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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에이지> 시리즈로 유명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제작사 '블루 스카이'의 야심작 <호튼>. 미국의 동화작가 닥터 수스의 원작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세계의 소통과 생명의 소중함을 주요 메시지로 삼고 있다. 이제 극장 개봉도 했으니 마음 좀 편하게 얘기해도 되겠거니, 싶어 포스트를 쓴다.
이 애니메이션, 참으로 기묘한 감정에 빠져들게 만든다. '누군가 마을(Whobill)의 종말을 막기 위한 호튼의 고군분투가 주요 내용인데, 하이라이트는 호튼을 도마 위에 올린 정글 주민들의 인민재판과 생존을 위해 누군가 마을 사람들이 집단 행동을 벌이는데 있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호튼은 개인주의자다. 혼자만의 여유만만한 일상을 즐기고 아이들을 좋아하고, 개미 한 마리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려 애쓰는 캐릭터다. 그러나그 '다름'이 표현되고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때, 집단의 반응은 과민해진다. 호튼은 '위험분자'로 몰리고 만다. "우리 아이들을 이상한 상상력으로 홀리고 있다"는게 그 이유다. 급기야 호튼에게 떼거지로 덤벼들어 린치를 가하고 마는 정글 동물들은, 21세기에도 여러번 목격했던 마녀 사냥을 연상케 할 정도로 기분이 오싹하다. 거기에 하나 더. 다 큰 아이를 주머니에 가둬두려는 캥거루를 통해서 보호와 억압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 어른들의 자화상을 비춘다.
위기에 빠진 호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호튼을 지지하는 누군가 마을 사람들의 시민운동이다. "우리 여기 있어요!"를 다함께 외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법으로, 누군가 마을은 자신들도 호튼도 살린다. 그 목소리를 듣는 이는 바로 엄마의 과도한 통제를 받으며 자랐던 아기 캥거루. 영화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반항해도 좋아!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 청소년들의 참여가 많다는 소식을 듣고 있으니, 마음이 짠하다. 그동안 두발 자유화, 복장 자유화, 그리고 종교 자유화 등 청소년을 인간이 아닌 관리 감독 대상으로 바라보는 기존 시스템에 대항했던 이슈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없었던 일'로 사라졌다. 여전히 학교는 머리 길이를, 복장을, 종교를 획일화시키는 체제를 고수하고, 아이들에게 반항할 기회마저 빼앗았다. 청소년 개인주의자들은 가차없이 소외 당했다. 지난 대선에서 10대들의 성향을 '보수'로 규정하는 말 역시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기성세대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개성을 거세하고, 독립을 거부하고, 어른들에게 순종적인 것이 자신의 안전에도 효과적이라는 '실용주의'에 빠져있다고 분석했다. 정말 그럴까? 그 정체성은 10대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하도록 강요된 게 아닐까. 혹은 기성세대들에 의해 편의적으로 지정된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이들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냈다. "나 여기 있어요!"하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한번도 과외로 배운 적 없는, 스스로 내는 목소리다. 경찰과 정부, 그리고 학부모들은 이번에야 말로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무조건 "불법이니 하지 마라"고 할 게 아니라 "이런 이슈에서 목소리를 낼 때 이런 방식을 쓰는게 어떨까?"라고 가이드를 해주는게 낫다. 이런 지침도 없이 논술을 가르치고 독서를 하라는 건 너무하지 않나. <호튼>의 외침이 닭살스럽긴 해도, 아이들에게 '건강한 반항'을 가르치는 것만 무의미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송순진 기자(www.film-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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