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바라 보다가> 제작발표회에서 기민수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아날로그적 인물 구동백이 시선을 끌게 될 것이다.” ‘톱스타와 일반인의 로맨스’라는 진부한 설정에 대한 우려에 기민수 감독이 띄운 승부수는 ‘멸종남’ 구동백이 전하는 순수함의 미덕이었다. 영화배우 황정민을 브라운관으로 데려와 구현해낸 이 캐릭터는 별 볼일 없는 외모와 특징 없는 성격의 우체국 말단 직원으로, 복잡하고 약은 세상에서 정직함과 희생을 모토로 삼은 바보 같은 남자다. 톱 여배우 한지수의 정치적 스캔들에 휘말린 구동백은 거짓과 허세로 포장된 연예계와 정치계에 진실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다.
또 다른 드라마에도 멸종남이 있다. <솔약국집 아들들>의 첫째 아들 송진풍 역시 진실이 아니면 입을 안 여는 과묵함에 순박한 미소를 지닌 남자다. 중학교 시절 첫사랑을 여전히 잊지 못한 그는 ‘마흔 살 순정’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희귀 노총각이며, 듬직한 장남이자 더 없는 효자다. 물론 잘나가는 직업의 아들들이 장가도 안 가고 부모님에 할아버지까지 모시고 함께 산다는 설정 자체가 ‘멸종 드라마’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솔약국집 아들들>이지만, 대책 없는 바람둥이거나 예쁘장한 얼굴을 지닌 다른 아들들과 비교했을 때 구수한 외모에 답답하리만치 때 묻지 않은 성격의 송진풍은 가히 멸종 직전의 남자라 할 만하다.
구동백과 송진풍의 비현실적인 순진함은 자칫 억지스럽거나 무색무취의 캐릭터로 비칠 위험이 있다. 하지만 황정민과 손현주라는 걸출한 연기자를 품은 이들은 견고함과 진정성을 발휘하며 마음을 끌어당긴다.
F4와 태봉씨가 개인 소장하고 싶은 남자라면, 구동백과 송진풍은 챙겨주고 싶은 남자다. TV 드라마가 응당 가져야 하는 숨 막히게 잘생긴 꽃미남이나 진저리나게 못되고 찌질한 남자들 틈새에 우리의 멸종남들은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더 보고 싶은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막장’을 자처하는 자극적인 캐릭터들 속에서 정직한 삶의 아름다움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은 언젠가부터 희미해져 버린 우리 안의 순수함을 되새긴다. 또한 볼 것 없는 외모와 순박한 성격으로도 얼마든지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희귀한 이 남자들, 멸종하기 전에 양성하고 보호할지어다.
정미래 기자(FILMON)
댓글을 달아 주세요
흐흐.. 정말 손현주씨는 순정남 이미지가 묘하게 잘 어울려요. 예전 드라마 <첫사랑>에서도 저런 비슷한 느낌의 캐릭터였죠. 기타 뜯으며 연가를 읖조리던 (무슨 노래였지 갑자기 기억이 안 나네요 ㅠ.ㅠ) 그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2009/05/19 11:59'희귀한 이 남자들, 멸종하기 전에 양성하고 보호할지어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손현주씨 연기 진국이죠. ㅎㅎ <첫사랑> 오랜만에 생각해 보네요.
2009/05/19 1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