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신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홍상수’라는 이름 그대로의 영화문법을 따르는 ‘홍상수 장르’의 홍상수 영화다. 기승전결의 일반적인 방식을 거스르는 퉁명스러운 서사, 기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연출, 특유의 손글씨 자막, 단조로운 음악의 연속 배치, 영화적 세련미를 무시하며 엉뚱하게 접근하는 클로즈업, 갑작스레 화면 안을 채우는 작은 동물들, 그리고 촬영 당일 배부되어 배우들을 당황시키는 쪽대본 시나리오 등 홍상수 영화를 상징하는 낯익은 요소들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등장해 홍상수 장르의 건재함을 알린다.
예술영화감독 구경남(김태우)의 제천행 이야기와 이어지는 제주행 이야기는 묘한 대구를 이루며 (역시나 이번에도) 위선과 권력, 자기과시와 속물성에 관한 다른 듯 같은 이야기를 펼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 제천과 제주에서 연이어 ‘악업’을 쌓게 되는 경남의 여행기는 여전히 정제되지 않은 대사를 축으로 각자가 지닌 엉뚱한 자존의 감정들을 헤집으며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캐릭터 각자의 욕망을 속속들이 드러낸다. 특히 홍상수 영화답게 끝도 없이 반복되는 듯한 술자리 장면은 <밤과 낮>에서도 선보인 바 있는 ‘팔씨름’이라는 하찮은 자기과시 소재를 다시금 활용하는 등 또 한번 누구나의 기억 속에 잠재된 그 옛날 그 부끄러움을 환기시키는 주 무대로 활용된다. 잔뜩 술을 마시는 동안 부러 현학적인 체 하는 형이상학적 대사들, 그리고 그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자 사이에서 이뤄지는 위선과 자기과시의 상호교환과정 역시 술자리 밖 맨 정신으로 그들을 관조하던 관객들이 지금까지 그의 영화를 보며 느껴오던 그대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캐릭터들이 맞부딪치며 발하는 민망하고 부끄러운 행동을 누구나의 기억과 합치시키는 유일무이한 마력을 다시 한 번 과시한다. 수위 높은 노출신이나 폭력신조차 없으면서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일부러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신청했다는 홍상수 감독이 말하듯 이 영화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사람에게 적합한 영화”인 동시에 그야말로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사람이면 누구나 각자의 낯부끄러운 기억을 환기하며 킥킥댈 수 있는 유머들로 그득하다. 물론 그 유머는 별다른 게 아니다. “나이 어린 사람을 무시하는 건 아니고요. 삶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요”라며 ‘어른 영화’의 변을 대신하는 그의 말마따나 그저 속물을 보고 비웃는 속물들의 세상을 향해 왕초 속물이 던지는 ‘진짜’ 이야기일 뿐이다.
출연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노 개런티로 응한 것으로 화제가 됐던 영화지만 김태우, 고현정, 엄지원, 하정우, 정유미, 공형진, 유준상 등은 절대로 카메오 식의 깜짝 출연에 그치지 않는다. 충분한 비중으로 영화 곳곳을 장악하는 이들이야말로 이 영화의 유일한 성장점으로, 그 이름값만큼 가장 날것의 영화가 무엇인지를 톡톡히 보여주는 이들의 ‘연기하지 않는 연기’는 여전히 홍상수 영화의 가장 이질적이고도 특별한 줄기를 이룬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이제껏 홍상수가 이뤄온 그대로다. 특별히 모자란 것도 더 나아진 것도 없다. 어떠한 새로운 모험이나 개혁도 가미되지 않은 채 홍상수라는 이름에 ‘안주’하는 영화는 남녀를 두고 벌어지는 위선과 마치 그것만으로 이뤄진 듯한 세상을 묘사하는 데에 매진할 뿐이다. 자기가 실제로 가본 곳, 겪어본 사람 등 “절대로 가까운 이야기”만을 영화로 만들고 있다는 그의 말처럼 영화는 여전히 일상성으로 가득 차 있고 그 일상성은 여전히 별다른 기교 없이 파편적으로 영화를 메울 뿐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렇듯 나아진 것도 변한 것도 없이 또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알고 보면 같은 이야기라는 사실이 그렇게나 반갑다. 냉소와 역설과 낯부끄러운 기억들로 가득한 그의 새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그렇게 ‘여전함’을 과시한다. 그리고 그 여전하다는 사실은 이렇게나 매력적이다.
강상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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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CGV에서 홍감독님도 뵙고 영화도 최고였습니다^^
2009/04/28 13:01아, 이 영화 정말 궁금하더군요 :-D 극장수는 얼마 안 되겠지만.
2009/04/28 1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