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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약속만큼 어렵고 서글픈 약속도 없다. 다시는 술을 먹고 정신을 놓지 않겠다는 약속, 다시는 헤어진 애인에게 전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깨는 순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밀려온다.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처럼 어리석은 짓도 없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게 안 좋은 결과가 빤히 보이는데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하지만 당사자가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적이 있다는 경험을 떠나서, 오죽 원했으면 스스로 약속을 저버렸겠는가.

그런데 이것이 구조적이고 일상화된 경우라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다시는 절망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도 이내 절망에 빠져버리는 삶. 똥을 피해 멀리 날아가고 싶어도 이내 똥을 밟고 주저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똥파리와 같다. 독립영화계의 인기스타 양익준이 감독, 주연한 <똥파리>는 이 같은 똥파리와 같은 삶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상훈(양익준)은 일명 '용역'이라 불리는 깡패다. 총장의 비리에 맞서 시위하는 대학생들을 사정없이 구타하고, 하루 종일 사채를 쓴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가혹한 폭력을 가한다. 물론 납득할 수 없는 이자를 떼는 것은 기본이다. 그에게 네 편, 내 편은 따로 없다. 그저 세상에 대한 혐오로 닥치는 대로 주먹을 휘두른다. 하지만 그에게도 지켜주고 싶은 이들이 있다. 이복누이와 그 아들이 그 주인공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친절하지는 못하다. 욕을 하고, 불만을 쏟아내지만 마음만은 따뜻하다.

이런 그의 삶에 여고생 연희(김꽃비)가 불쑥 들어온다. 골목길에서 무심코 뱉은 가래침을 맞은 연희는 상훈에게 해결하라고 한다. 담배꽁초로 가슴에 뭍은 가래침을 닦던 상훈은 연희의 싸대기를 맞게 된다. 맞고는 못사는 상훈. 아무렇지도 않게 연희에게 주먹을 날린다. 이후 둘은 묘한 관계를 형성한다. 연희는 상훈에게 계속 연락을 하고, 상훈 또한 거친 그녀가 나쁘지 않다. 상훈의 정형화된 일상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상훈, 연희, 조카를 아우르는 '가족' 비슷한 관계가 형성된다. 서서히 거친 세상에 염증을 느끼는 상훈은 이제 조금은 다른 삶을 꿈꾼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


<똥파리>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것은 청각적 충격이다. 상훈의 입에서 나오는 욕설은 거침이 없다. 지금 이 리뷰를 보고 있는 당신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욕을 상상해 보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 될 것이다. 물론 가족, 친구, 여성 등 그 대상은 제한이 없다. 이런 그의 언어행동은 보통의 사람들의 것과는 다르다. 그의 언어행동은 그저 감정의 표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세상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를 갖지 않은 상훈은 세상과 말을 섞기를 거부한다.

그런데 그의 이력을 살펴볼 때, 정반대의 관점에서, 세상이 상훈을 거부했다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가 세상을 거부한 결정적인 이유는 아버지가 일삼던 가정폭력이다. 인간이 아버지를 선택할 수 없는 한, 상훈은 그런 상황을 강요받은 것이다. 그의 욕설은 유년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언어, 즉 이성의 세계에 편입하지 못한 상훈의 절규이다. 이는 사회적 보살핌을 받지 못한 개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몸부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처음에는 그의 거친 욕설이 당혹스럽다가도 후반부로 갈수록 그에게 연민이 느껴지는 이유이다.


작품 속에서 폭력은 청각적인 것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상훈의 몸짓은 시각적인 것을 넘어 정서적인 충격을 준다. 사실 우리가 스크린에서 보지 못한 폭력의 양상은 그리 많지 않다. 백 년이 넘는 영화 역사 속에서 구현 가능한 대부분의 폭력은 스크린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똥파리>의 것은 다르다. 늙어버린 아버지에게 발길질을 하고, 여성에게 사정없이 주먹을 날린다. 물론 이것이 납득 불가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그는 상식의 세계에 편입하지 못한 이이기 때문이다.

상훈이 세상에 편입되지 못함은 폭력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영상으로 형상화 된다. 연희, 조카와 단란한 한 때를 보내는 상훈. 상훈에게 허용된 얼마 되지 않는 행복한 시간. 하지만 감독은 이 광경을 따뜻하게 그리지 않는다. 초점이 맞지 않는 카메라, 몽환적인 음악, 세상에 대한 낯설음이 가득한 상훈의 표정 등은 불안감을 형성한다. 상훈이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겠다는 희망이 엿보이는 동시에 삶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그를 엄습할 것 같은 불안감이다. 이제 그는 세상으로 나가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연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냐, 고등학생인 니가 가르쳐줘’라는 질문을 던진다.


부정한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부재(상훈의 아버지는 15년 동안 감옥 생활을 했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칠어진 상훈이 이제 세상과 소통을 시도한다. 다시는 지금과 같이 살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 연희의 가족,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혹했던 세상이 쉽게 희망의 빛을 선사할 리 없다. 오히려 그가 남겨두고 떠난 폭력의 빈자리는 누군가에 의해 채워질 뿐이다. 마치 물이 흐른 자리에 다시 물이 차 끊임없이 물이 흐르는 것처럼. 이들은 바로 벗어나려 해도 똥을 벗을 날 수 없는 똥파리들이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어도 숨쉬기조차 힘겨운 삶을 사는 이들.(<똥파리>의 영어제목은 Breathless이다.)

양익준 감독이 풀어낸 이야기 방식이 새롭거나 치밀하지는 않다. 하지만 강렬한 인물들이 처절하게 뿜어내는 거친 숨소리, 시청각적 충격으로 관객을 흡수하는 영상은 머릿속 깊숙이 파고든다 . 특히 영화 마지막 장면에 펼쳐지는 극한 감정의 대립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안효원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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