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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경기, 어려운 영화판. 그래서 신인들의 활약은 더욱 반갑다. 황수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리 집에 왜 왔니>는 일견 포스터의 알록달록한 느낌처럼 귀엽고 상큼하기만한 그렇고 그런 로맨틱코미디쯤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잘 짜인 상황극 코미디에서 시작해 처연한 멜로로 흘러가 드라마로 완성되기까지, 여러 장르를 오가다 마침내 뭉클한 치유의 드라마로 합일되는 영화는 그 묵직한 본질을 정교하게 유예시키는 보기 드문 솜씨의 영화다. 그만큼 영화의 진의를 향해 나아가는 매 순간순간은 재미있고 사랑스러우며 귀엽고도 슬프고, 그 진의는 더더욱 재미있고 사랑스러우며 귀엽고 또 무엇보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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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포스터의 분위기를 배신하듯 수강(강혜정)의 죽음으로 문을 연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머금고 얼어 죽은 수강의 죽음을 끝까지 부정하지 않은 채 자신의 집에서 감금생활을 해야 했던 병희(박희순)의 내레이션으로 회상을 플레이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다시 수강의 내레이션으로 영화를 뒤덮으면서 이들의 짧은 동거생활을 훑는다.

자살여행을 떠나지만 매번 실패한 병희가 드디어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맨 순간 시작된 둘의 만남은 이 아이러니만큼이나 기발한 코미디를 발휘한다. 극 초반부를 장식했던 수강의 죽음조차 금세 잊힐 만큼 영화가 건네는 웃음의 강도는 상당하다. 그러나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농익은 코미디가 드라마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과정에 있어서도 전혀 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만큼 능숙한 코미디를 선보이기 시작해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아버린 인생을 다시 한걸음 전진시키기까지 주연 박희순과 강혜정의 연기는 놀랍도록 다양하며 또 매순간 기묘할 만큼 정확히 들어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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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실패작’이라 일컫는 루저들이 서로를 통해 자신을 더듬는 뻔한 수순 안에서도 역동적으로 꿈틀대고 활개 치는 병희와 수강의 치유기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건 기적”이라는 슬픈 깨달음에 얽힌 그들의 아픈 기억에서 시작한다. 현관문을 늦게 열어주었기에 근처를 배회하던 탈영병에게 아내를 잃은 병희의 아픔은 그저 자신의 실수로 인해 아내를 잃었다는 일차적 고통에 머물지 않는다. 아내를 잃은 자괴감에 더해 언제라도 다시 한 번 총구를 맞닥뜨릴 것 같은 심리적 공포, 그리고 상처한 병희를 찾아와 자신들의 슬픔을 늘어놓다 끝내 돈을 요구하는 처제들까지……. 그러나 정말로 병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라 이런 모진 슬픔만 남겨놓고 떠난 아내가 사실 그날 밤 자신에게 할 이야기는 ‘내 뱃속에 있는 건 네 아이가 아니야’였다는 것이다. 죽음으로 꽁꽁 봉인된 터라 이제와서는 돌이키려야 돌이킬 수 없는 아내의 완벽한 배신은 병희의 인생을 나락으로 몰아넣는다. 그렇게 병희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그의 말대로 그는 실패작이고 불량품일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아내의 집기를 아무렇게나 마당에 내팽개친 병희의 집에 노숙자 행색의 소녀가 찾아온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이는 이 소녀. 사랑에 빠지면 사랑하는 걸 멈출 수 없었다는 수강의 과거는 스토커와 다를 바 없다. 같이 살 가족 한 명 없이 홀로 산자락에서 통학하며 학창생활을 한 그는 학교에서 ‘1등 미친년’ 취급당하는 자신을 단 한번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순수한 사랑에만 목을 맬 뿐이다. 그 사랑은 매번 지나치고 엉뚱했으며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그저 순수하기만 했던 수강은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도 ‘미친년’이란 소리를 들어야 한다. 춘천으로 그리고 서울로 남자를 뒤쫓던 수강은 온갖 직업을 다 섭렵하며 그의 주위를 맴돌다 감옥에 가길 여러 차례. 현재 그녀는 그저 냄새나는 노숙자일 따름이다. 이제 수강은 아무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의 말대로 정말 그녀는 실패작이고 불량품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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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패작과 실패작이 만나 그들이 기적이라 일컬었던 사랑이 다시금 깨어난다. 그 아픈 과정을 딛고 서로에게 이야기를 건넴으로써 다시금 세상사로 유입되는 그들의 새로운 이야기는 단지 아름답다거나 단지 아름답게 포장되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뼈저린 아픔을 일상의 한가운데로 몰아감으로써 상처받고 치유 받는 그들의 모습이 어쩌면 그 누군가에게는 가장 아름다울 수도 있음을 나지막이 읊조릴 뿐이다. 인물을 포착하는 다양한 카메라 구도 또한 인물의 심리상태와 정확히 어우러지며 이 역시 아름다운 미장센을 위한 치기어린 연출에 머무는 법이 없다. 근래 한국영화 중 보기 드문 진한 서정성으로 무장한 <우리 집에 왜 왔니>는 전형적인 수순 안에서도 다양한 장르를 섬세하게 배치해 특별한 자리로 올라서는 영화다. 상처받은 영혼들의 자기치유기는 이렇게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아로새긴다. 강상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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