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약한 시작과 창대한 끝. <하이스쿨 뮤지컬>에 이보다 더 어울릴 수식어는 없다. 자극적인 청춘물이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는 이 시대에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메시지를 지닌 청소년 드라마라니. 그리고 무명 아역배우들이 주인공인 데다 안무와 노래로 엮인 고전적인 뮤지컬 형식이라니. 누가 봐도 고개를 갸우뚱할 시도였다.
“아이들과 함께 앉아서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을 만들고 싶었다”는 제작자 빌 보든의 아이디어는 제작 파트너 배리 로젠부시와 감독 케니 오티가를 만나 구체화됐고, ‘하이스쿨 뮤지컬’이라는 단순하고 노골적인 제목의 하이틴 뮤지컬영화로 탄생됐다. (한국식으로) 고등학교 1학년인 농구부 주장 트로이와 과학 천재 가브리엘라가 우연히 만나 사랑을 싹 틔우고, 자신들의 숨겨진 끼를 찾아내 교내 뮤지컬 공연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TV 영화 <하이스쿨 뮤지컬>은 2006년 디즈니채널을 통해 조용히 방영됐다.
결과는 엄청난 성공으로 이어졌다. 역대 디즈니채널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올린 프로그램으로 등극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케이블TV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을 넘어 100개국 2억5천만 명의 시청자를 열광시키며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기에 이른다. 잭 에프론, 바네사 허진스, 애슐리 티스데일 등의 주연배우들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으며, 사운드트랙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했고, 콘서트 투어, 아이스 쇼, 도서 등의 부가 수익으로 이어졌다. 1편의 기적적인 성공 이후 속편이 제작된 건 시간 문제였다. 2007년, 여름방학을 맞은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그린 <하이스쿨 뮤지컬2>가 시청자를 찾았고, 1편 못지않은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고등학교 졸업으로 더 이상 ‘하이스쿨 뮤지컬’이 될 수 없게 된 마지막 3편을 극장판으로 확장해 화려한 졸업식을 치렀다.
춤과 노래에 몸을 맡긴 아름다운 청춘들
<하이스쿨 뮤지컬> 시리즈가 이토록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하이틴물에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생동감 넘치는 청춘의 한때를 그린 하이틴물은 할리우드가 끊임없이 생산하는 장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틴에이저들의 삶과 문화도 변하기 마련. 그렇다면 요즘 십대들은 어떤가. 술과 담배는 기본이고, 마약과 섹스는 옵션인 게 우리가 영화와 드라마에서 보는 미국 청소년들의 모습이다. 막장을 달리는 내용에,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 CF 저리 가라 할 감각적인 영상도 하이틴물의 특징. 그런 가운데 등장한 <하이스쿨 뮤지컬>은 너무나 착하고 밝았으며, 고전적이었다.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하는 ‘디즈니표’ 영화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러한 정공법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하이스쿨 뮤지컬> 속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이성교제나 외모, 가족문제나 사회에 대한 불만이 아니다. 이들에겐 공부나 운동, 음악 등 자신의 소질을 개발하고 장래를 준비하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다. 주인공 트로이는 아버지를 코치로 둔 농구부 주장으로서 농구선수만이 자신의 유일한 길이라 믿고 있다. 가브리엘라 역시 의심의 여지없이 과학자가 되고자 한다. 그런데 우연히 교내 뮤지컬 공연의 오디션을 보게 되면서 두 사람은 음악에 대한 숨겨진 열정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친구들과 부모의 반대 속에서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뮤지컬에 대한 욕망으로 고민한다.
영화는 농구시합과 과학경시대회가 뮤지컬 공연과 겹친 날 두 친구의 슬기로운 선택을 비추며 하이라이트로 달려간다. 트로이와 가브리엘라의 로맨스가 주요 줄거리로 작용하지만 그 흔한 키스신도 한두 번 나올까 말까이고, 질투에 사로잡힌 악녀 샤페이가 트로이와 가브리엘라를 시련에 빠뜨리지만 지극히 귀여운 수준의 악행인 데다 당연히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된다. 샤페이 역시 뮤지컬 디바가 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오히려 기특해 보이기까지 한다. 요즘 청춘영화라고 하기에 쿨함과 세련됨은 부족하지만, <하이스쿨 뮤지컬>이 내뿜는 긍정적인 에너지는 보는 이의 입가에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작품의 건강한 메시지를 더욱 빛낸 건 신나는 음악과 안무다. 얼짱 농구부 소년과 조신한 과학 천재 소녀의 만남, 노래로 말하고 춤으로 표현하는 뮤지컬 퍼포먼스의 향연은 <그리스>(1978)에서 멈춘 하이틴 뮤지컬영화의 추억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교실과 식당, 농구장, 과학실, 공연장 등 고등학교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무대에서 우리의 밝고 참한 청소년들은 온몸으로 노래하고 춤을 추며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음악가이자 안무가이면서 배우이기도 한 케니 오티가 감독은 <하이스쿨 뮤지컬>에 생명력을 불어 넣은 일등 공신. 그의 연출로 탄생된 춤과 노래는 <그리스>의 맥을 이으면서도 21세기 청소년들의 상큼 발랄함을 그대로 담아 뮤지컬영화 이상의 문화적 파급력을 발휘했다. <하이스쿨 뮤지컬2>의 사운드트랙 음반은 제35회 아메리칸뮤직어워드 수상은 물론 모든 장르를 통틀어 2007년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음반으로 등극했다. 단순히 뮤지컬영화 삽입곡이 아니라 신세대들이 즐기는 팝 음악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TV를 졸업하다, <하이스쿨 뮤지컬: 졸업반>
1, 2편의 연이은 흥행 이후 <하이스쿨 뮤지컬>은 ‘영화’라는 정체성을 제대로 살려 극장판으로 제작되기에 이른다. 앞선 두 편이 TV 영화로서 디즈니채널이 방영되는 일부 국가에만 한정적으로 선보일 수밖에 없었다면, 세 번째 시리즈인 <하이스쿨 뮤지컬: 졸업반>은 제대로 된 극장용 영화로 보다 널리 개봉할 수 있게 됐다. 극장판의 연출과 안무 역시 케니 오티가 감독이 맡았으며, 잭 에프론과 바네사 허진스, 애슐리 티스데일, 루카스 그래빌, 코빈 부로, 모니크 콜맨 등 주요 배우들 역시 TV 시리즈에 이어 극장판에서도 똑같은 배역으로 다시 뭉쳤다. 3편까지 이어 오면서 감독과 주요 출연진의 교체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 또한 <하이스쿨 뮤지컬>이 단순한 시리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증거다.
자그마한 브라운관을 벗어나 커다란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만큼 스케일은 보다 커지고 볼거리는 더욱 다양해졌다. 농구 코트와 식당에서 이뤄지는 퍼포먼스는 1, 2편을 계승하고 있지만 무대는 더욱 넓고 다이내믹해졌으며 특수효과도 많이 쓰였다. 하늘에서 농구공이 쏟아지는 장면, <시카고>를 연상시키는 의상과 세트, 폐차장에서의 역동적인 공연, 졸업파티와 졸업식의 대규모 군중 퍼포먼스 등 TV 버전에선 느낄 수 없었던 강렬한 비주얼을 만날 수 있다. 왈츠에서 힙합, 브레이크 댄스, 팝, 라틴 살사, 재즈 등 보다 다채로워진 안무, 잭 에프론과 바네사 허진스의 귀에 착착 감기는 하모니, 애슐리 티스데일의 앙큼한 보컬과 댄스도 더욱 업그레이드됐음은 물론이다.
성인이 되기 직전의 고등학교 졸업반인 만큼 주인공들도 한층 성숙해진 모습이다. 스토리 역시 마냥 쾌활하기보다는 보다 현실적인 고민들로 채워졌다. 트로이와 가브리엘라는 말썽쟁이 새내기들을 챙기는 어엿한 선배가 됐으며, 서로 멀리 떨어진 대학교 때문에 이별의 위기를 겪으며 성장한다. 농구와 뮤지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트로이의 고뇌 역시 절정으로 치닫는다. 극장판은 무엇보다 잭 에프론의 것이다. 1, 2편의 풋풋한 꽃소년 티를 벗고 그을린 피부와 터프한 근육으로 무장한 에프론은 부모의 바람과 자신의 선택 사이에서 고민하며 괴로워하고, 대학 진학으로 멀리 떨어지게 될 여자친구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자다움으로 배우로서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 준다.
<하이스쿨 뮤지컬>은 이렇게 졸업식을 치렀다. 케이블채널의 자그마한 TV 영화로 시작해 극장용으로 확대되며 하나의 브랜드가 된 <하이스쿨 뮤지컬>은 청춘물과 뮤지컬영화가 주는 쾌감이 착하고 희망적인 메시지와 만났을 때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를 신드롬으로 증명했다. <하이스쿨 뮤지컬>의 성공 신화는 할리우드 청춘물의 바람직한 대안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정미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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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읽고 갑니다..
2009/02/23 23:19저도 하이스쿨뮤지컬의 팬으로 처음엔 저예산TV영화로 제작 되었단게 몰랐던 내용이네요..
정말 재밌는 영화~ㅋ
HSM2 OST를 너무 즐겁게 들었기 때문에 괜시리 3편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요.
2009/02/24 22:14왠지 [논스톱] 부류의 환상적 학창시절 이야기..가 연상되지만 그래도 ㅎㅎㅎ
예매권이 생겼는데 상영관이 메가박스 온리라는 게 발목을 잡네요 ㅜㅠ
동네 극장에서는 상영을 안 해 주다니...
잘 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