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크로우스럽다’
‘러셀 크로우스럽다’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러셀 크로우스럽다
[형용사] (주로 ‘러셀 크로우스러운 인물’, ‘러셀 크로우스러운 캐릭터’의 꼴로 쓰여) 영화배우 러셀 크로우가 영화에서 주로 연기하는 인물의 성질을 지닌다.
: 겉모습은 지저분하고 둔해 보이나 거침없는 성격, 굳센 뚝심, 비상한 기지를 발휘해 끝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다. (웬만해서는 거주지, 자가용, 사무실 등의 주변 환경을 정리 정돈하지 않으며, 인스턴트 음식이나 고칼로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심각한 복부 비만을 자랑한다. 대개 형사, 기자와 같이 사회정의를 수호하는 직업에 종사한다. 제멋대로에 껄렁거리는 성격 때문에 괴짜 취급을 받지만 일에 있어서는 뛰어난 감각과 행동력을 지닌 전문가다. 교통질서와 같은 가벼운 법규를 어기기 일쑤고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각종 편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이 추구하는 신념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누구보다 정직하고 용감하다. 동료와의 의리를 중요시해 종종 직업적 양심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기도 하는데 결국 양심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 자동차 뒷좌석에 먹다 버린 과자 봉지가 굴러다닌다니 정말 러셀 크로우스럽다.
▶ <LA 컨피덴셜>(1997)에서 첫선을 보인 러셀 크로우스러운 캐릭터는 <글래디에이터>(2000), <뷰티풀 마인드>(2001),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2003) 등의 작품을 거쳐 마침내 <아메리칸 갱스터>(2007)를 통해 집대성되었다.
▶ <3: 10 투 유마>(2007)는 보기 드물게 악당으로 변신한 러셀 크로우스러운 캐릭터를 감상할 수 있는 영화다.
▶ 다른 할리우드 스타들 같지 않게 몸매 관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점이나 국제 전화가 안 된다는 이유로 호텔 직원에게 전화기를 집어던져 체포됐던 걸 보면 러셀 크로우는 평소에도 러셀 크로우스러운 사람인 것 같다.
<3: 10 투 유마>, <아메리칸 갱스터> 이후 러셀 크로우는 할리우드에서 <바디 오브 라이즈>(2008),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와 같은 범죄 드라마 장르에 출연해 계속해서 러셀 크로우스러운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 그러나 러셀 크로우스러운 캐릭터를 만나는 일은 결코 지겹지 않다. 그것은 각 영화가 탄탄한 이야기와 치밀한 구성, 팽팽한 연기대결의 삼박자를 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역시 또 한 번 러셀 크로우스러운 캐릭터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영화다.
스릴러적인, 너무나 스릴러적인
소매치기와 피자배달원의 총격 사건에 이어 또 한 명이 죽음을 맞는다. 국회의원 콜린스(벤 애플렉)의 수석 조사원 소냐(마리아 테이어)가 출근길에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것. 이 소식을 접한 콜린스가 국가 안보 용병 회사인 포인트 코프의 청문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소냐의 죽음을 언급하며 눈물을 보인다. 이에 언론은 콜린스와 소냐의 ‘부적절한 관계’를 파헤치는 데 열을 올린다. 칼과 콜린스, 콜린스의 부인 앤(숀 라이트 펜)은 대학 동창 사이. 칼은 콜린스와 앤의 친구로서 정치인의 스캔들 기사에 목마른 신문사로부터 친구 부부를 보호한다. 그 와중에 소매치기와 피자배달원의 총격 사건이 소냐의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를 포착한 그는 두 사건 모두 포인트 코프가 미국 국가 안보에 걸린 어마어마한 예산을 장악하고자 벌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편집장 카메론(헬렌 미렌)의 추천으로 신입 기자 델라(레이첼 맥아담스)와 특별조사팀을 꾸린 칼. 병원에 누워 있던 피자배달원까지 저격되자 칼과 델라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포인트 코프에 대한 조사를 계속한다.
스릴러답게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의 줄거리는 꼬이고 꼬였다.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는 원래 총 6시간에 달하는 BBC의 동명 TV 시리즈를 각색한 영화다. 그러나 원작으로부터 사라진 4시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원작을 효율적으로 축약했다는 이야기다. 그 덕에 속도와 긴장은 배가 됐다.
스릴러에서는 언제나 사건의 정황이 하나의 사실로 모아지다가도 금세 앞의 사실을 뒤엎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 모든 반전을 종합해 하나의 거대한 진실을 그려가는 지능적인 추리 과정이야말로 스릴러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관객은 지적인 유희를 즐기는 것과 동시에 현실의 표면에 감춰진 진실이 얼마나 복잡다단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이면의 진실을 파헤치는 스릴러에서 ‘러셀 크로우스러운’ 캐릭터는 더없이 효과적이다. 러셀 크로우스러운 인물은 겉보기에 결코 선하지 않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쉽게 융화되지 못하는 독불장군이다. 더욱이 칼은 종종 특종을 위해 취재 원칙을 무시한다. 그 때마다 델라가 항의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경찰에 미리 알렸더라면 피자배달원을 살릴 수 있지 않았느냐고, 취재원에게 알리지 않고 인터뷰 장면을 녹화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냐고.
그러나 스릴러가 사건의 표면보다는 본질을 파헤치는 장르이듯, 우리는 러셀 크로우스러운 캐릭터의 본질을 꿰뚫어보아야 한다. 칼은 결국 목숨을 걸고 사건의 진실을 포착해낸다. 칼의 내면은 사회 정의를 향한 불변의 열망과 용기로 가득 차 있다. 표면의 부도덕을 뚫고 드러나는 내면의 정의. 러셀 크로우스러운 캐릭터는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이 스릴러적인 인물이다.
칼은 처음부터 러셀 크로우를 생각하고 만든 것 같은 인물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이 또한 지극히 스릴러답지 않은가!). 당초 브래드 피트에게 칼 역을 제안했으나 그가 거절하면서 크로우의 차지가 됐다. 영화를 보고 나면 피트의 거절이 현명했다는 데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제 옷을 입은 듯 능수능란한 연기를 펼치는 크로우 외에도 눈여겨 볼 얼굴이 많다. 헬렌 미렌의 깔끔한 연기와 숀 라이트 펜의 조용하면서도 힘 있는 연기 역시 압권이다. 각각 섹시한 할리우드 스타, 사랑스러운 패셔니스타의 타이틀을 내려놓은 채 역할에 녹아든 벤 애플렉과 레이첼 맥아담스도 당당히 제 몫을 해낸다.
마지막 양심선언
단 하나, 아쉬운 것은 마지막 반전이다.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충격적인 대반전을 선보인다. 말이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다소 억지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러나 영화적 완성도를 어느 정도 포기하더라도 이라크 전쟁 에 대한 미국 사회에 대한 솔직한 양심선언을 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용서받을 만한 여지가 있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 아래 무고한 이라크 국민들을 희생시킨 잘못을 포인트 코프로 상징되는 일개 용병회사에 돌릴 수는 없다. 더욱이 포인트 코프와는 별개로 콜린스와 같이 멋지고 정직하고 양심적인 정치인이 그들의 사회적 정의를 굳건히 지켜주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미국 관객을 위한 알량한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는다.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는 마지막 반전을 통해 콜린스의 진실을 들춰낸다. 그럼으로써 지금의 현실이 미국 사회의 총체적 문제임을 폭로한다. 미국 사회의 정의와 이상은 인기 정치인 콜린스의 근사한 미소가 아니라 19년도 더 된 칼의 고물 컴퓨터 모니터에서 깜빡이는 커서 아래 잠들어 있다.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의 결말은 그 점을 잊지 않는다. 장성란 기자(FILMON)
연관기사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 윤전기는 잘도 도네, 돌아가네
소셜웹 반응글
'REVIEW 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타 트렉: 더 비기닝> - 신화의 시작, 블록버스터의 아름다운 진화 (4) | 2009/05/10 |
|---|---|
|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 아비 없는 딸들을 위하여 (1) | 2009/05/07 |
|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 지극히 '러셀 크로우스러운' 스릴러 (0) | 2009/05/05 |
| <엑스맨 탄생: 울버린> - 고민은 사라지고 액션만 남다 (0) | 2009/05/02 |
| <싸이보그 그녀> - 웃음과 눈물을 강요하는 폭압적 리바이벌 (2) | 2009/04/30 |
| <4개월, 3주… 그리고 2일> - 그녀는 왜 낙태를 해야만 했을까 (6) | 2009/04/30 |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