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남자> <내조의 여왕> 등 초대박 한국 드라마가 연이은 덕분인지 요즘 미국 드라마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한때 언론에서 앞 다투어 기사화할 정도로 미드는 대중문화의 주요한 키워드였으나 이제 <프리즌 브레이크>와 석호필은 추억의 단어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일드’, 일본 드라마는 어떨까. 일본영화가 한국 극장가에서 환영받지 못하듯 일드 역시 한국의 안방극장에선 거의 찬밥 신세다. 공중파 채널에서 일드를 만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며, 케이블에서도 가끔씩 철 지난 작품을 볼 수 있는 정도다. 물론 ‘불법 공유의 세계’에서 일드는 확고한 팬덤을 형성하며 신작과 한글자막이 발 빠르게 전파되고 있지만 여전히 일드는 마니아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
미드가 영화 같은 비주얼과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스토리로 시청각을 자극한다면, 일드는 일상적인 소재와 섬세한 접근법으로 소박하게 마음을 사로잡는다. <런치의 여왕>(2002)은 이러한 일본 드라마의 매력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한국에 <내조의 여왕>이 있다면, 일찍이 일본엔 <런치의 여왕>이 있었다.
비밀을 간직한 여인이 남자들로만 이뤄진 가족의 일원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런치의 여왕>은 한국에서도 쉽사리 접할 수 있는 가족극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일본의 장기인 ‘음식물’이기도 하다. 성실한 두 아들과 과묵한 아버지가 자그마한 양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나베시마 집안에 구제불능 첫째 아들의 꼬임에 빠진 여자 나츠미(다케우치 유코)가 흘러들어온다. 홀아비 냄새 풀풀 나는 집과 매너리즘에 빠진 식당을 상큼하게 변화시키는 나츠미의 활약을 중심으로, 유지로(에구치 요스케), 준자부로(츠마부키 사토시) 형제와 이루는 삼각 로맨스가 예쁘장하게 교차된다.
어두운 과거를 발랄한 성격으로 가린 나츠미는 맛있는 점심 먹는 걸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일명 ‘런치의 여왕’이다(제목부터 얼마나 일본스러운지 모른다). 뜨거운 볶음밥을 실크처럼 감싼 얇은 계란옷에 달콤새콤한 데미글라스 소스를 끼얹은 오므라이스를 한 숟가락 입에 떠 넣었을 때의 만족감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대변되는 이 드라마엔 점심 한 끼, 소스 하나에도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일본식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음식에 담긴 농후한 장인 정신과 서양 요리를 자신들의 것으로 변주해 깊은 성찰까지 심어 넣는 일본식 야무짐이 느껴지는 드라마 <런치의 여왕>은 나츠미의 치유와 성장을 아우르며 가족이란 이름이 던져주는 불변의 진리로 뭉클함을 안기며 마무리 된다. 여기에 다케우치 유코, 츠마부키 사토시 등 톱스타들의 파릇파릇한 모습은 덤이다.
몇 년 전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된 바 있는 <런치의 여왕>을 5월 23일 밤 12시 20분 KBS Joy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서서히 일본 드라마의 고전이 되어가고 있는 <런치의 여왕>. 아직도 일드를 맛보지 못한 당신에게 강력 추천한다.
정미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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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를 보고 난 후 돈까스를 먹을 때마다, '아 이게 데미그라스 소스인가!'하고 읊조리게 된다능..
2009/06/15 00:48전 한동안 데미글라스 소스 뿌린 오므라이스를 찾아 돌아다녔답니다ㅎㅎ
2009/06/15 0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