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도 치료법도 불분명한 기이한 병 때문에 횡단보도를 걷다가도, 수업 중에도 느닷없이 잠에 빠져 픽픽 쓰러지는 원우(김예리)는 살얼음 위를 걷듯 불안한 삶을 견디고 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이뤄지는 신체적 반응으로 인한 박탈감은 사춘기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다. 이런 딸을 바라보는 엄마도 힘들긴 마찬가지. 연희(박지영)는 원우가 언제 어디서 쓰러져 다치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과잉보호를 할 수밖에 없다. 임신했을 때 깍두기 하나도 반듯한 걸로만 골라 먹었건만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시련이 생기나 하늘을 원망해도 소용없다. 남편을 일찍 떠나보낸 것도 모자라 하나밖에 없는 딸이 고달픈 삶을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저 허망할 뿐이다.
최지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 <바다 쪽으로, 한 뼘 더>(이하 <바다 쪽으로>)는 기면증(시도 때도 없이 잠드는 증세)을 앓고 있는 여고생과 그런 딸을 홀로 키우는 엄마의 갈등과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상처를 간직한 채 묵묵히 살아가던 모녀에게 각각 사랑이 다가오면서 영화는 변화의 파도로 살랑인다. 특별대우를 받으며 외톨이 학교생활을 하던 원우에게 같은 반 소년 준서(홍종현)가 무뚝뚝한 수호천사가 되어 말을 걸어오고, 고단한 연희에겐 자상한 연하남 선재(김영재)가 따뜻하게 손을 뻗어온다.
다신 찾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설렘과 난생처음 느껴보는 풋풋한 감정에 모녀는 달라진다. 엄마의 과잉보호가 귀찮아진 원우는 젊은 남자와 만나고 다니는 엄마에게 괜스레 배신감을 느낀다. 금지옥엽 키우던 딸의 반항에 연희는 마음에도 없던 손찌검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한차례 폭풍이 몰아친 후 두 사람의 마음은 한 뼘 더 성장한다. 딸은 엄마의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고, 엄마는 가여운 딸을 움켜쥐던 손아귀를 조금씩 풀어간다.
2007년 <판타스틱 자살소동> 이후 두 번째로 인디스토리와 MBC드라마넷이 공동 제작한 영화 <바다 쪽으로>는 특별한 듯 평범한 모녀의 사정을 간결하고 잔잔하게 풀어낸 드라마다. 보통 이런 식의 성장영화는 기면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소녀의 먹먹한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딸을 지켜보는 엄마의 삶과 사랑을 동시에 보듬으며 모녀가 서로 영향을 미치고 변모해가는 모습을 통해 살아가면서 누구나 성장한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평범한 얼굴에 아담한 키를 지닌 신예 김예리는 <바다 쪽으로>에서 연기자로서의 잠재력을 마음껏 펼쳐보였다. 실감나는 ‘기면증 액션’과 폭발할 듯한 분노 연기로 스크린을 압도한 이 작은 소녀의 행보가 기대된다.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한 느리고 절제된 연출, 여백을 강조한 시적인 화면과 순수함이 묻어나는 스코어로 일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영상은 저예산 영화가 주는 소박한 매력을 선사한다. 물론 유쾌하고 자극적인 영화를 선호하는 관객에겐 숙면을 유발할 위험도 있지만, 영화 속 인물들과 함께 관객의 마음까지 한 뼘 더 자라게 해주는 영화를 만날 기회가 흔치 않다는 걸 명심하시길.
정미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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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 갑니다..^^*
2009/05/25 1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