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가지 폭력적인 영화가 있다. 하나는 관객으로 하여금 웃기를 강요하는 영화, 또 다른 하나는 관객으로 하여금 울기를 지겹도록 강요하는 영화다. 이런 두 종류의 폭력영화(?)가 관객에게 가하는 ‘폭력성’은 일찌감치 재단 당한 바 있어 전자는 명민하지 못한 삼류 코미디로 외면당하기 일쑤였고, 후자는 ‘신파’라는 이름의 구식 최루제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영화는, 특히 코미디는 이 두 가지의 폭력성을 조합하는 것이 흥행과 직결된다고 믿는 어리석은 믿음이 팽배해 있었다. 그 중심이자 시발점이었던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는 분명 그러한 믿음을 신봉케 하기에 충분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엽기적 기운 농후한 코미디마저 눈물 몇 방울을 첨가함으로써 마침내 진미가 완성된다 여겼던 이 문제적 레시피는 분명 오래토록 지속될 수 있는 ‘법칙’은 아니었다. 곽재용 감독의 일본 진출작인 동시에 <엽기적인 그녀>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에 이은 ‘그녀’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기도 한 <싸이보그 그녀>는 <엽기적인 그녀>에만 적용됐던 일회성 예외 법칙을 다시금 뒤쫓은 영화로 웃음과 눈물의 동시 강요 원투펀치를 처연할 만큼 현란하고 진지하게 구현한다.
100년 후 미래에서 온 사이보그 그녀(아야세 하루카)와 평범한 대학생 지로(코이데 케이스케)의 만남으로도 쉽게 예상할 수 있듯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커플의 만남, 상식이나 현대적 감각을 부분 상실한 엽기 캐릭터의 활약은 그저 수많은 해프닝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러닝타임을 빼곡히 채울 만하다. 물론 곽재용 감독은 이 영화를 “단순히 로맨틱코미디 장르로 평가받길 원치 않는다”고 수차례 강조했지만, 사이보그나 시간여행이라는 SF 설정에 시간을 뛰어넘는 로맨스, 재난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뭉뚱그려진 <싸이보그 그녀>도 결국 엽기적인 캐릭터와 설정으로 인해 발생할 에피소드 범람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는 심지어 <엽기적인 그녀>의 몇몇 부분을 고스란히 재연한 듯한 장면들로 이러한 의심을 더욱 부채질한다. 다시금 디스코텍에서 춤을 추다 만인에 둘러싸여 주목받는 그녀, 술 취해 일어나는 그녀의 해프닝 등의 부분적인 시퀀스는 말할 것도 없고, 괴팍한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는 주인공이 사랑을 느끼다 자그마한 갈등으로 헤어지고 재회하며 마침내 사랑을 이루는 개개의 과정 역시 진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눈에서 빔을 뿜는 괴력의 여자 사이보그로 분한 아야세 하루카의 능청맞은 사이보그 연기가 상당 부분 SF라는 새로운 발판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장르적 클리셰를 조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치 복합장르임을 과시하기 위해 괜한 스펙터클을 뽐내는 영화의 목적은 너무나도 분명하다(물론 복합장르가 영화적으로 상위 클래스라는 주장은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일 뿐). 끝도 없이 이어지고 또 마음만 먹는다면 이 시트콤의 면밀한 조합만으로 꽤 괜찮은 로맨틱코미디를 주조할 수 있었을 영화는 가슴 아픈 로맨스(중요한 건 여기서 꼭 가슴이 아파야 한다는 거다)에 대재난과 시간여행이라는 각기 다른 재료를 뒤섞는 과정 속에서 널을 뛰는 주인공 지로의 감정을 제어하는 데는 완전히 실패하고 만다. 또한 지로의 고향을 찾아가는 시간여행에 과도한 비중을 두는 등 음악도 과잉, 이미지도 과잉, 감정도 과잉인 몇몇 시퀀스는 오히려 미래의 늙은 지로가 과거의 후회를 만회하기 위한 각 장면의 분명한 목적성마저 완전히 상실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렇듯 영화는 엽기적인 사이보그 캐릭터를 등장시킴으로써 그 어떤 이야기도 가능할 수 있었던 설정처럼 하나의 구조를 가진 완성물이라기보다는 그저 장면장면이나 에피소드들의 의미 없는 조합에 더 가깝다.
수많은 장르적 장치들이 순차적으로 등장하다 마침내 감독 스스로 “감동적인 장면”이라 명명한 후반부 대재난에 들어서기까지의 러닝타임 100분 안에는 그야말로 다채로운 장르영화적 클리셰들이 그득하다. 또한 파편화된 각각의 장르들이 가져다주는 느낌 역시 무척이나 직접적이다. 이를테면 영화는 매순간 웃기지? 웃기지? 하고 말을 걸어오다가 어느 순간에는 슬프지? 슬프지? 하며 힘겹게 몰아세운다. <싸이보그 그녀>는 다양한 장르적 재미를 충실히 가져가기보다는 애초부터 슬픈 로맨스를 (관객의 시선과는 전혀 상관없이) 숙연하게 다루기 위한 슬픈 구석들을 만드는 데에만 목적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복합장르라고 우긴들, 또 아무리 세 번째 ‘그녀’ 시리즈와 무관하다 한들 <싸이보그 그녀>는 그저 다른 버전의 <엽기적인 그녀>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이 레시피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일회용 아이템에 천착하는 것을 일컬어 그 누구도 작가주의라 부르지 않는다. <싸이보그 그녀>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면밀한 자기반성을 필요로 하는 영화다. 강상준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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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재미있게봤습니다 뭐를 억지웃음과 억지 울음을 유발시킨다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기자분이 그렇게 생각하시면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고 생각하시는거 같아 뭔가 느낌이 안좋군요
2009/05/05 15:17물론 구성의 느슨함의 문제는 분명가지고 있지만 대중영화는 대중의 잣대로 판단을 해야된다 생각합니다. 너무 장르적 문제를 끌고 들어 오셨네요.
2009/05/14 1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