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즐거운 얘기를 나눴던 게 언제쯤이었는지 참으로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한국영화 개봉은 띄엄띄엄, 덩달아 영화잡지는 하나둘 스러져 가니 여기저기서 나 죽네, 하는 소리만 요란한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한번 생각해봤다. 최근 영화를 보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눴던 게 언제였는지. 한참을 곰곰 생각하고 꽤 많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 <미쓰 홍당무>에 다다른 후에야 그때 양미숙을 두고 여러 사람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언론시사를 놓치고 뒤늦게 혼자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게 됐는데 상영시간 내내 이경미 감독이 전하는 삐딱선 개그나 어학실 촌극 장면에 기막혀 했던 것은 물론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이 슬픈 코미디를 나누고 싶어 괜스레 혼자 달떠 있기도 했다.
이 기분 좋은 기억은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우리의 양미숙 공효진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때까지 이어진다. 겉으론 “당연한 결과야”라고 애써 눌렀지만 속으론 내 일도 아닌데 참 뿌듯하고 즐거웠더랬다. 또 이경미 감독이 수상했을 때는 영화를 만드는 데 1원 한 장 보탠 적 없는 내가 마치 저 자리에 서있는 양 뭉클해 했으니 실로 좋은 영화, 훌륭한 영화가 가져다주는 효과란 2시간이나 8천 원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게 틀림없을지어다.
대체로 이런 의미로 단체관람이라는 실로 구시대적이기 짝이 없는 이벤트를 준비해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어쩌면 이 각박한 세상 그 어떤 문화생활보다도 싸고 가까이에 있는 영화라도 좀 보고 살자는 것, 그리고 즐거운 영화를 보고 즐거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이 투박한 행사의 아주 작은 목적이자 의미였을 수도 있겠다.
순전히 객기에 의존해 단 이틀 만에 추진해버린 이벤트, 필름온과 ‘영화 좀 보자’에는 주최측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수의 독자들이 <굿' 바이> 단체관람에 동행하겠노라며 신청해주셨다. 허나 이런 호응에도 부응하지 못하고 변덕을 부려 갑자기 날짜를 앞당기지 않나 또 멀티플렉스에서는 홀대받는 시간대 덕분에 장소마저 당초 예정됐던 아트레온에서 근처 아트하우스 모모로 옮기는 등 제1회 필름온과 ‘영화 좀 보자’는 영화 시작 전까지도 마치 참석인원을 줄이려는 양 참으로 많은 변동사항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죄송스럽게도 실제로 이 과정에서 최종 참석인원이 많이 줄었다).
어찌됐든 이러저러한 중간과정을 다 차치하고 그저 <굿' 바이>를 보고 나온 분들의 표정이 밝았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성공적인 이벤트가 아니었나 자평해본다. 염습과 납관을 통해 죽음의 이야기를 건네는 영화는 죽음을 대하는 경건한 의례를 중심으로 일본영화 특유의 잔잔하고 무심한 분위기 속에 자연히 용서와 화합으로 이어지는 수순에 보편적인 설득력을 싣고 있었다. 이는 영화의 소소하고 애잔한 품새와도 충분히 어우러져서 영화관을 나선 어떤 분은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고백하기도 했고, 또 다른 분 역시 이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그냥 스쳐지나갈 영화이지 않았느냐며 다행이라는 말로 영화에 대한 감상을 대신하기도 했다. 이어진 술자리에서는 첼로를 중심으로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변주하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영화에 무척이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모두 입을 모아 칭찬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린 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가 죽은 아버지의 손 안에서 또로록 굴러 떨어지는 ‘편지’를 마주하는 순간 시체를 다루는 그의 일이 정말로 운명이었다는 이 하찮은 변론에도 자연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건 오직 영화의 힘 때문. 덕분에 영화를 본 모두가 오히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더 즐거운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문득 요즘들어 부쩍 작년 F모 잡지를 그만둔 후 이제 뭐하나 하면서 새로 채워야 될 이력서를 앞에 두고 막막해 하던 꿈을 자주 꾸곤 한다. 꿈에서 깨고 몇 초간 먹먹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다가 서둘러 출근준비를 하는 도중 자연히 기억은 예전 그때, 그러니까 처음 기자생활을 시작하게 된 면접 때까지 고스란히 거슬러 오르곤 한다. 나의 최초의 편집장이었던 당시의 면접관은 그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이렇게 (개인 홈페이지에) 글을 쓰고 있으며 왜 글을 쓰고 싶냐”고. 나는 그 질문에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시간이 더 길고 더 즐겁기 때문에”라고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전히 이 말은 현재 이 일에 대한 나의 신념을 대신하는 짧은 말로 기능하곤 한다. 불편한 영화를 보고 난 후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이물감을 온전히 정리해 토해낼 때의 기분은 컴컴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시간보다도 분명 즐거운 시간이다. 때문에 단지 2시간이라는 순간의 쾌감에만 한정된 영화감상이란 오히려 불편한 영화들보다 더 불편하다. 그리고 어쩌면 모든 문화, 모든 예술이 떨구는 감흥과 시간의 양에 비례해 우리는 걸작의 본질을 헤아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체관람이 끝난 후 있었던 술자리에서 ‘요즘 영화 보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라는 조금은 우울한 주제에 대해 어떤 분은 이런 의견을 피력하셨다. 다가서기 힘든 영화들이 많다, 영화를 보고 그저 즐겁고 싶은데 어려워 보이고 힘들어 보이고 우울해 보이고 심각해 보인다고. 옳은 말이라 생각한다. 나름 베테랑이라 할 수 있는 어떤 스릴러 감독은 <추격자>가 나오기 전부터 자기는 줄곧 이런 영화를 해왔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마스터베이션으로 영화를 찍기도 했고, 또 아카데미 시상식을 기점으로 수많은 영화들에 언론이 손을 모아 엄지를 곧추 세웠을 때 관객들은 더욱 난감했던 게 사실이니까. 또 실제로 할리우드 포스트9.11 영화들은 그 메시지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또 다시 극장에 가서 골치 아픈 일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미국 국민들에 의해 한결 같이 외면당하기도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지점도 있다. 여전히 재미라는 것은 단순히 웃기고 밝고 즐거운 측면에만 도사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 머리통에 도끼를 꽂아 넣는 영화를 도대체 왜 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도 쾌감이 있고 또 미학이 도사린다. 그리고 나름의 재미 또한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세상에는 수많은 영화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모든 영화가 예술영화일 필요가 없듯이 모든 영화가 대중영화일 필요도 없다. 모두가 재밌어 하는 영화가 있을 리 없겠지만 설령 있다고 해도 마뜩찮은 일이 될 게 분명하다. 재미란 분명 상대적인 개념이고, 그런 의미에서 영화 제작진들은 그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상대적 재미를 포착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다양함이 있기에 비로소 영화를 본 후의 시간이 재미있고 의미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모든 영화가 즐겁고 재밌을 수 있을 것 같다. 비슷한 장르영화의 품새 속에서도 색다른 무언가를 기대하는 관객의 심리는 이를 증명하는 아주 작은 예에 불과하다. 영화를 유희의 순간에서 탈피시키는 순간 어쩌면 우리는 보다 더 많은 영화들을 만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이는 분명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시간이 훨씬 더 길 뿐만 아니라 더 즐겁기 때문이리라. 강상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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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분들이 오셨다면 좋았을 텐데 그게 좀 아쉽긴 하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이벤트였습니다 :-)
2009/03/30 11:40덕분에 좋은 영화도 한 편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요.
수고하셨습니다 (__)
반가웠습니다. 다음에도 같이 봐요~ ㅎㅎ
2009/03/30 17:27함께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은 이벤트입니다.
2009/03/30 12:58저도 그 수다에 참가하길 바랐는데, 다른 큰 일이 있어서.
여튼, 담에는 꼭 함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