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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키 작은 집을 허락지 않는다. 뚝딱뚝딱 짓고 부수고를 반복하며, 건물은 높아져만 간다. 마치 신의 영역에 도달하고자 쌓았던 고대 바벨탑처럼, 물질이란 현대의 신을 찬양하듯 건물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그 높은 곳에서 과연 지상이 보이기나 할까. 높은 곳에서 바라 본 인간이 개미처럼 작게 보이듯, 거대 도시 속 인간은 작고, 인간의 기억은 먼지처럼 사라진다. 지아장커 감독의 <24시티>는 카메라를 통해 작고 사라지는 인간을 붙잡는다.

작품은 중국의 군수공장 팩토리420에서 일했던 노동자, 그들의 가족들을 인터뷰함으로써 중국 근대화 속 인물들과 만난다. 1958년 중국 정부의 ‘대약진 정책’에 의해 쓰촨성 청두 지역에 만들어진 팩토리420은 3만 명의 노동자, 15만 명의 가족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감독은 실제 노동자 다섯 명의 인터뷰와 세 여성의 가상 모놀로그를 통해 팩토리420의 탄생, 발전, 쇠락, 그리고 그에 따른 사람들의 변화를 차근차근 카메라에 담는다. 그 속에는 공장에 청춘을 다 바친 이, ‘예뻐서’ 사랑을 할 수 없던 이, 공장에서 다른 삶을 꿈꾸던 이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들어 있다.

<24시티>는 빠르고, 역동적으로 변해가는 최근 영화들의 경향과 정반대에 위치해 있다. 지아장커 감독은 노동자의 삶은 실제 행동으로 재구성하기보다, 카메라 앞에 앉혀놓고 그 역동적인 삶을 듣는다. 여기에 인물들의 액션이나, 빠른 카메라 움직임은 없다. 오히려 영화 전편에 흐르는 나팔 소리처럼 아련하게 인물들의 기억을 재구성한다. 하지만 중국의 변화를 몸소 체험한 인물들의 기억은 그 자체로 역동적이며, 그들이 표현하는 감정 또한 생생하게 전달된다.
 

그 감정은 첫 번째 등장하는 노동자부터 느낄 수 있다. 그는 공장 초창기, 팩토리420에 헌신하던 한 상사를 기억한다. 기억 속 상사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 그가 인터뷰를 통해 상사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가 시간이 흘러 늙고 약해진 상사를 만난다. 상사는 옛 동료를 보고 말을 하지 못한다. 반가움과 젊은 시절 함께 고생한 이에 대한 동료애, 그 시절에 대한 향수까지, 북받치는 감정은 그의 입을 굳게 다물게 한다. 하지만 붉어지는 눈과 꼭 잡은 두 손은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케 한다. 순간 눈에 보이는 것보다 말로 표현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욱 역동적일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작품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는 ‘오늘’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수나(자오 타오)는 팩토리420 관리의 딸이다. 그녀는 반복되는 일상과 공장이 싫어 방황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날 어머니가 수많은 노동자들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힘겹게 물건을 옮기는 광경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이제 그녀는 공장 자리에 들어올 최상급 아파트 ‘24시티’에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치열하게 돈을 번다. 팩토리420이 24시티로 바뀌어도 ‘노동자의 딸’은 여전히 ‘노동자’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24시티>에 인물들을 중심에 놓고 촬영한 장면이 유독 자주 등장한다. 이는 노동자들은 물론 그들의 삶 자체를 오랜 시간 보관하기 위한 증명사진을 떠오르게 한다. 팩토리420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그들이 흘린 땀과 조심스레 꺼내놓은 감정이 우리네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24시티>가 없었다면 우리는 격동의 시기를 살아간 이들의 치열한 삶에서 한걸음 멀어졌을지 모른다(실제로 작품을 못 볼 수도 있었다. 영화 작업을 마친 다음 날인 2008년 5월 12일 쓰촨성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났다). 시공간의 강을 건너 온 그들을 이야기가 반갑고, 그들을 만날 수 있음이 감사할 따름이다. 안효원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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