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본 기사는 '하나TV'를 중심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중독의 시대, 또 하나의 떠오르는 중독 물질인 IPTV를 집에 들인 결정적 계기는 순전히 3개월 무료라는 달콤한 제안 때문이었다. IPTV라는 어휘도 꽤나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그 실체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었던지라 3개월 무료체험은 그동안의 궁금증을 불식시키기 위함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사실은 핑계)이 될 수 있었다.
여하튼 극장을 대체하고, 디스크 매체에 종언을 고하고, 불법 다운로드 시장에 맞서 싸우는 첨병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신세기 부가시장의 핵' IPTV를 맞이할 이유는 여러모로 충분했다. 이 조그만 셋톱박스 안에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영화가 담겨있다는 얄팍한 지식만으로도 기대감은 넘칠 듯 컸으니 명분이야 갖다 붙이기 나름이요, 장애물은 처음부터 고작 돈뿐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물론 한 가지 찜찜한 게 있긴 했다. IPTV의 장점에 대해 거칠게 침을 튀기며 칭찬하던 사람들이 얼마 후에는 어젯밤도 뜬눈으로 새웠노라며 앞 다퉈 IPTV의 폐해를 증언하기 시작한 것. 그 가열찬 중독성을 상징하는 벌겋게 충혈 된 눈이 나를 바라볼 때, 나 또한 저 그룹에 합류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한동안 존재했기 떄문이다. 허나 이미 일이 저질러진 마당에 당시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폐해의 증언마저도 그들만의 '극기와 극한 체험'의 무용담이었을런지도 모른단 것이다. 결국 가슴 속 깊숙이 끓어오르는 시샘을 이기지 못했고, 어찌됐든 3개월 무료라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만으로도 명분과 실리는 가족 전원을 만족시켰기에 순식간에 만장일치 오케이 사인 작렬, IPTV는 곧 우리의 새 식구가 되었다.
설치 역시 순식간이었다. 신청한 바로 다음 날 기사님 방문 하에 IPTV는 설치됐고 굳이 배울 것도 없는 간단한 리모컨 조작법을 익힌 후 곧바로 신문물에 빠져들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약 2주간은 정말로 신천지가 펼쳐지는 듯했다. 허나 내 경우에는 그게 겨우 2주였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IPTV 중독일지
시작은 심히 창대하였다. 도대체 어떤 영화들이 있길래라는 생각으로 메뉴 훑어보는 데만 1시간을 소요하며 훌훌 들여다보던 중 든 생각은 최신 영화까지 두루 갖춰놓은 데에 대한 충격, 머지않아 극장 안 가고 며칠만 참으면 집에서 다 해결 가능한 건 아닌가 싶었던 거다. 어쨌든 이것저것 담겨 있는 콘텐츠의 스타일 파악 완료 후 시식 코스로 선택한 것은 피에르 모렐 감독의 <13구역>이었다. 가나다순으로 정렬한 영화 리스트에서 아라비아숫자 13이 거의 맨 첫 페이지에 위치하고 있던 이유도 있고, <테이큰> 리뷰를 쓰기 전에 도대체 이 ‘극장판 미드 스타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이는 모렐 식 장르영화의 힘은 무얼까 하는 짧은 고민을 참 힘 안 들이고 해결할 수 있겠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케이블TV에선 그렇게 매번 주인공들이 야마카시하며 열심히 날아 다니는 중간부분만 보게 되더니만 이걸 이렇게 쉽게 볼 수 있을 줄이야.
이후 안모 기자의 초원이 흉내 덕분에 “효원이 다리는?”이라는 농담을 열 번 이상 내뱉고 나니 자연히 <말아톤>이 땡겨 화투패 튕기며 혜수 언니 끌어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조승우도 새롭게 감상할 수 있었으며(더불어 두 편 연속으로 흥행 실패한 정윤철 감독에 대한 믿음을 다시금 붙잡을 수 있었다), <파괴지왕>에서 주성치가 쓰고 나온 가면이 ‘가필드’냐 ‘울트라맨’이냐 하는 궁금증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정답은 가필드. 울트라맨은 삶은 달걀 눈에 박아 넣은 오맹달이더군).
애니메이션 카테고리로 넘어가니 가속도는 더 붙더라.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를 사랑해마지 않았지만 <톱을 노려라2! :다이버스터>를 DVD로 볼 수 없어서(잠시 리뷰용 디스크가 들어왔던 적이 있었으나 눈 깜짝할 사이에 반납해버려 못 본 듯) 그렇다고 다운로드해서 볼 수도 없어서 그저 가이낙스의 위상만을 멀리서 입맛 다시고 말았더니 여기 IPTV엔 떡하니 6편 모두 있는 것이 아닌가. 아, 지구를 던지고 1만년을 뛰어넘는 그 방대한 스케일에 감화되고 나니 노노가 그렇게 동경하던 ‘노노리리’가 바로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의 주인공 노리코라는 걸 깨닫게 되는 마지막화에 이르는 데 단 한순간의 휴식시간이 필요할 리 없다. 또 끊임없이 신작 애니메이션이라고 중간광고를 해대던 애니메이션 <제로의 사역마>도 약 사흘 만에 1,2기 모두 감상 완료. 야마구치 노보루의 라이트노벨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에 왜 그리 많은 팬들이 매료되었는지는 끝끝내 알아내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 옛날 <3×3 EYES>의 현재적 변용을 확인하는 성과는 IPTV가 아니면 절대 만나볼 수 없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우린 또 와인 좋아하지~” 요 대사 하나 다시 듣겠다고 <범죄의 재구성>을 다시 보질 않나, 가장 많은 편수로 구성된 애니메이션 <나루토>에 도전하질 않나, 가는 세월 막을 수 없듯 찌는 살도 막을 수 없어서 조혜련의 태보와 봄날 아줌마의 실내운동 코스를 탐문하는 등 즐길만한 콘텐츠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게다가 공중파TV나 케이블TV와는 전혀 다른 IPTV의 조작법에 약간 반감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마저도 중국 무협드라마를 빛의 속도로 돌파하시며 왕년 총각 시절 휴일이면 무협지 한 질씩 빌려다 독파했다는 믿고 싶지 않은 경력을 재현하고 계시니 이 정도면 3개월 무료가 아니라 1달에 몇 만원씩 주고 봐도 본전은 물론 그 이상을 건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올 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시들
하지만 2주 정도가 지나니 이 열기는 차츰 가라앉기 시작했다. 왜?
1. 너무 많은 유료 콘텐츠, 이용자는 봉?
우선 축적해놓은 콘텐츠의 한계를 들 수 있다. 엄청나게 많은 콘텐츠가 있는 것 같지만, 자연 다큐멘터리에도 관심 없고 스포츠나 공중파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도 관심 없는 나 같은 경우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굉장히 한정된다. 이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그 누구라도 개인의 기호에 따라 한정된 카테고리의 콘텐츠를 섭렵한 후에는 상당 부분을 신규 콘텐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대부분의 신규 콘텐츠들이 모두 정액 기본료 외에 별도로 부과되는 과금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 끊임없이 광고하는 <나는 전설이다>는 물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더 게임>에 이르기까지 얼마 전 극장가를 주름 잡았던 화제의 영화는 물론 <댄 인 러브>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등 최신외화들은 반드시 별도의 금액을 지불해야만 감상할 수 있으므로 유료에 혹하지 않으리라 맘먹은 이용자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3개월 무료체험 제공과 함께 이 그림의 떡도 드셔보시라며 3천 원을 선입금해준 건 고맙지만 1800원짜리 <브레이브 원>을 한 편을 보고 나니 남은 1200원으로 할 수 있는 건 극히 적어졌다. 남은 선택은 고작 몇 가지뿐. 3개월 무료라는 기치를 끝까지 달성하겠노라는 밑도 끝도 없는 내 의지는 600원을 더 투자해서 최신영화 한 편을 더 보느냐, 아니면 900원짜리의 비교적 '싼 최신영화'를 보느냐, 그것도 아니면 편당 300원이나 물리는 미드 <24>의 시즌1을 4편까지만 보고 마느냐 하는 헝그리 정신 갈림길에 나를 몰아세웠다. 이런 찌질함이 싫으면 본격적으로 유료 콘텐츠의 세계로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다른 카테고리에 빠져드는 수밖에(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성인채널 추천).
어쨌든 이도 저도 다 유료라니 1800원 정도의 가격이라면 비디오나 DVD 한 개 빌리는 값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것도 집에서 편히 앉아 대여한다는 심정을 덧붙여 연체료 부담까지 덜어낸다니 그다지 나쁜 조건만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해리 포터’ 시리즈가 아이들에게만큼 여전히 인기가 많다는 이유로 2002년 작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마저 별도의 요금을 부과하고 있는 등 실질적으로 ‘볼만한’ 콘텐츠들은 대부분 유료 전환을 꾀하는 게 이 바닥의 논리라면 분명 여기에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지점들이 존재한다. 그나마 현재는 설치비 및 셋톱박스 대여료 등을 무료로 서비스하기에 현재 체감하는 비용이 그다지 큰 금액이 아니라고 여길 수 있지만, 13,000원 정도의 한 달 기본료에 이토록 많은 유료 과금 방식을 덧붙인다면이야 추후 IPTV가 보편화되는 시점에 맞이하게 될 풍경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어느 순간에 이르면 무료 서비스 기간을 철회하고 설치비 및 셋톱박스 대여료 등의 또 다른 기본요금까지 부과했던 이제까지의 시장논리를 조심스럽게 적용해볼 때 상용 이용자에게 있어 유료 콘텐츠의 보편화 현상은 결코 작은 요금이라 치부할 수 없을 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할 게 분명하다.
2. 너무 많은 광고, 질린다 질려
전 세계 여성암 중 사망률 2위. 우리나라에서만도 하루 평균 약 3명이 이 병으로 사망하지만 초기 단계에는 통증과 증상이 없어 조기 발견이 힘들다. 무슨 얘기냐고? 바로 자궁경부암 얘기다. 내 경우에는 발병확률 제로인 이 병에 대해 내가 이토록 민감해진 건 순전히 이 길고 긴 광고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해서 감상해야했기 때문이다. 대한암협회와 함께 하는 이 광고는 시시때때로 전문의와의 면밀한 상담을 촉구하니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정말로 그래야 할 것 같은 정신 나간 위기의식에 시달릴 정도로 이 CF의 빈도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하나TV가 밀고 있는 한국영화 (내 맘대로 선정한)‘CF 빅3’의 외침도 지긋지긋하다. “이건 반칙이야!”(<더 게임>), “나가시라구요!”(<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어서 말해~!”(<가면>)라는 약간은 희한하고 요상한 발성법으로 나타나는 영화 속 대사들은 영화의 강렬한 인상을 대변하며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 위력이 어떠하냐면 다른 일을 하더라도 이 익숙한 음악이 전개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정확한 지점에서 따라하게 된다. 예를 들면 김강우와 함께 “어서 말해~”라고. 미칠 노릇이지.
메뉴를 보고 시청할 프로그램을 선정할 때 끊임없이 반복되는 IPTV의 광고 정책은 정보를 제공한다기보다는 노골적으로 세뇌에 목적이 있는 듯하다. 어느 정도 신규이용자의 선을 넘어선 순간 이는 치사량의 독이 되어 단 몇 가지만을 무한 반복하는 광고의 덫의 지독한 지긋지긋함을 느끼게 한다. 어서 빨리 프로그램을 선택하지 않으면 분명 이혜영 씨가 “이건 반칙이야!”라고 외칠 게 분명하다는 그 강박의식··· 오, 제발 자궁경부암만은!
그렇게 프로그램을 선택한다 해도 광고는 시청자를 놓아주지 않는다. 프로그램 시작 전 반드시 한 편의 CF를 감상해야 하는 이 시스템 하에서 30분짜리 TV애니메이션을 연속 감상해야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인내심을 수반한다. 말이 30분이지 오프닝 떼고 클로징 떼고 예고편 떼어내면 얼마 되지도 않는 애니메이션 한 편을 감상하고 또 다시 “치로 말썽쟁이, 치로 욕심쟁이, 치로 장난꾸러기~ 랄.랄.랄.랄.랄.랄.랄.라 랄라라~랄랄라”를 듣고 있자니 뭐하는 짓인가 하는 자괴감마저 드니 원. 이럴 때면 케이블TV로 야구 한 게임 감상하면서 매 회마다 보는 10여 가지의 다양한 대출광고가 차라리 낫다 싶다.
3. 원하는 장면부터 보면 안 되겠니?
원하는 콘텐츠를 초고속으로 다운 받아 즐기는 IPTV의 시스템은 일견 완벽해 보인다. 컴퓨터를 이용한 어떤 불법 다운로드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데다가 다운 도중에도 감상할 수 있다니 이 시스템이야말로 웹과 TV를 결합시킨 최고의 콘텐츠 유통방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초고속 다운로드에도 헛점은 있다. 초고속이라고 하지만 순식간에 2시간짜리 영화 한 편이 다운받아지는 것은 아니니까. 가령 <웃찾사>의 간판코너 ‘웅이 아버지’를 단번에 볼 수는 없다. 제공되는 소스는 DVD처럼 트랙이 따로 나뉘어 있는 것도 메뉴화면을 통해 챕터를 선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기본적으로 1시간 분량의 <웃찾사> 정도야 20분 정도 참고 앞부분을 감상하다 보면 <웃찾사> 가장 끝자락에 자리 잡은 ‘웅이 아버지’까지 패스트 포워딩해서 볼 수 있게 다운이 완료된다. 그러나 일주일 전 감상하다 그만 둔 2시간 분량의 영화를 중간 부분부터 다시 보기란 불가능하다. 다운된 프로그램을 3일간은 저장하는 기본 시스템 때문에 중간에 시청을 보류해도 재시청을 원할 때 ‘이어보기’ 메뉴를 자동으로 화면에 띄워주는 것은 무척 고무적이나, 처음 시청 후 일정 기간이 흐른 다음에는 역시나 새로 다운받아야만 시청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처음 보는 콘텐츠의 경우 맨 마지막 장면부터 감상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짧은 분량의 프로그램을 연이어볼 때 생긴다. TV애니메이션 <나루토>는 여느 TV판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30분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러닝타임은 15분 이내다. 왕년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원기옥 모으는 데 몇 주 걸렸듯이 <나루토>도 오프닝 타이틀과 클로징을 빼고 또 전편의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는 구간을 걷어내고 나면 채 10분이 되지 않는 에피소드가 상당히 많다. 이로 인해 '자궁경부암'과 마주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오프닝곡을 뛰어넘고 전편에서 봤던 내용을 걷어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다운로드에도 정해진 속도라는 게 있기 때문에 무작정 앞으로 돌리면 다운이 아직 진행되지 않은 부분에 이르러서는 화면이 멈추며 잠시 대기 상태에 돌입한다. 이러니 내게 <나루토>는 사실상 포기해야할 콘텐츠로 느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를 만회하는 방법으로, 하나TV의 경우 ‘예약채널’이란 메뉴를 운영한다(메가TV의 경우도 마찬가지). 최대 5개의 콘텐츠를 미리 예약해두면 다른 콘텐츠를 즐기는 동안 순서대로 다운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사람 마음과 상황이라는 게 1편부터 5편까지 받아놨다고 해서 반드시 논스톱 감상하리란 것도 아니니 어느새 잊어버리고 며칠이 지나기 일쑤다. 이러느니 그냥 실시간으로 보자, 예약이 웬 말이냐, 싶다가도 앞으로 돌리다보면 한 세월이니 각 에피소드 당 러닝타임이 짧은 시리즈의 경우 웬만하면 피하고 싶다는 결론으로 모아지는 게 당연하다.
4. 원천 소스는 있습니까?
등록돼있는 프로그램 중 같은 이름의 콘텐츠지만 ‘HD’마크가 있는 콘텐츠와 아닌 콘텐츠가 있다. 또 하나TV의 경우 ‘HD 섹션’을 따로 분류해놓은 데에서 알 수 있듯이 HD소스는 차세대 DVD 시장의 승리자로 블루레이가 낙점된 지 얼마 안 된 현시점, IPTV 시청자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콘텐츠 중 하나다. 그러나 하나TV의 경우 프로그램명에 HD마크가 찍힌 것은 있을지 몰라도 이를 HD급의 선명한 화질로 즐길 수는 없다. 이유는 굉장히 단순하다. 제공되는 셋톱박스가 HD소스를 받아들일 수 없는 기기이기 때문이다. HD소스를 제공하고 또 풀HDTV를 가지고 있으면 뭐하나? 셋톱박스에 HD소스를 전달할 HDMI단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데. 인풋과 아웃풋 모두 HD로 구성됐지만 중간을 매개하는 셋톱박스는 HD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제품이기에 화면에 나타나는 장면들은 그저 일반적인 콘텐츠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질감을 띈다.
실제로 김선아 주연의 <잠복근무>의 경우 ‘<잠복근무>’와 ‘HD <잠복근무>’가 있지만 풀HDTV를 통해 본 둘의 화질은 거의 동일하며 다만 HD쪽 소스 용량이 좀 클 뿐이다. HD 콘텐츠 역시 일반과 다를 바 없지 않느냐는 의심은 그저 이 용량을 확인하면서 걷어내는 수밖에 없다.
또한 화면비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다. 하나TV 콘텐츠의 경우 와이드 화면에 걸맞은 콘텐츠가 있는가 하면 일반TV 비율인 4:3에 맞춰진 콘텐츠도 있다. 영화의 경우에는 더욱 복잡해져서 와이드 비율인 1.85:1이나 2.35:1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화면 상단에 검은 띠를 두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화면 좌우측마저도 검은 부분으로 가려 TV스크린 한가운데 덩그러니 출력되는 우스운 꼴을 보여준다.
이를 TV 자체 기능 중 하나인 화면비율 조정으로 만져보자니 인물들은 와이드비율로 확대되어 옆으로 푹 퍼져 보이고, 또 영화의 원래 와이드비율을 억지로 4:3 일반TV 크기에 맞춰놓은 알 수 없는 리소싱 덕분에 아무리 조정해도 옛날 방화를 보는 듯 마른 인물들밖에 볼 수 없는 영화들도 널리고 널렸다. 특히 와이드TV의 상하부분이 잘리게 되는 2.35:1 영화의 경우엔 오히려 좌우를 잘라낸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써 상하로 길게 늘어난 옛날 방화 수준의 화면비를 보여준다. 이렇듯 영화 콘텐츠는 일단 플레이하면 화면비율 조정에 대한 걱정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상하좌우를 잘라내지 않고 볼 수 있느냐를 걱정해야 된다는 건데, 이건 사실 좀 심각한 얘기 아닌가?
게다가 소스 자체도 IPTV 시청자를 위해 따로 변형했다는 노력은 단 한 구석도 찾아볼 수 없다. <파괴지왕>의 경우 비디오 자막을 그대로 실어 옛 정취를 아주 물씬 느끼게 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HD까지 바라는 건 때 이른 투정쯤으로 비춰질 정도로 IPTV의 맞춤형 소스는 아직까지는 요원한 듯싶다.
그래서 3개월 더?
듣자하니 3개월 무료 시청 기간이 끝나자마자 취소를 요구하면 다시 3개월 무료 기간을 준다고 하더라. 하나TV와 메가TV, 양 경쟁사 서비스를 번갈아 타면 거의 1년 정도를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얘기. 그러나 이는 먹을 거 입을 거에 투자하는 데에 비해 보는 거 듣는 거에 돈 쓰는데 인색한 한국 사람들의 척박한 문화생활의 지표를 말함이 아니다. 그저 단돈 만 원 내외로 향유할 수 있는 콘텐츠는 IPTV라고한들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할지라도 시청시간은 정해져 있고 콘텐츠 역시 빡빡하게 정해져 있다. 정해진 콘텐츠를 넘어서는 방법은 여느 시장 법칙과 마찬가지로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수밖에 없고 말이다. 무료라고 하지만 그 무료를 넘어서는 순간 무료해지고 마는 것, IPTV가 넘어야 할 3개월의 벽이며 동시에 평범한 붙박이TV로 자리할 수 없는 2008년 IPTV의 현재다. 강상준 기자 (www.film-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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