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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대한 복종> - 귀를 기울이며

CULTURE ON 2009/04/23 15:16 Posted by 농촌총각


소설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의 여주인공 한나는 나치 전범으로 나온다. 온 몸, 인생을 걸고 한나를 사랑했던 소년 미하엘. 그는 우연히 재판장에서 한나를 다시 만난다. 아무 말 없이 떠난 그녀를 다시 만나는 그곳이 하필이면 재판장이라니. 한없이 따뜻하기만 했던 그녀는 참혹한 학살의 현장인 수용소에 감시원이 되었다. 순수한 기억에서 멈춘 미하엘은 눈앞에 서 벌어지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충격이다. 하지만 사랑은 그리 쉽게 멈추지 않고, 둘의 교감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복잡하다. 다시 그녀를 그리워하는 소년의 마음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한나였다면. 만약 나치가 나에게 학살을 도우라고 강요했다면 나는 어땠을까. 지금 같아서야 정의감에 불타 단칼에 거부할 것 같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괜찮아.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까 고민하지 말고 해. 그 무엇 하나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역사를 보더라도 그 결정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으리라. 만약 그랬다면 나치 학살이나 광주에서의 끔찍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지.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었다.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30년 전에 쓴 <권위에 대한 복종>. 검은 배경에 위압적으로 나를 지목하는 거대한 손.

<권위에 대한 복종>은 누구나 거북해하지만, 누구나 하고 있는 복종에 대한 이야기이다. 학교에서 배우길 인간은 분명 합리적인 동물인데 우리는 나라, 집단 등이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목격한다. 왜 인간은 권위 앞에서 무기력해질까. 저항은 언제나 힘든 것일까. 복종이 애초 그런 것이라는 답은 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저자는 답을 찾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한다. 먼저 ‘처벌과 학습’이라는 주제로 실험을 한다고 실험 참가자들을 모은다. 참가자는 질문자와 학습자로 나뉘어 질문을 묻고 답한다. 그런데 학습자가 답을 하지 못했을 때 질문자는 전기 충격을 가한다. 질문자가 망설이면 감시자는 질문자가 실험을 지속하게 한다. 결과? 많은 학습자가 450볼트의 전기 충격을 받게 된다.


사실 이건 트릭이다. 저자가 진짜 실험하고자 했던 주제는 ‘처벌과 학습’이 아닌 ‘권위와 복종’이다. 학습자(희생자)에게 가해지는 전기 충격은 없으며, 그는 단지 충격을 받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질문자(피험자)가 언제까지 실험을 지속하는가이다. 학습자가 고통에 몸부림을 치는 것은 보면서도 질문자가 언제까지 감시자(실험자)의 명령에 따를까. 놀랍게도, 조건과 상황에 따라 변화하기는 하지만, 많은 질문자가 450볼트까지 실험을 지속했다. 울부짖고, 심지어 기절하는 연기를 리얼하게 펼치는데도 말이다. 감시자에 대한 복종이다.

흥미로운 것은, 실험 전에는 많은 참가자들이 그런 상황에 처할 경우 실험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자신은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이게 일상을 사는 우리의 모습 아닐까.) 하지만 결과가 말해주듯 그들은 권위에 복종한다. 물론 이것이 ‘학습과 처벌’을 주제로 하고, ‘전기 충격이 신체에 장기적인 상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약속을 저버린 채, 눈앞에 보이는 타인의 고통 보다 권위에의 복종을 선택했다.

스탠리 밀그램 교수는 실험을 통해 ‘인간이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은 내재된 폭력성에 기인한다’는 견해를 뒤집는다. 구조적인 폭력은 인간의 내재된 폭력성이 아닌 강력한 권위에서 온다는 것이다. 효율적으로 진화하기 위해 사회적 약속을 맺고, 스스로 권위에 복종을 택하는 인간의 비극적 운명. 이때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동정하는 것 같은 양심이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특정한 상황이 발생하면 양심은 가슴 깊은 곳으로 침전하고, 권위에의 복종이 앞서게 된다. ‘이것은 내 의지가 아니야’라고 하면서 개인적인 책임과 자율적 인간을 포기한다.

1974년 이 책이 처음 출간됐을 때, 사람들은 동요했다고 한다. 무분별한 복종이 부르는 폭력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비판도 받았다. 실험 대상이 한정돼 있고,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기에는 정밀하지 못한 실험이라는 것. 하지만 저자의 실험과 유사한 현상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걸 보면, 그의 논리가 일정부분 타당한 것 같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내가 언제 양심을 버리고 권위에 복종했을까. 답을 내기가 쉽지 않다. 만약 그랬다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책을 덮고 한참을 생각했다. 이미 성인이 된 나는 누구의 말을 듣고 있을까. 부모의 가르침? 학교에서 배운 지식들? 사랑과 평화를 말하는 종교인들? 도서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철학자들? 아니면, 쉴 새 없이 오감을 자극하는 자본주의 마케팅의 결과물들? 순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졌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강요하는 것이 아닌, 순도 100% 내 마음의 말. 위안이 되는 건, 하루에 한 번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 행복을 틔우기 위한 씨앗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문득 그대가 궁금하다. 그대 행복하시길. 안효원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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