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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굉장히 재밌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일본만화의 폐해를 논하는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주장을 펴는 글이었는데 그 논지만큼은 무척이나 독창적이었다. 그의 주장은 이랬다. 일본 소년만화의 주인공들은 불가능한 일에도 부단한 노력, 변치 않는 신의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 되면 되게 하라’ 식의 흔히 ‘열혈’이라 부르는 이 기치 하나만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경쟁에서 이겨 승리자가 되고 결국엔 일인자가 되는 이 구조가 도저히 맘에 들지 않는단다. 더 재밌는 부분은 이를 실제 현실과 비교하며 우리가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는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새로운 아이디어로 상황을 극복하고 보다 유연하고 탄력 있게 새로운 돌파구, 새로운 스승과 새로운 인맥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일본 소년만화의 주인공들은 이를 철저히 외면하고 결코 될 것 같지도 않은 일에 끊임없이 매달리는 방법으로 승리를 쟁취함으로써 아이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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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사실이 때로는 더 큰 진실로 통용되는 게 사회라는 이름의 정글 속 법칙이다.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한국인은, 아니 현대인은 그동안 학습해왔던 성실, 정직, 노력 등의 가치들을 뒷전에 묻어두고 보다 융통성 있게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SBS 드라마 <시티홀>이 그리는 가상공간 인주시청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가 아닌 바로 이 이야기다. “이 드라마를 정치 드라마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김은숙 작가의 바람은 그저 바람일 뿐, 비리시장 고부실(염동헌)을 위시해 민주화랑은 전혀 거리가 먼 고부실 시장의 측근 민주화 의원(추상미), 나랏밥 먹는 9급 공무원 정부미(정수영) 등 여러 캐릭터들의 이름에서부터 내비치듯 <시티홀>은 거대한 사회를 움직이는 법칙을 단순화시킨 명백한 정치 우화다. 신미래가 자신의 상금과 복직을 걸고 투쟁하고 이를 이용해 비리시장을 밀어내 보궐선거를 꿈꾸는 조국(차승원)이 가세하는 상황 역시 굉장히 명쾌하다. 여기에 영리하게 남녀간의 사랑이 구석구석 자리 잡아 때때로 미묘하게 이야기를 헝클어뜨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참으로 풀어헤치기 쉽게 얼기설기 엉클어놓은 실타래를 헤집고 들어서면 그곳에 있는 것은 크고 작은 집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권력의 상하구조와 그 불합리함에 대한 도전이다. <시티홀>이 목표하고 있는 곳은 애초부터 그것이었고 이를 위해 애써 사건들을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직조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우화라는 틀을 이용함으로써 이 주제와 문제들은 더욱 명확한 힘을 가지고 전면에 나서게 된다.
10급 공무원이자 인주시 밴댕이 아가씨 진에 선정된 신미래(김선아)가 강제로 실직당하고 우승상금마저 받지 못하는 이 상황은 부러 감출 것도 없이 명백한 비리를 ‘상징’한다. 이 상징은 상징이기에 비록 구체성을 띠거나 현실적인 무언가를 담보하고 있지는 못하다. 허나 명백하게 피아를 나누고 선악을 규정하는, 정치우화의 세계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인 기제로는 전혀 무리 없이 작동한다. 이는 곧 신미래의 입을 빌어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통 사람을 하루아침에 투사 되게 만드는 현실’을 이야기함이다. 이로 인해 힘없는 자가 힘 있는 자를 맞서기 위한 상황은 오히려 더욱 가까이에 자리 잡게 되고 말이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시티홀>은 필연적으로 정치우화다. 그리고 이 정치우화는 고도의 기술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직접적인 접근법만을 구사함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 외면하고픈 담론의 주체로 세우는 효과적인 결과를 얻는다.
여자라는 성별과 10급 공무원이라는 직급, 서른여섯이라는 나이 등으로 상징되는 ‘사회적 약자’ 신미래가 권력을 향해 울부짖을 수 있는 방법 역시 극히 제한적이지만 이는 또한 가시적이기도 하다. 고작 1인 시위와 UCC만으로 ‘감히’ 권력에 맞서지만 아마 이 효과만큼은 탁월해 신미래는 분명 승리자가 될 것이다. 이것을 감히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말도 안 되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가운데에도 우리가 정의라고 부르는 것들이 언제고 달성되었고, 그 가치가 여전히 문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느껴지는 것 역시 (비록 확률적으로는 극히 낮겠지만) 어느 정도의 현실성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힘없는 자가 할 수 있는 극히 적은 경우의 수, 그 중 하나는 노력이고 여기에 세상 모든 우화들은 신의라는 가치와 승리라는 결과를 덧붙인다. <시티홀>의 한쪽에는 넘볼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공공의 적이 서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이 공공의 적에게 계란 세례를 당하고 온갖 모독을 감내하며 꾹꾹 눌러 담는 이가 있다. 아이들에게 끼칠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까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정치우화 <시티홀> 역시 그저 현실을 외면하고 애써 덮기 위해서만 애를 쓰는 건지도 모른다. 또 정말로 시청자들은 신미래가 당하는 그 모든 것에 감정을 이입하고 심지어 체화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러 마침내 하등의 득이 될 것이 없는 신미래의 승리에 괜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좋아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만큼 <시티홀>은 목적한 것을 굉장히 명백하게 드러내는 드라마다. 하지만 이를 영리하게 조종하며 그 명백함에 대해서는 ‘우화’라는 바탕을 들어 당당히 나아간다. 이것이 당당히 나아가는 이 힘없는 자의 결과론적 카타르시스를 쉽게 폄하하거나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가 된다. 때때로 승리자는 그렇게 태어났다. 그리고 그 가치 역시 여전히 유효하며 또 유효해야 한다. <시티홀>은 우리 사회가 그토록 버리길 강요하는 가치들, 즉 힘없는 자들의 올곧은 멍청함이란 ‘가치’를 향해 다시금 담론을 자처하는 드라마다. 참으로 명민한 정치우화다. 강상준 기자(FILMON)
[인터뷰] <시티홀>의 ‘정부미’ 정수영 - 매순간 나 자신과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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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재방송으로 봤는데 그냥 트렌드 드라마일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정치적인 내용을 소재로 다뤄 신선했어요. 우리나라 드라마 특성상 잘나가다 러브라인으로 질질 끌다가 어정쩡하게 끝나잖아요.. 요건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2009/05/20 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