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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뉴저지 퍼세이익의 빈민촌. ‘비 카인드 리와인드(Be Kind Rewind, ‘되감기는 친절히’라는 뜻)’라는 이름의 비디오 대여점이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허름한 건물 귀퉁이에 기세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대체 비디오테이프를 되감지 않은 채로 반납하는 손님이 얼마나 싫었으면 ‘되감기는 친절히’란 이름을 붙였을까.


사실 비디오 대여점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는 일은 그리 귀찮은 일이 아니다. 웬만한 비디오 대여점의 반납대에는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는 기기 한두 대쯤 설치돼 있기 마련. 5분도 안 돼서 비디오테이프가 뚝딱 되감아져 나온다.

정작 비디오 대여점에서 가장 싫어하는 손님은 따로 있다. 한 편 당 비디오테이프를 열 몇 개씩 들여놓은 신작에는 눈길 한번 안 주고 듣도 보도 못한 옛날 영화를 찾아달라는 손님이 대표적. 그런 영화 없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그런 손님 대부분이 포기를 모르고 고전 영화 코너에 가서 몇 시간씩 눈이 빠져라 비디오를 찾는다. 이런 손님을 보고 있자면 ‘되감기는 친절히’가 아니라 ‘웬만하면 신작을’로 대여점 이름을 바꾸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현재 비디오 대여점 아르바이트 중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나는 현재 서울 모 대학가의 비디오・도서 대여점에서 부업을 하는 중이다. 프리랜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동네 대여점에 아르바이트 자리가 났다. 일주일에도 수차례 밤낮이 바뀌는 불규칙한 생활을 정리해 볼 요량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대여점 아르바이트는 언젠가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였다. 한가하게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 좋은 데다 대여점에 있는 비디오, DVD, 책은 전부 공짜가 아닌가!

그러나 장담하건대 이 세상에서 돈 받고 하는 일 중에 그렇게 쉬운 일은 단 하나도 없다. 언뜻 생각하기로 가만히 계산대를 지키면서 한가로이 책을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워낙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은 동네라 수시로 줄을 서는 손님들 상대하랴, 열 몇 권씩 빌려가는 만화책을 각 권마다 바코드 찍어서 대여 처리하랴, 반납대에 수시로 쌓이는 비디오테이프, DVD, 책을 회수 처리해 제자리에 갖다 꽂으랴 정신이 없다. 처음 며칠 동안에는 비디오테이프, DVD, 책이 꽂혀 있는 순서와 대여점 컴퓨터 프로그램의 그 많은 기능키를 외우느라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또 별별 손님이 별 걸 다 물어본다.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2008) DVD를 빌려간 손님이 몇 시간 뒤 전화해 끝까지 봐도 영화가 결말이 안 난다, DVD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니냐고 묻기도 하고(총 3부작으로 기획된 <적벽대전>은 2부 <적벽대전 2: 최후의 결전>(2009)까지 극장 개봉을 마친 상태. 현재 3부가 제작 중이다), 영화를 두 편 골라 와서 어느 영화가 더 재미있느냐고 묻기도 한다(이럴 때는 둘 다 안 봐서 모르겠다고 하는 게 가장 현명하다. 사람의 취향이란 쉽게 짐작할 수 없는 것이란 사실을 몇 번의 값진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 중에서 하루에 수십 번 씩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이 영화 비디오는 없어요?”다.

비디오테이프 시대의 종말

바야흐로 비디오테이프의 시대는 가고 DVD의 시대가 열렸다.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여점에서도 점차 비디오테이프를 들여놓지 않고, 그나마 있던 비디오테이프도 조금씩 정리하는 추세다. 영화사에서 아예 비디오를 출시하지 않는 경우도 늘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열심히 비디오로 영화를 보던 손님들은 대여점에 왔다가 고를 영화가 없어 울상을 짓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사장님이 나서서 가게 한쪽 구석에서 판매 중인 DVD 플레이어를 사라고 권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DVD 플레이어를 뜯어보는 중장년층 손님들의 얼굴에 서운한 표정이 길게 걸린다.

21세기가 비디오에서 DVD로 갈아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컬러 텔레비전이 나온 뒤로 흑백 텔레비전이 고물상으로 팔려나갔듯 얼마 안 가 비디오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비디오로 보나 DVD로 보나 어차피 영화를 보는 건 매한가지다. 하지만 비디오를 버리고 DVD를 받아들이는 일은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보던 때의 기억을 버리고 DVD에 담긴 은빛의 새로운 감성을 받아들이는 차원의 문제다. 흑백 텔레비전이 사라지면서 동네 사람들이 흑백 텔레비전 앞에 모여 숨을 죽이고 인류가 달에 첫 발을 내딛는 장면과 김일의 레슬링 경기를 지켜보던 풍경 역시 자취를 감춘 것처럼 이제 비디오도 아련한 옛 추억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바로 그 비디오 시대의 감수성을 되감는 영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건물 한 귀퉁이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버텨 온 ‘비 카인드 리와인드’ 비디오 대여점이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대여점이 자리한 건물이 퍼세이익시가 진행하는 빈민가 재건축 사업 구역으로 지정된 것. 시에서는 시세에 맞는 곳으로 이주시켜주겠다고 하지만 플레처(대니 글로버)는 떠날 마음이 없다. 지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비로 재건축 규정에 맞게 건물을 수리해야 하는데 하루에 몇 달러 건지는 장사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안 그래도 걱정이 태산인데 대여점의 종업원 마이크(모스 데프)와 그의 친구 제리(잭 블랙)는 플레처가 가게를 비운 사이 어마어마한 사고를 친다. 제리가 겪은 감전 사고의 여파로 대여점의 모든 비디오테이프가 지워지자 두 사람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20분짜리 리메이크 영상을 만든다. 그러나 이것이 예상 밖의 인기를 끌면서 ‘비 카인드 리와인드’ 비디오 대여점은 실로 오랜만에 손님들로 바글거린다. 마이크와 제리 그리고 동네 세탁소의 엘마(멜로니 디아즈)는 이것을 이용해 정해진 기한 내에 건물 수리비를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영화의 길이를 줄이는 대신 손님들을 직접 출연시켜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리메이크 영화를 더 많이 만들어 대여하자는 데 뜻을 모은 세 사람. 이로써 동네 사람 전체가 ‘비 카인드 리와인드’의 영화 찍기 놀이에 동참하게 된다.

애초의 영화가 가지고 있던 순수한 열정

일대 소란 속에서 <고스트 버스터즈>(1984), <러시 아워 2>(2001), <로보캅>(1987), <라이온 킹>(1994)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1989) 등등이 리메이크된다. 영화 속 한 장면을 차지한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 그 속에서 비디오와 디브이디에 대한 시대적 고민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스러져 가는 비디오 시대의 쓸쓸한 풍경으로부터 애초에 영화 예술이 가지고 있던 순수한 기쁨과 쾌락을 건져 올린다.

자신의 모습이 영화에 나오는 걸 재밌어하는 사람들. 이들은 <열차의 도착>(1895)을 보고 열차가 스크린을 뚫고 나온다고 생각해 극장을 뛰쳐나갔던 인류 최초의 영화 관객들과 다를 바가 없다. 더욱이 이들은 다함께 영화를 만드는 동시에 또한 다함께 그것을 즐긴다. 이들에게는 영화를 찍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경계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같은 거대한 산업의 논리가 끼어들 틈이 없다. 이들의 모습에 호기심에 캠코더를 만지작거리는 열 살짜리 주근깨 소년, 동아리 친구들을 불러다 자기들끼리 만든 영화의 시사회를 갖는 영화 동아리 학생들의 얼굴이 겹쳐진다. 그 얼굴들에는 공통적으로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깃들어 있다.


그것은 ‘비 카인드 리와인드’의 리메이크 영화에 등장하는 마분지 자동차 모형이나 인간 파이프 오르간처럼 엉성하고 서투른 것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아기자기하고 즐거운 것이다. 이미 <수면의 과학>(2005)에서 손으로 오리고 뜯고 꿰매고 붙이는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바 있는 미셸 공드리 감독은 이번에도 물 만난 고기처럼 놀라운 실력을 선보인다. 마이크, 제리, 알마가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을 가지고 원작의 유명한 장면을 리메이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름다운 거짓, 진실한 꿈

그러나 결국 이들의 영화는 현실을 이기지 못한다. ‘비 카인드 리와인드’의 리메이크 영화는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압류, 파기된다. 이로써 건물 수리비 마련이 어려워지자 마이크는 그곳이 유명 재즈 뮤지션 토마스 팻츠 월러의 생가라는 점을 이용해 건물을 지키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입버릇처럼 토마스 팻츠 월러의 이름을 말하던 플레처는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그곳에서 토마스 팻츠 월러가 태어났다는 것은 처음부터 자신이 지어낸 거짓말이었으므로.  


그러나 사람들은 이에 굴하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은 힘을 합쳐 토마스 팻츠 월러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거짓을 진실로 바꿔낸다. 이들이 만든 토마스 팻츠 월러에 대한 영화는 퍼세이익의 빈민촌에 아름다운 거짓, 진실한 꿈을 선물한다. 그렇게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21세기 DVD 시대에 영화의 태초적 가치를 회상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영화가 건물의 철거를 막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철거 직전, ‘비 카인드 리와인드’ 대여점에 모여 다함께 만든 영화를 감상하는 그 따뜻한 마음은 행인들로 하여금 외벽에 비친 영상에 멈춰 서서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도록 만든다. 영화의 진심은 가난하지만 결코 초라하지 않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말한다. DVD의 시대가 가고 또 다른 어떤 시대가 오더라도 우리가 영화에 대해 잊지 않고 되감고 되감아야 할 진실은 오직 그것 하나뿐이라는 것을.

영화를 보고 나니 내가 비디오 대여점에서 일한다는 게—비록 이제 비디오테이프는 몇 개 없지만—더없이 뿌듯하게 느껴진다. 만약 오늘 영화를 추천해달라는 손님이 있으면 위험(?)을 무릅쓰고 조심스럽게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추천해야겠다. 내게 그러했듯 이 영화가 그 손님에게 떨리는 손으로 처음 비디오테이프를 틀던 때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길 기대하면서.  장성란 기자 (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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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zinsayascope.com BlogIcon 진사야  수정/삭제  댓글쓰기

    엥, 영화 배경이 퍼세이익 카운티에요? 여기 이야기 오랜만에 듣네요 ;-)
    안 그래도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봐야겠다 했는데, 이 글 찬찬히 읽어 보구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2009/05/02 13:11
    • Favicon of http://whispersweetnothings.tistory.com BlogIcon 이실직고  수정/삭제

      네. 저도 DVD 출시된 기념으로 영화 다시 보다가 배경이 퍼세이익 카운티라는 걸 알았어요.
      처음에 나오더라고요.
      히힛, 이 영화 진사야님이 기필코 좋아하실 거예요.
      아차차, 섣불리 취향을 짐작하는 건 위험한 일인데...^-^;
      좋아하시길 빌어요!

      2009/05/05 14:45
  2. Favicon of http://wonhyde.tistory.com BlogIcon 잿빛영혼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 참 좋았죠.
    유쾌하고 따스하고, 끝에는 따뜻한 감동까지.
    영화에 대한 애정을 다시금 확인하고 떠올려보게되는 영화였어요.
    명작은 아니지만 정말 소중한 영화랄까.

    2009/05/03 10:08
  3. Favicon of http://830324.com BlogIcon 디노  수정/삭제  댓글쓰기

    첨앤 잭블랙이 출연하고 미셀 공드리 작품이라서 봤는데...
    너무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봤어요.

    2009/05/0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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