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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009년 독립영화계를 관통하는 작품은 단연 <워낭소리>다. 부산에서 주목받은 작품은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며 그 힘을 입증했다. 15일 개봉을 앞둔 <워낭소리>. 국내 관객뿐 아니라 선댄스의 관객도 그 감동을 함께 할 예정이다. 필름온은 화제의 주인공 이충렬 감독을 만났다. 한 편의 시를 닮은 영화를 찍고 싶다고 하는 이충렬 감독. 그는 관객에게 충만한 느낌 보다는 왠지 허하고, 원인 모를 그리움을 선사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다. 안효원 기자(FILMON)


13회 부산국제영화제 메세나상-다큐멘터리 최우수상(2008), 34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2008), 25회 선댄스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 ‘월드 다큐멘터리 경쟁(World Documentary Competition)’ 부문 공식 초청에 15일 개봉까지. 기분이 하늘을 날겠다.(웃음)
고영재 PD(<워낭소리> 프로듀서)나 주변 사람들의 말을 빌자면, ‘이렇게 무표정하고 반응 없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한다.(웃음) 다 이유가 있다. 방송을 했던 사람이 순식간에 영화를 하고, 상을 받고 이러다보니 반신반의한 거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정리가 안 되더라. 부산영화제에서 제정신으로 있었던 적은 없었다. 죄지은 것 없는데 괜히 죄지은 거 같고. 선댄스영화제 진출이나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수상도 기쁘지만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좋은 영화 만들어 놓고 죄지은 거 같다니 어불성설이다.(웃음) 우문이지만, 많은 경사 중 어떤 게 가장 기분이 좋던가. 굳이 하나 꼽자면.
다 좋았다. 근데 하나를 꼽자면 부산영화제 수상이다. 이건 정도의 강약 문제가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에서 뭔가 확실한 게 생겼기 때문이다. 메세나 상을 수상하기 전, 영화제 경쟁 부문에 들어가면서부터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부산영화제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다.

영화를 보면서 처음 ‘아!’ 하고 놀랬던 건 할아버지의 표정을 잡는 카메라였다. 인물 동작이 멈추면, 카메라도 시선을 돌리는 경우가 많은데 <워낭소리>는 카메라를 유지하면서 인물의 호흡과 감정까지 잡아냈다. 내공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촬영에 대해 할 말이 많다. 난 촬영을 일관되게 하고 싶었다. 근데 장시간 촬영과 HD카메라 고비용 때문에 상주하지 못하고 사람도 바꿔가면서 촬영했다. 그래서 톤도 달라지고, 길이, 호흡의 측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 중 의도에 맞게 건져낸 것이 지금의 <워낭소리>다.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다보니 6mm 카메라나 핸드 헬드 촬영에는 자신이 있었다. 근데 오래하다 보니 현장성은 잡지만 깊은 내면을 잡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다. 이번엔 HD 고화질 카메라로 그 내면을 잡겠다고 작정하고 시작했다.

<워낭소리>를 보면 관객들도 그 의도가 성공했음을 알 수 있을 거다. 작품에서 배경은 물론, 감정의 입체감까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근데 실제 그런 장면이 나올 수 있었던 궁극의 이유는 할아버지와 소에 있다. 둘이 나란히 걷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자신들만의 박자와 템포를 갖고 있다. 6개월 동안 그들의 생활 동선을 파악하고, 일상을 지켜보면서 서두를 필요 없이 그들의 호흡에 맞추고, 자연스럽게 기다리면 되겠다고 판단했다. 또 클로즈업도 사용 했지만 미디엄 샷, 롱샷 위주로 하면서 오디오에 많은 신경을 썼다. 얼굴에 카메라를 직접 맞대면 표정이 살지 않는다. 거리를 두면서 촬영하면서 할아버지와 소, 소와 할머니, 할머니와 할아버지, 늙은 소와 젊은 소 등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 대립 관계 속에서 카메라 두 대로 양쪽을 포착하다 보니 반응 샷이 많이 잡혔다. 그래서 의외의 성과물이 나오게 됐다. 내공이 아니라 운이다.(웃음)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포착한 할머니의 신세한탄은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혼잣말 같으면서도 누구 들으라고 하는 말 같은 게 매력적이다.(웃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전통사회에서 볼 수 있는 가부장적인 부부 관계다. 할머니가 원래 잔소리가 많은 분인지는 모르겠다. 근데 외지인이 와서 자신을 찍으니까 목석같은 남편에게는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몇 살에 시집와서 무슨 고생을 했는지 노래처럼 신세한탄을 했다. 그런 모습은 우리 부모님을 보는 듯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 내레이션이 없으니까 할머니 부분을 강조해서 감초처럼 사용했다.

<워낭소리>에는 내레이션이 없다. 다큐멘터리에서 설명적인 내레이션 없이 인물과 영상, 편집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소를 보고 <워낭소리>에 대한 그림이 머리에 그려진 건가.
작품 속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고 <워낭소리>를 그린 건 아니다. IMF 시절 독립 PD로 활동할 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당시 경제가 붕괴되고 많은 아버지들이 실직하면서 ‘부성’을 그린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고, 나도 고민하게 됐다. 근본적으로는 내 방식대로 살면서 아버지를 잊고 산 것에 대한 원죄의식이 있었다. 독립 PD 한답시고 돈도 못 벌고, 결혼도 못하고 아버지 속을 썩였다. 참 이기적이었지. 또 좋은 작품 못하고 그저 그런 PD로 있다 보니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혼란도 왔다. 그 감정이 잊히는 아버지와 교차됐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는 잊힌 아버지 얘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워낭소리>는 감독 자신과 아버지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이 사라짐이 아니라 잊힘이다. 당시 아버지의 모습은 사금파리 같았다. 한때는 빛나고 의미 있는 것이었지만, 이젠 기억으로만 빛이 나는. 깨진 사금파리를 온전한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유년의 기억 속에 봉인된 소와 아버지를 깨울 수밖에 없었다. 난 시골 출신인데, 당시 아버지와 소가 잘나가던 시대였다. 활기차고, 헌신적이었다. 그걸 기억 속에만 머물게 하는 게 아니라 현재로 끌어오고 싶었다. 그게 쇠락한 고향인 봉화이고, 핸디캡을 가진 최 할아버지와 늙은 소다. 이들은 노쇠했지만 절대 쉽게 죽지 않는다.

감독이 생각했던 것과 <워낭소리> 인물들이 매치가 잘 된다.
2005년 할아버지와 소를 만나기 전부터 이야기를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을 만나는 순간 캐릭터는 해결이 됐다. 단순한 기록이 아닌 관계를 통한 내면의 단층을 확인하고 싶었다. 한국사회에서 아버지와 관계는 상당히 힘들다. 스킨십이나 ‘고맙다’는 말을 한 번 제대로 하기 힘들다. 항상 먼 산, 방패막이처럼 보이는 그런 마음을 아버지 헌신과 함께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그게 은유된 게 소다. ‘누가 주인공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주인공 없다. 관계만 있을 뿐이다. 할아버지가 소고, 소가 곧 할아버지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더할 나위 없는 캐스팅이란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평생을 살아왔다. 근데 소가 늙고, 노동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서 팔아버린다면 할아버지는 자기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 된다. 둘의 믿음과 헌신은 대단하다. 그게 감독을 더욱 매료시킨 거 같다.
처음 근본적인 믿음이 있었다. 대상이 적절하지 않으면, 시작도 안했을 거다. 촬영을 하면서 그들의 관계를 확인하게 되고, 점점 빠져들게 됐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작품이 실패하는 건 관계가 해체되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소를 팔아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할아버지는 일관성을 유지했다. 아니 애초 할아버지에게 소는 팔 수 없는 존재다. 둘 중 하나가 없어지면 모두 없어지는 운명공동체적 관계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워낭소리’는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를 청각적으로 형상화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워낭소리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내 유년의 봉인된 기억을 깨워주는 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할아버지와 소의 헌신이 계속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워낭 소리가 멈추지 않는 이상 둘의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워낭 소리가 잠시 멈추지만 그것이 절망이나 관계 자체의 파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죽은 파트너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은 어쩔 수 없겠지만 젊은 소가 있고, 새로운 희망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면, 우리 일상에 효율성 이상의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과 과거는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들 아닌가. 작품 속에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청와대에 계신 분이 ‘실용, 실용’ 하는데, 내 당장 유익한 것만 판단하는 것은 실용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이 없는 거다. 할아버지에게 실용은 의미가 없다. 할아버지는 불편한 다리로 9남매 키웠고, 생명력을 유지한다. 그런 할아버지의 삶을 지탱하게 하는 게 소이고, 그렇기 때문에 소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가 농약 안 치는 건 사람들이 얘기하는 ‘유기농’ 이런 것 때문이 아니다. 할아버지도 그게 편하고, 효율적란 걸 안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더 소중한 게 있다는 것 또한 알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소를 묘사하는 데는 감독의 애정이 묻어난다. 근데 그 외에 인물들, 가족들이나 우시장 사람들에 대한 설명은 턱없이 적어 불친절해 보인다. 그 차이로 인해 의도치 않은 가치의 대비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
<워낭소리>의 절정은 사라짐으로, 할아버지와 소의 헌신, 할머니의 잔소리 등 모든 요소는 그 순간을 위한 ‘사인’들이다. 그 사인은 철저하게 사라짐에 맞춰져야 한다. 가족, 이방인, 정치적인 구호 등에 친절함을 할애할 필요가 없었다. 이야기를 단층으로 쌓아 관계를 통한 내면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방식이 불친절해 보이지만, 절정의 순간으로 치닫기 위해 맞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선댄스영화제와 극장 개봉에서 모두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란다. 필름온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
<워낭소리>가 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아버지, 어머니, 소 등 우리를 키운 소중한 존재들에 대한 반추, 사라지는 것들, 잊히는 것들에 대한 반추... 필름온 독자들은 <워낭소리>를 영화로만 보지 말고,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너무 영화 얘기만 했나? 내가 유명한 감독이 아니라 내 영화 말고는 할 얘기가 없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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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 감동적이던데...극장상영하면 꼭봐야겟어요...부산은 개봉이 1월22일 이라는데

    2009/01/14 19:57
    • 농촌총각  수정/삭제

      당연한 얘기겠지만, 예고편 보다 본편이 더욱 좋습니다.^^
      영상도 수려하고, 한겹 한겹 쌓여가는 감정의 깊이가 매력적입니다.

      2009/01/15 11:32
  2. 풀베개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잠깐의 예고편에도 코끝이 찡해졌어요..꼭 보러갈 예정!!

    2009/01/14 22:55
  3. 라이온킹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은 가끔씩 정을 주지만,소는 전부를 다준다"는 문구가 정말 가슴에 와 닿더군요..

    2009/01/15 01:02
  4. 마이콜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레이션이 없다는건 제게 이 작품을 속 깊이 이해하는데 좀 방해적인 요소가 되었던 것같았습니다. 오늘 보고 왔는데 이렇게 글을 읽고 보니 새삼 작품이 또 좋았구나~싶네요..^^

    2009/01/16 03:03
  5. 자스민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변사람들이 불친절했다는 말에는 동의할수가 없네요.. 마누라 잔소리를 불친절과 비교할수 있나요? 다 내식구니까 걱정하는 건데,, 우시장 사람들도 진뜩한 애정이 묻어나던데,,, 210만원 주는거 그거 40살 된 소에게 많이 쳐주는 거 맞지요.. 그리고 시장에서 막걸리먹으면서,, 소가 길찾아왔던 기억나누는 것도 얼마나 따뜻한지,,, 말은 곱게 한다고 친절한건 아닌듯,

    2009/02/01 11:18
    • 영화본사람  수정/삭제

      주변 사람들이 불친절하다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에 대한 영화적인 설명이 불친절했다는 것이죠...

      2009/02/01 11:47
    • Favicon of http://ak20.tistory.com BlogIcon 농촌총각  수정/삭제

      '영화본사람'님이 잘 짚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영화를 보면, 세 주인공을 제외한 사람들에 대한 얘기는 상대적, 절대적으로 적습니다. 당연히 그들에 대한 이야기 혹은 비하인드 스토리는 축소되죠.
      그래서 감독이 주변 사람들에게 '불친절했다'는 표현을 쓴 겁니다.

      2009/02/0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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