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은 이미 추리소설계나 출판계만의 것이 아니다. 묵직한 책장 저 너머로 날아올라 오늘날 영화·드라마 제작자들에게 가장 훌륭한 소스, 확실한 보증수표로 각인된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주옥같은 역작을 바탕에 둔 영화·드라마를 간추려본다. 강상준 기자(FILMON)
<비밀>
1999 | 연출 타키타 요지로 | 출연 히로스에 료코, 코바야시 카오루 히가시노 게이고의 러브스토리도 역시 히가시노답다.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비밀>은 사고로 인해 엄마의 영혼이 깃든 딸을 두고 아내 혹은 딸로 바라봐야 하는 남자의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일본은 물론 홍콩, 대만 등에서도 개봉해 모두 흥행에 성공했으며 해외 유수의 영화제를 통해 유럽에도 소개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 2007년 <더 시크릿>이란 제목으로 프랑스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했는데, <더 시크릿>은 전혀 다른 문화를 배경으로 영화 <비밀>과는 조금 다른 결말을 택하며 드라마적 감성에 힘을 더해 원작을 해석하고 있다.
<악의>
2001 | NHK | 연출 나가오키 와타루 | 출연 하자마 칸페이, 사사키 쿠라노스케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친구를 죽인 아동문학가의 진정한 악의는 무엇이었을까? 화자의 시점을 여러 차례 옮기며 진실을 유예시키는 원작의 독특한 방식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데에는 오직 사소한 명분이면 충분하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철학을 확연히 드러낸다. 드라마 <악의>는 형사 콜롬보를 연상시킬 만큼 순박한 외모에 냉철한 추리력을 가진 형사 사이바라 키네오(하자마 칸페이)와 살인자 노노구치 오사무(사사키 쿠라노스케)의 대결 구도에 더욱 힘을 실어 보다 선명하게 캐릭터를 부각시키며 죽음까지 각오한 인간의 ‘악의’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를 면밀히 추적해 나간다.
<g@me>
2003 | 연출 이사카 사토시 | 출연 후지키 나오히토, 나카마 유키에
<게임의 이름은 유괴>를 원작으로 한 영화. 영화 <1리터의 눈물>의 후지키 나오히토와 드라마 <고쿠센> <트릭> 시리즈로 잘 알려진 나카마 유키에가 공연했다. 이를 두고 원작자인 히가시노 게이고조차 원작 캐릭터의 이미지를 그대로 따온 캐스팅이라고 평가했지만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인질과 공모해 유괴를 벌이는 인질범. 얼핏 인질범의 완벽한 승리가 예견된 듯 보이는 사건에 심리적 트릭과 허를 찌르는 반전이 속도감 있게 어우러진다. 휴대폰이나 인터넷 게시판을 활용한 심리 게임과 유괴 작전 등 엔지니어 출신으로 첨단 기기와 그 문화에 정통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면면이 작품 전편에 독특한 인상을 남긴다.
<호숫가 살인사건>
2004 | 연출 아오야마 신지 | 출연 야쿠쇼 코지, 야쿠시마루 히로코, 에모토 아키라
초등학교부터 입시전쟁을 치러야 하는 일본의 현 세태에 대해 스릴러의 외피를 두르고 우회적 공격을 가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역작을 영화화했다. 호숫가 별장에서 아이들과 과외학습을 하는 동안 언뜻 치정 살인 정도로 보이는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그러나 별장 내에 흐르는 묘한 기류, 이중삼중의 오해를 헤치고 마침내 사건의 핵심에 다가서는 순간 그 잔혹한 진실은 사뭇 처연하기까지 하다. 자녀를 좋은 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절대로 궤도를 이탈하지 않기 위해 반칙도 불사하는 학부모의 그릇된 경쟁의식과 자식사랑이 아오야마 신지 감독 특유의 정적인 연출에 힘입어 날카로운 긴장감을 더욱 배가시킨다. 국내에는 2004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돼 호평 받은 바 있다.
<백야행>
2006 | TBS | 연출 나스다 준, 이시이 야스하루 | 출연 야마다 다카유키, 아야세 하루카
<주간문춘>에서 선정한 1999년 걸작 미스터리 1위를 차지한 <백야행>은 히가시노 게이고 팬들에게서도 그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어릴 적 서로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 유키호와 료지가 자신들의 잔혹한 운명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드라마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서 열연했던 야마다 다카유키, 아야세 하루카 콤비가 이번에는 어두운 그림자 속에 살아가는 연인으로 분한 <백야행>은 2006년 일본 TV드라마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백야행>은 현재 국내에서도 손예진, 고수 주연의 영화로 제작 중이다.
<갈릴레오>
2007 | 후지TV | 연출 니시타니 히로시 | 출연 후쿠야마 마사하루, 시바사키 코우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철저한 이성주의자이자 물리학 교수인 유카와 마나부가 얼핏 초자연 현상쯤으로 보이는 기묘한 살인사건을 논리정연하게 정렬시킨다.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여자 신참형사 우츠미 카오루를 등장시키고 있는 드라마는 대단한 반전에 의존하기보다는 각 에피소드별로 구성된 원작을 충실히 옮기며 보다 밝은 분위기의 정통추리극 형태로 이야기를 직조한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3부 격인 장편 <용의자 X의 헌신>의 영화화 역시 드라마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의 주역들이 그대로 참여하고 있다.
<유성의 인연>
2008 | TBS | 각본 쿠도 칸쿠로 | 출연 카나메 준, 토다 에리카, 니시키도 료, 니노미야 카즈나리
어릴 적 살인사건으로 부모를 잃은 세 남매가 성장하면서 부모님을 살해한 범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악전고투를 펼친다. 출간되자마자 드라마로 제작된 <유성의 인연>은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속도감과 서스펜스를 등에 업고 시청률에서도 고공행진을 펼쳤다. 드라마는 원작에 비해 밝은 분위기로 치환됐지만 세 남매의 끈끈한 형제애와 후반부에 도사리고 있는 굉장한 반전 등 흥미요소만큼은 충분히 아우르고 있다. 시효가 끝나기 전에 범인을 찾아야 하는 세 남매의 분투기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전개되는 작품으로, 탄탄한 복선 구조로 인해 회를 거듭할수록 그 힘을 더한다.
<명탐정의 규칙>
2009년 4월 17일 방영예정 | 아사히TV | 출연 마츠다 쇼타, 카시이 유우, 기무라 유이치
일본드라마 2/4분기 최대의 화제작 중 하나로 떠오르는 드라마.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는 다잉 메시지, 밀실 살인, 사라진 흉기 등 추리소설의 명제와도 같은 갖가지 법칙을 뒤엎고 비판하는 반(反)추리물의 형식으로 여타의 정통추리극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미스터리의 규칙을 비웃는 괴짜 탐정 다이고로(마츠다 쇼타)의 독특한 캐릭터로 인해 더욱 주목받고 있는 작품으로, 추리극의 왕도를 철저히 파괴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허를 찌르는 구성으로 승부수를 띄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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