상을 실체화하는 무라타는 어느새 카메라 없는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에 내맡겼던 자신의 인생에 다시금 명확한 길을 놓는다. 이 현실이라는 이름의 카메라 없는 거대한 영화는 영화라는 환상의 힘을 통해 더욱 분명하고 경쾌하게 나아가며 꿈과 이상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삶에 개입시킨다. 때문에 무라타의 말마따나 영화 속 가짜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그를 만날 다음 장소가 정말로 극장 스크린인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영화 같은 삶 속에서 무라타는 삶과 진배없는 영화에의 꿈을 다시금 짙고도 짙게 확인한다.
현실이라는 정글에서 꽃핀 영화: <트로픽 썬더>
통제 불능의 연기자들을 통제 가능한 영화가 아닌 통제 불능의 현실 속으로 던져 넣는 코미디 <트로픽 썬더>는 영화의 각 캐릭터들이 출연했다는 가짜 예고편으로 포문을 열며 곧이어 부러 잔인하게 과장된 전쟁영화의 리얼한 시퀀스를 펼쳐 놓는다. 그러나 눈물 연기조차 불가능한 뼛속까지 액션배우 터그 스피드맨(벤 스틸러), 오스카 5회 수상에 빛나는 연기파 배우 커크 라자러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약물복용 및 각종 사회적 물의로 대변되는 저품격 코미디 배우 제프 포트노이(잭 블랙)가 빚어내는 좌충우돌 덕택에 이들이 촬영하던 베트남전 블록버스터는 마침내 배우들을 진짜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는 매몰찬 방식으로 변모한다. 재미있는 건 기필코 영화 속이어야 할 정글이 어느새 마약밀매업자들의 소굴이 되어 진짜 전쟁이 된다는 점이지만.
자신들이 던져진 정글을 완벽한 영화적 장치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거대한 세트라 믿는 터그는 정글 속에서 진짜 전쟁을 맞닥뜨리는 동시에 진짜 자신의 연기를 돌이켜 보는 계기를 맞이한다. 진짜 생명의 위협과 맞닥뜨린 상황에서 예전에 자기가 했던 바보 연기를 마약밀매업자들 앞에서 펼쳐 보이는 그는 과거 완전히 자기 자신을 잊고 바보 역할에 몰입했던 단계를 넘어서 보다 균형 있는 연기를 선보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DVD 음성 코멘터리 전까지는 영화 밖에서조차 맡은 역할로 살아가는 커크 역시 흑인 중사 역할에서 벗어나 다시금 푸른 눈의 금발 호주인으로 돌아온다. 어느새 영화촬영이라는 재연의 세계를 훌쩍 넘어 진짜 전쟁 속에서 벌이는 이들 각자의 정체성 찾기는 이토록 눈물 나는 코미디로 수렴되지만 그럼에도 카메라 밖에서 투사하는 영화의 본질과 삶의 본질을 향한 은유는 무척이나 진지한 자취를 남긴다.
세트 아닌 현실이라는 이름의 이 진짜 정글 속에서는 영화를 통해 허구를 가장해야만 했던 모든 이의 가면이 벗겨진다. 소설 한 권으로 자신을 일약 전쟁영웅으로 포장할 수 있었던 영화 원작자 클로버(닉 놀테)가 사기꾼이었다는 것, (그리고 일견 우습게 표현되지만) 터그와 커크가 진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되찾고, 날것과 다름없는 연기를 선보인 터그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된 것 모두 ‘있지도 않은 진실’을 창조하는 영화 작업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대신한다. 또한 이는 막말과 배금주의로 일관하는 영화제작자 그로스맨(톰 크루즈)을 통해 구체화되는 ‘쇼 비즈니스’라는 무시무시한 흐름으로도 결코 전복할 수 없을 영화의 진정성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기도 하다. 이는 곧 가짜를 연기함으로써 진짜 삶과 선을 그어야만 했던 그들이 현실세계와 접점을 이루면서 오히려 더욱 완벽하게 정제된 ‘진짜 영화’를 탄생시킬 수 있는 진정한 이유가 된다.
현실에 내려앉은 영화라는 판타지: <비카인드 리와인드>
자력(磁力)으로 비디오 대여점 ‘비카인드 리와인드’의 모든 테이프를 쓸모없게 만들어 버린 떠벌이 제리(잭 블랙)와 점원 마이크(모스 데프)는 단지 손님을 속이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카메라를 들었을 뿐이다. 연출, 촬영, 특수효과, 연기 모두 어설프기 그지없는 이들의 ‘가내수공업’ 영화가 뉴욕의 명물로 떠오르리라고는 영화를 찍는 이들 역시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슬럼가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구식 비디오가게, 이곳에서 점원과 그의 루저 친구가 블록버스터부터 예술영화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20분 내의 분량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스웨덴화 비디오’(Sweded Video, 제리와 마이크는 처음 자신들이 촬영한 영화를 스웨덴에서 수입한 영화로 얼버무리며 손님에게 대여해 준다. 이를 맘에 들어 한 사람들이 ‘스웨덴화 비디오’를 고유명사처럼 사용함으로써 이후 이 단어는 이들이 만드는 ‘주문식 맞춤형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명칭을 대신하게 된다)는 전문가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저렴하고도 독특한 키치적 상상력의 절정을 구가한다. 리얼하게 보여야 된다는, 진짜와 다름없어야 한다는 영화적 강박에 하등의 구애도 받지 않은 이들의 결과물은 무척이나 재기발랄하게 영화라는 판타지를 현실 안으로 온전히 강림시킨다.
스웨덴화 비디오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적인 지지는 슬럼가 구석에 자리 잡은 어느 지저분한 비디오가게를 삶의 활력소를 뿜어내는 공간으로 바꿔 놓는다. 나아가 스웨덴화 비디오의 팬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 머물지 않고 직접 제리와 마이크의 창작활동에 참여하며 더욱 다양한 영화들에 자신들의 힘을 더한다. 그럼으로써 이들의 영화는 슬럼가 주민 모두에게 잊고 있던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또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기폭제가 된다. 때문에 미셸 공드리 감독의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단순히 UCC(User Created Contents)를 통해 인기를 얻은 루저들의 성공담에 머물지 않는다. 비카인드 리와인드 팀의 재기발랄한 작품들이 고작 남의 작품을 베낀 것으로 낙인 찍혀 작품 전량을 폐기처분당한 후에 보여준 새로운 움직임은 영화를 통해 추구하는 이들 갑남을녀들 각자의 의미 있는 발언을 대신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한 줌 쓰레기로 변모한 현실과 맞닥뜨리면서도 주저앉거나 실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의기투합해 드디어 자신들만의 오리지널 영화를 기획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움트고 살아가는 비디오가게 건물에 재즈 피아니스트 팻츠 월러가 살았음을 기정사실화하는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창작하며 자신들이 사는 공간의 의미를 재창조하고 동시에 잊고 있던 자기 자신의 의미 역시 이끌어 낸다.
이곳 비디오 대여점 비카인드 리와인드에서는 모두가 직접 참여자가 됨으로써 삶의 활력소를 얻고 나아가 자기 상승을 도모한다. 더 이상 이들 각자에게 영화는 오락이라는 일회성 유희물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를 찍음으로써 이들은 철거되기로 결정됐던 비디오가게 건물, 즉 자신들의 공간을 지켜 냈으며, 영화를 통해 팻츠 월러가 자신들의 공간에 살았다는 판타지마저 온전히 현실 안에 이식시킨다. 영화가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이들의 손에 들린 카메라 뒤편에서 다시 한 번 유쾌하게 성립되는 순간이다.
영화 만드는 영화, 삶을 재발견하다
영화를 만드는 영화 속 캐릭터들은 영화를 만들면서 변화하고 성장한다. 그리고 이들이 만드는 영화에는 자연히 그들 자신의 모습이 반영된다. 이 영화 속 캐릭터들의 영화제작은 이들 자신에게 향하는 직접적 통로이자 창구다. 이 영화들에는 삶과 영화, 현실과 환상, 진짜와 가짜가 한데 뒤섞여 있고, 영화제작이라는 혹독하고 처절한 단계를 밟아 나가는 사이 이들의 치열하고 고된 삶은 자연히 자신들의 영화와 같은 자리에 놓인다. 영화가 엔터테인먼트와 예술 사이를 오가며 누구에게나 쉽사리 소비되고 사그라질 때도 어떤 이에게는 삶의 가장 중대한 축이라는 것을 설명하듯이 말이다. 그들의 영화, 그리고 그들의 삶을 영화로 구성하는 일련의 영화들에는 처음부터 영화라는 매체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나아가 영화와 삶을 동일시하며 비로소 진짜 삶을 재발견하려는 기묘한 의지가 서려 있다. 바로 영화의, 영화에 의한, 영화를 위한 발견 말이다. 강상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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