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베이스 연주자 모그(MOWG)의 공연장. 가끔 뜬눈으로 어슴푸레한 새벽을 맞을 때마다 달짝지근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꺼내듣던 음악이 지금 바로 내 눈앞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아아, 몸속의 아드레날린이 서서히 끓어오르는 이 흥분! 더욱이 지금은, 지난 12월 발표한 3집 <Nite’s Secret>의 일렉트로닉 음악을 내리 몇 곡 연주한 후다. 무대 뒤 스크린을 장식한 뉴욕 풍경을 따라 감각적인 비트와 뜨거운 연주가 쉴 새 없이 불을 뿜었다. 관객들은 당장 한 손에 샴페인 잔을 들고 이 세상에서 가장 세련된 도시인이라도 된 것 마냥 음악에 맞춰 어깨를 흔들고픈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초대받지 않은 들러리
그 순간 모그가 입을 열었다. “다음 곡은 3집에 수록된 ‘Can U Hear Me?’.” 좋아 좋아. 이 기세를 계속 몰아가는 거야. 이봐, 디제이, 음악을 멈추지 말라고. 그런데 모그의 말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이 노래는 친구가 죽기 전 녹음해 놓은 멜로디를 가지고 만든 곡입니다.” 으응? 그리고 이어지는 애잔한 피아노 선율. 그리고 달곰쌉쌀한 비트와 드럼이 차례차례 목소리를 드러냈다. 관객석 중앙에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는 몇몇 관객—한눈에 그들이 패션모델임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유달리 길쭉하고 훤칠한 관객들—을 보고 대충 감을 잡은 찰나, 아니나 다를까 스크린에 고 이언의 모습이 비쳤다. 감정이 북받쳤는지 베이스를 연주하는 모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관객들의 심장을 달궜던 공연장의 열기는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건 ‘Can U Hear Me?’의 서정적인 멜로디 때문만은 아니었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슬픔을 억누르며 고인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모그와 그 친구들 옆에서 관객들은 갑자기 역할을 잃었다. 지금 이 순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거지? 모그의 친구들을 따라 눈물을 흘려야 하는 건지, 그저 ‘Can U Hear Me?’의 나른한 가락을 즐겨야 하는 건지 난감하기만 했다. 환한 미소로 열심히 박수만 치면 되는 결혼식 들러리도 아니고 신나는 공연 중간에 펼쳐진 난데없는 추모식의 들러리라니. 그것도 초대받지 않은 들러리.
그렇게 ‘Can U Hear Me?’가 끝났다. 모그 자신도 좀 어색했는지 한껏 띄워 놓은 분위기가 다 가라앉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음악은 계속됐다. 스크린을 수놓는 영상은 여전히 감각적이었고 음악은 리드미컬했다. 하지만 공연 초반 느꼈던 흥분은 쉽사리 되살아나지 않았다. ‘초대받지 않은 들러리’에서 다시 ‘초대받은 관객’으로 돌아오기는 어려웠다. 공연이 끝났는데도 찜찜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디자이너의 고집
며칠 뒤,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On Style)의 마지막 회가 방영됐다. 최종 우승 후보에 오른 세 도전자 이우경, 남용섭, 최혜정의 패션쇼가 끝나고 우승자 발표를 앞둔 상황. 심사위원들이 평가의 시간을 가졌다. 이우경의 컬렉션에 관해서는 하나의 색, 하나의 직물, 하나의 장식이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리본 디테일의 변주만으로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실루엣을 훌륭하게 그려낸 패션쇼였다는 데 평이 모아졌다. 월간지 <ELLE KOREA>의 신유진 편집장은 그것을 “뚝심”이라고 표현했다. 결국 이유경은 이날의 우승자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패션 디자이너 정욱준이 한마디를 더했다. 이유경의 고집스런 디자인이 자칫 고객에게 디자이너의 패션을 강요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하면서 스스로도 디자이너로 일할수록 주관이 아닌 객관으로 옷에 접근할 필요를 느낀다는 말이었다.
예술가의 주관과 객관
예술가의 주관과 객관. 그것은 쉽게 말해서 관객, 독자 혹은 청자에게 친절한가, 불친절한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술가에게 주관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것은 그의 예술이 원천이자 그의 예술을 규정하는 색이다. ‘Can U Hear Me?’와 모그가 고 이언을 그리는 마음은, 이유경의 패션과 그의 고집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고 이언으로부터 ‘Can U Hear Me?’의 애틋한 멜로디가 생겨났고 이유경의 고집으로부터 비로소 그의 패션이 움텄다.
하지만 예술은 예술가의 것인 동시에 전적으로 관객, 독자 혹은 청자의 것이기도 하다. 모그가 ‘Can U Hear Me?’를 연주할 때마다 고 이언 생각에 가슴이 아려온다 할지라도 정작 그 음악은 듣는 이에 따라 즐거운 사랑 노래로 기억될 수 있다. 이유경이 바지로 디자인한 옷을 누군가는 목도리처럼 목에 두르고 다닐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럴 때 예술은 예술가로부터 떨어져 하나의 독립된 몸뚱이를 갖는다.
그렇다. 내가 모그의 공연장에서 ‘초대받지 않은 들러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 건 ‘Can U Hear Me?’를 그것을 만든 예술가와 상관없이 온전히 ‘내 것’처럼 즐길 권리를 순식간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나는 ‘Can U Hear Me?’를 통해 예술가의 슬픔을 강요당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예술가가 그 노래에 담은 슬픔을 거부했기에 나는 그 자리에서 초대장을 빼앗겼다.
자신의 주관에 솔직하지만 관객에게 그것을 강요하지 않는 품 넓은 예술가. 그 철인의 경지. 그 경지에 도달하는 게 어디 그리 쉽겠는가. 여기 예술가의 손에 주관과 객관의 실타래가 어지럽게 얽혀있다. 예술가는 어느 매듭 하나 함부로 잘라 버릴 수가 없다. 앞으로 오랜 시간 꼬인 실을 조심스레 하나하나 풀어가는 수밖에. 장성란 기자 (FILMON)
소규모 공연 100명 ~ 300명 정도의 공연장 중 가장 시설과 장비들이 괜찮은 공연장은 어느 곳일까요? 유명가수부터 라디오방송의 공개녹음 현장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리사이틀, 팬미팅등의 장소로도 사용되는 곳이 바로 홍대의 상상마당 공연장입니다. 상상마당은 KT&G가 문화와 문화를 향유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복합 문화공간인데 사진, 만화,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분야를 지원하고 예술가를 키워내고 있습니다. 상상마당의 공연장에 가본 적이 있..
고 이언님.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커프프린스에서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그립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추모를 하고 그리워해주는 분들이 있으니
좋긴 하지만....
'모그' 음악 좋죠.
저도 가끔 연주가들의 공연장에 들르면
간혹 추모 연주를 하기도 하더라구요.
그럴 땐 정말 그 음악을 듣던 나의 온전한 감성은 어디로 가버리는 건지...
화가는 자신의 세계를 작품으로 표현하지만, 그 작품이 전시장에 걸린 순간부터는 자신의 작품에 더 이상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감상자들이 느끼거나 이해한 작품이 화가의 애초 의도와 다르다 하더라도, 그것을 '바로잡을 권리' 따위는 화가에게 없는 거죠. 말씀하신대로 자신이 곡을 만들 때의 의도가 그 친구를 추모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걸 공연장에서 펼쳐보이고 청자들에게 그걸 설명하는 것은 청자의 권리를 뺏는 것이 된다고 봐요. 공연장을 찾은 관객에게 그 음악을 '각자 나름대로' 즐길 권리를 뺏으면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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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언님.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2009/04/27 10:11커프프린스에서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그립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추모를 하고 그리워해주는 분들이 있으니
좋긴 하지만....
'모그' 음악 좋죠.
저도 가끔 연주가들의 공연장에 들르면
간혹 추모 연주를 하기도 하더라구요.
그럴 땐 정말 그 음악을 듣던 나의 온전한 감성은 어디로 가버리는 건지...
하지만 연주자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뭐 그냥 그러려니 해요.
고 이언님은 제가 좋아했던 배우이자 모델이니..뭐^^
저도 가끔 들어요.
화가는 자신의 세계를 작품으로 표현하지만, 그 작품이 전시장에 걸린 순간부터는 자신의 작품에 더 이상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감상자들이 느끼거나 이해한 작품이 화가의 애초 의도와 다르다 하더라도, 그것을 '바로잡을 권리' 따위는 화가에게 없는 거죠. 말씀하신대로 자신이 곡을 만들 때의 의도가 그 친구를 추모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걸 공연장에서 펼쳐보이고 청자들에게 그걸 설명하는 것은 청자의 권리를 뺏는 것이 된다고 봐요. 공연장을 찾은 관객에게 그 음악을 '각자 나름대로' 즐길 권리를 뺏으면 안되죠.
2009/04/27 17:33저도 가끔 들어요.
2011/06/15 17:27그는 정말 좋은.
2011/08/29 12:54그들은 내가 그들을 본 최고의 공연입니다
2012/02/10 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