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벽두부터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인물이 있다. 미네르바. 검찰이 미네르바로 지목된 박 모 씨를 ‘인터넷 상에서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구속하면서, 미네르바 구속 찬반 여론이 들끓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미네르바는 ‘인터넷 경제대통령’이라 불리며, 정부의 경제 정책을 강하게 비판한 인물이다.
사건의 뇌관이 된 것은 미네르바가 작년 12월 29일에 다음 아고라에 올린 ‘정부가 금융기관의 달러 매수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는 글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외환시장 및 국가 신인도에 영향을 미친 사안’으로 판단해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박 씨는 “정부에게 소외된 약자를 위해 글을 썼을 뿐 공익을 해할 의도나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목적이 없었다”며 맞섰다.
수 많은 플래시 세례를 맞으며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끌려가는 박 씨를 보자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1999)가 떠올랐다. 박 씨는 매트릭스 속에서 쫓기는 저항군이며, 그를 둘러싼 이들은 검은 정장의 스미스 요원이다. 가상현실(영화)이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둘의 유사성은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다. 하지만 <매트릭스>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매트릭스>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팽배한 세기말에 등장, 전 세계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준 작품이다. 이는 당시 ‘영상 혁명’이라 불렸던 작품의 비주얼 때문만은 아니다. 인큐베이터에 갇혀 컴퓨터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소모품으로 전락한 인간들의 모습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작품을 통해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라는 환상은 보기 좋게 깨진다. 불안하다. 혹시 미네르바 구속 사건이 한국사회의 치명적인 치부를 드러내는 사건이 아닐까.
‘미네르바’와 ‘<매트릭스>’ 사이에는 유사점이 많다. 모두 인터넷이란 가상의 공간에서 싸우고, 절대 우위의 권력을 갖고 있는 자들이 저항세력을 쫓는다. 또 스미스 요원이 수많은 가상 인간으로 변신 가능하듯, 권력은 광범위한 방법으로 반체제세력을 압박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네르바가 <매트릭스>의 네오(키아누 리브스)에 비교된 것은 그리 무리가 아니다. 차이가 있다면 미네르바는 총알을 피할 수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매트릭스>의 출발을 다시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저항군들의 실체는 ‘해커’들이다. 매트릭스라는 거대한 인터넷망을 균열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세력이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대부분의 인간(관객 포함)들은 매트릭스의 존재 자체도 확인할 수 없다. 핵심은 여기다. 해커들이 만들어 놓은 매트릭스의 작은 ‘틈’, 즉 ‘차이’다. 만약 차이가 없다면, 매트릭스는 영원하다.
미네르바의 글을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가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이 차이다. 정부가 말한 경제 위기와 실제 위기와의 차이,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의 비효율성과 그것이 만들어 놓을 ‘한국판 매트릭스’. 정권 획득과 정권 유지를 목표로 하는 정치인들에게 이러한 차이는 중대한 위기다. 차이에서 비롯된 국민들의 의심은 (MB정부가 들어선 과정처럼) 정권을 다른 경쟁집단에게 넘겨줄 수 있고, 권력을 잃은 집단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세력, 이익집단을 더 이상 도울 수 없다.
결국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홍보하고, 균열의 가능성을 ‘제로’에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 미네르바 구속 또한 그 하나의 수단이다. 이 방식은 효과적이다. 군중들은 인터넷 공간에 접속할 때 자기 검열을 시작하고, 비판의 수위는 낮아진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누가 자신의 ‘목’을 걸고, 체제 비판을 감행하겠는가. 모피어스(로렌스 피쉬번)는 말한다. “매트릭스는 ‘통제’다.”
이제 검찰의 주장한 ‘허위성’에 대해 논해보자. 먼저 ‘누구의 시선에서 허위인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역사는 ‘진실(이라 불리는 것)’이 권력의 소도구로 전락한 수많은 예를 보여준다. 즉 권력이 진실을 만든다. 현 정부가 말하는 진실은 과연 진실일까. 미네르바의 글이 허위라고 하자. 그럼 자연스레 ‘왜 굳이 미네르바만 구속돼야 하는가’하는 질문이 따라온다. 인터넷 공간에는 이미 숱한 주장과 ‘허위 사실’이 존재한다. 군사평론가 지만원은 ‘문근영 기부천사 만들기는 좌익세력의 작전’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논리라면 지만원은 해를 넘기기 전 구속됐어야 한다.
또 ‘외환시장 및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 환율정책 등 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경제정책은 학자에 따라 그 평가가 다르다. 정부 정책의 실패를 지적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음에도 정부는 자신들의 정책은 ‘괜찮다’하며, 남의 것들에만 ‘딴지’를 건다. 한 인터넷 논객이 올린 글이 외환시장과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한국 경제 토대가 약하다면, 잘못은 그 토대를 만든 사람들에게 있지 않을까.
문득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747 정책’이 떠오른다. 7% 경제성장과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에 진입을 목표. 현재 한국 주요 경제연구원이 예측한 성장률은 1~2%대 사이이다. 이것도 세계 경제 상황이 좋을 때 그런 거고, 그렇지 않은 경우 마이너스 성장을 예고한다. 물론 고용은 없다. 747 정책이 애초 지켜지지 않았을 ‘공약’로 한다고, 이건 너무하지 않나. MB정부의 논리로 따져볼 때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은 장밋빛 미래로 정권을 잡은 MB정부 자신이다.
미네르바를 ‘네오’로 만들고 있는 것이 정작 MB정부라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미네르바가 ‘인터넷 경제대통령’이라 불리고 있었다고 하나, 그 영향력은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미네르바의 구속 소식이 메인 뉴스에 등장하고, 미네르바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생기면서 관심은 증폭됐다. 외신들은 미네르바 구속 사태를 보도하며,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사회를 희화화했다.
만약 미네르바의 의견이 틀렸다면, 치열한 경쟁 끝에 그의 주장은 인터넷 공간에서 조용히 사라졌을 거다. 그런데 괜히 긁어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경쟁 제일주의’를 표방하는 현 정권이 말이다. 이는 네티즌과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정부의 철학과 무관하지 않다. 촛불정국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렇다. 소수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대중을 현혹하고 있다고. 대중은 사고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미네르바 구속 사건을 지켜보면서, 이 기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적대감’이다. 적대감은 냉철한 사태파악에 앞서 출현하여, 올바른 사리판단을 가린다. 정부는 모든 잘못을 정부를 비판하는 세력의 탓으로 돌리고, ‘우(라고 불리는 이들)’은 ‘좌(라고 불리는 이들)’를 비난한다. 물론 그 역도 성립된다. 또 먹고 살기 힘들어질수록 갖지 못한 자들은 가진 자들을 적대시 한다. 문제는 적대관계가 점점 제도화되고 있다는 거다. 정부는 적대감을 해소할 안전망을 만드는 대신 경쟁 교육 강화, 집시법 개정, 한반도 대운하 등 소모적인 논란을 끊임없이 만들고 있다.
또 여당은 부유층 감세, 대기업ㆍ거대신문의 방송 진출 허용 등 ‘서민들이 부자 욕하기 딱 좋은’ 법안들을 2월 국회에서 통과시키고자 한다. 얼마 전 한 TV토론회에 참가한 한나라당 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은 정부 여당의 뜻을 따라야할 때고, 그 결과는 차기 대선에서 평가하자.” 더 이상 무책임할 수 없다. 이미 충분히 망가진 상황에서 결과를 평가한 것은 아무 의미 없다. 안효원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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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공감되는 글이로군요.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2009/01/30 0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