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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길 감독의 <살기 위하여-어부로 살고 싶다>(이하 <살기 위하여>)를 처음 본 건 2007년 열린 EBS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EDIF)에서였다. 퇴근 후 우연히 본 작품은 예상치 못한 감정의 소요를 불러일으켰다. 그 때 그 느낌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당시 썼던 글을 올린다. 거칠지만, 당시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서이다. <살기 위하여>는 2007 EIDF 시청자상, 2007 서울환경영화제 한국환경영화 관객심사단상, 서울독립영화제2007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요즘 주변에서 EBS 지식채널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가끔 채널을 돌리면서 화면 모퉁이에 새겨진 지식채널 로고를 보기는 했으나, 하루 종일 지친 정신을 달래기에는 야구나 <무한도전>이 더 좋았기에 EBS는 늘 ‘스킵채널’이었다. 그런데 내가 뭔가를 배울 게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많은 경우가 지식채널에 대해 얘기를 했다. 신기함 반, 공부할 맘 반에 31일(금) 퇴근 후 과감히 EBS를 선택했다. 그때는 브라운관에서 다큐멘터리 한 편이 나왔다.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낯익은 새만금의 풍경. 이강길 감독의 <살기 위하여>였다. 인디포럼에서 상영된 이 다큐멘터리가 ‘아주 괜찮다’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에 작심을 하고 끝까지 보기로 했다.

사실 지금은 새만금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이 식었다.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 핫 이슈로 다뤄졌기 때문에 새만금을 모를 리 없다. 오히려 나의 고향이 댐에 잠긴다는 상황과 맞물려 새만금은 늘 볼 때마다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갯벌을 메운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에서 시작해, 시대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그 변하지 않는 의지에 좌절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새만금 문제는 지겹기까지 했다. 그동안 반복된 정부와 환경운동가, 정부와 주민들의 갈등이 풀리지 않으면서 내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내가 새만금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것도 무관심해 지는데 한 몫 했다.


그런데 새만금 문제를 자본과 환경 등의 구조의 문제로 환원시키면서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사람이다. 영화를 먼저 보면서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촬영 당시 그곳에서 형성됐던 대치구도였다. 반대자와 찬성자, 그리고 경계를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구도를 워낙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것을 파악하는 데는 채 2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브라운관을 통해 죽어가고 있는 새만금에 눈을 맡기고 있을 무렵,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대자가 아닌 00씨, 반대자가 아닌 XX씨. 그들은 그곳에서 숨을 쉬고, 화를 내고, 움직이고 있었다.

새만금 사람들은 배를 타고, 물막이 공사가 한창인 바다로 나아갔다. 그들이 고기를 잡던 곳, 잡은 고기에 초장을 찍어 먹으며 소주를 한 잔 걸쳤던 곳. 이제 그곳은 차가운 시멘트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들은 공사현장에 뛰어들어 자신보다 수천 배가 큰 트럭 앞에 몸을 맡겼다. 나를 죽이지 않으면 길을 막을 수 없다는 의지표현이었다. 하지만 그 의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의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다. 잘 훈련된 전경들이, 누운 사람보다 수십 배 많은 전경들이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호송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나간 자리. 그곳에는 다시 돌과 시멘트가 부어졌다. 그렇게 물길이 막혔다.


물길이 막히던 날.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전국의 99.9%의 국민들이 새만금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그들은 0.01%의 희망을 보고, 갯벌을 위로했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꼭 지켜줄게.’ 그런데 그 희박한 가능성마저 사라진 순간, 그들은 갯벌을 위로할 말을 잃었다. 딸을 붙잡고 “어부는 국민도 아녀, 나라가 어부의 터전을 빼앗아 갔어, 그러니께 너는 어부가 돼서는 안 돼, 공부 열심히 해서, 힘 센 사람이 되야혀”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순간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참을 수 없었던 시간을 떠올렸다. 군화를 신고 36시간째를 맞이한 순간. 참을 수 없는 그 찝찝함이란 아픈 것도 아니고, 힘든 것도 아니다. 그저 그런 감각이 나의 몸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때는 군화를 벗어봐야 소용이 없다. 군화를 벗고 발을 주무르고, 뛰어다녀 봐도 그 감각을 사라지지 않는다. 새만금 사람들의 슬픔을 얘기하면서, 이런 개인적인 비유를 하는 것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겠지만, 문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로 인해 다가오는 짜증과 슬픔은 생각보다 크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 청년이 대책위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마을회관으로 간다. 그는 그곳에서 분노를 터트린다. “오늘 물길이 막혔다. 그동안 대책위는 무엇을 했는가.” 사실 청년과 대책위 지도부의 생각이 애초부터 달랐다. ‘생존권 사수’라는 같은 명제를 가슴에 품고 있었지만 그 해결방법이 달랐다. 청년은 어떻게든 물길을 못 막게 하면서 갯벌을 살리는 것이 생존권을 지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책위 지도층은 어떻게든 좋은 조건에서 정부 혹은 지자체와 협상을 잘 해서 좀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이 생존권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시위를 하면서도 기자들을 부르고, ‘보여주는’ 시위를 벌인다.


이 지점에서 <어부로 살고 싶다>는 새만금 주민들의 ‘생존싸움’에서 ‘인간의 욕망과 갈등’의 측면으로 그 외연을 확장한다. 선과 악이 분명한 상황에서 싸움을 벌이는 것은 오히려 쉽다. 하지만 그 속에서 다양하게 분화되면서, 선과 악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싸움의 동력은 쇠퇴한다. 동료들에게 느끼는 배신감은 막혀버린 새만금과 더불어 주민들이 겪어야 하는, 그리고 관객들이 더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것이 이 작품이 단순한 뉴스릴을 넘어 영화로 재탄생되는 지점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떠올려본다. ‘인상적’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엔 너무나도 추한 장면. 물막이 공사가 끝나던 날, 현대건설 직원들과 정부, 지자체 관계자들은 막혀버린 둑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삼창을 부른다. 수천 개의 흰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는 그 장면을 어찌 장관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구역질이 났다. 그 거대한 자본의 힘. 그들이 환경에 대해 몰지각하고, 주민들에게 무관심(혹은 혐오)한 것을 탓하지 않겠다. 하지만 어떻게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그렇게 아파하는데 웃을 수 있을까. 통장에 차곡차곡 쌓일 돈이 그들의 아드레날린을 분비케 한 것인가.

영화를 보고,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니 눈물이란 표현은 적절치 않은 표현이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어깨가 들썩이며 흐느꼈다. 작은 방에 홀로 앉아 브라운관을 바라보며 눈물이 범벅된 얼굴이 절대 아름답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자본의 노예가 되지는 말자. 그래서 남들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지지 말자. 언제 기회가 될 때,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안효원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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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수정/삭제  댓글쓰기

    슬픈나라군요..

    2009/04/14 14:50
  2. Favicon of http://bh0303.tistory.com BlogIcon black_H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의 재벌들이 솔직해 진다면 아마 전국에서 폭동이 일어날겁니다.
    슬픈 현실이죠.

    2009/04/14 15:59
  3. 낄낄...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이 진흙에 돌말어 처먹으면서 흙탕물 처마시고 살아갈수 있다면 당연히 자연보호 해야겠지만서도...
    뭐 돈대줄것도 아니고, 콘크리트 덩어리 안에서 온갖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면서 자연보호 찌질대는건 좀 설득력이 없는거 아님???

    2009/04/15 08:33
    • Favicon of http://ak20.tistory.com BlogIcon 농촌총각  수정/삭제

      물론 누구나 온갖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고요. 다만 개발주의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가치만이 존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이걸 한 번 상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자식, 손자가 평생 흙땅, 갯벌 한 번 걷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것 또한 슬픈 일 아닐까요.

      2009/04/15 09:34
  4. 1214  수정/삭제  댓글쓰기

    농대를 졸업하고 농진청에서 일하는 분과 말씀을 나눈 적이 있는데
    정말 순수하게 줄어드는 농지에 대해서 걱정하시는 마음으로 새만금 문제에 찬성하시는 모습을 본 이후로 새만금 문제에대해 쉽게 동의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새만금 개발에 찬성하시는 분들이 전부 재벌과 돈의 노예들이라고 하기는 어려울것 같습니다

    2009/04/15 09:17
    • Favicon of http://ak20.tistory.com BlogIcon 농촌총각  수정/삭제

      물론 새만금 개발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모두 재벌과 돈의 노예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또 그게 사실이고요. 다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막강한 진리가 수많은 가치 중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판단을 흐린다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시골에서 성장하고, 전국을 돌아다녀본 결과 시골에 농지 아직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일을 할 젊은 사람들이 부족하지요. 시골 땅 많은 부분이 도시 사람들의 소유인 것도 문제가 큽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좋은 의견 올려주신 거 감사합니다.^^

      2009/04/1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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