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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 널 파멸시켜 버리겠어!

REVIEW ON 2009/02/19 15:49 Posted by 농촌총각


‘핸드폰’은 ‘휴대폰’보다 가깝다. 휴대폰이 표준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보통 이 물건을 핸드폰이라 부른다. 왜 그렇게 됐을까. 언제부터 그랬을까. 말놀이를 해보자. 핸드폰은 우리와 가깝다.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각종 유희를 즐긴다. 전철 안에서 고스톱을 치거나, TV를 보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애초 이 물건을 만든 사람들은 오늘의 풍경을 예측했을까.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들었든 한 가지 확실한 건, 언젠가부터 핸드폰이 우리를 삶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핸드폰의 부재, 곧 세상의 부재. 영화 <핸드폰>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이하 모두 ‘핸드폰’을 사용, 편의상)

연예기획사 대표 오승민(엄태웅)은 핸드폰을 카페에 두고 나온다. 핸드폰에는 방송관계자, CF관계자의 연락처가 몽땅 들어있다. 갑자기 찾아온 불편한 세계. 여기에 그가 핸드폰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 안에는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소속배우 윤진아(이세나)의 ‘잠자리 동영상’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상을 정지하고, 핸드폰 찾기에 나선 오승민. 하지만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던 핸드폰은 잘 돌아오지 않는다. 핸드폰을 주운 정이규(박용우)는 줄 것 같으면서도 시간을 뒤로 미루고, 오승민의 가슴 속 증오는 폭발한다. 오승민은 핸드폰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정이규는 왜 핸드폰을 쉽게 돌려주지 않는 것일까.

<핸드폰>은 <극락도 살인사건>의 김한민 감독이 연출한 또 한편의 스릴러다. 전편에서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긴장감 넘치게 재구성한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핸드폰을 둘러싼 현대인의 공포를 모티프로 또 한편의 맛깔난 스릴러를 만들었다. <핸드폰>은 <살인의 추억>이나 <추격자>처럼 치밀한 구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 사건의 실마리는 전혀 의외의 장소에서 풀리고, 새로운 인물의 출연으로 극 전개의 국면은 확 바뀐다. 물론 영화 전반에 배치된 복선들이 최소한의 개연성을 확보하게 만든다. 여러 번 이야기가 방향이 바뀌어 과장된 극 전개란 느낌은 들지만, 억지스럽지는 않다.

그런데 대중영화에서 관객들에게 ‘숨은복선찾기’ 놀이에 몰두하게 하는 건 좋은 취미가 아니다. 복선을 찾지 못했을 때 영화는 납득하기 힘들며, 자칫 관객이 영화의 큰 흐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김한민 감독은 단순과격한 인물, 폭력의 잔혹성 등 장르적 쾌감을 통해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오승민은 그리 복잡한 인물이 아니다. 센 사람들에게 아부하고, 약한 이들에게는 폭력을 행사한다. 이 마초 같은 인물이 겪는 시련들은 영화 전반부에 배치돼 웃음을 유발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폭력과 잔혹성의 수위는 높아간다. 살과 살이 맞부딪히고, 선혈이 낭자하는 강렬한 이미지. 관객은 숨죽여 영화에 집중하게 된다. 이미지를 통한 긴장이 이야기의 빈 곳을 채우는 셈이다.

작품 전반에 비치는 핸드폰과 현대인의 탁월한 관계 묘사는 주목할 만하다. 오승민은 핸드폰이 없으면 못사는 인물이다. 전화 한 통화가 출연여부를 가르고, 수천, 수억 원이 눈앞에서 생기고 사라진다. 장소와 시간의 유동성이 큰 연예계에서 ‘모바일(mobile)폰’은 곧 생명이다. 그의 핸드폰은 밤에도 잠들지 않는다. 그런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는 비단 오승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일상 속에서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왔거나, 배터리가 방전이 됐을 때 엄습하는 불안감을 누구나 한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핸드폰에 함몰된 현대인의 삶. 이것이 오승민이 핸드폰에 집착하고, 광기를 드러내는 직접적 이유이며, 그 공포가 더욱 섬뜩한 이유다.

또 핸드폰의 우리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고, 확대시킨다는 환상은 보기 좋게 깨진다. 많은 경우 발신인의 상황이 수신인에게 전달되지 않는다(우리는 이모티콘 없는 문자메시지를 볼 때 ‘발신인이 화가 났나’, 걱정을 하기도 한다. 발신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수신인은 필요에 의해 메시지를 취사선택함으로써 발신자의 상황을 곡해시키는데, 이 양상이 작품 속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격앙된 오승민이 아내(박솔미)에게 전화할 때, 아내는 남편이 자기에게 화를 내는 것으로 판단, 기분이 상한다. 오승민이 아니라고 하지만, 아내의 심기는 이미 불편하고,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정이규 또한 마찬가지다. 오승민과 통화할 때 그가 느끼는 건 핸드폰이 필요한 절박한 상황이 아닌 목소리에 묻어나는 ‘예의 없음’이다.

작품은 한걸음 나아가 의사소통의 단절이 익명성과 결합됐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여준다. 대형할인마트 고객관리팀에서 일하는 정이규는 일상적인 폭력에 시달린다. 전화 속 고객들은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불만을 쏟아내고, 욕설을 퍼붓는 데 익숙하다. 여기서 예의는 쉽게 찾을 수 없다. 자신이 어떤 태도를 취해도 익명성 뒤에 숨을 수 있다. 하지만 정이규는 직업상, 즉 돈을 벌기 위해서 그는 비인간적인 처우에 어떤 반응을 해서는 안 된다. 왜? 그는 애초 친절하게 설계된 인간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과 친절한 삶에 지친 정이규의 분노는 익명의 핸드폰 주인, 오승민을 향해 폭발한다. 정반대 지점에서 출발한 오승민과 정이규의 분노. 이것은 비단 그들의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핸드폰>은 더 무섭다. 안효원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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