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영화 언론시사회에선 진풍경이 자주 목격된다. 얼마 전 <박쥐>도 그랬고 며칠 전 <마더>도 그랬다. 화제의 감독이나 배우가 출연하는 시사회는 거의 모든 취재진이 모여든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때 몇 십분 줄 서서 좌석표를 기다리다가 결국 발길을 돌렸던 기억은 여전히 씁쓸하다. 본디 시사회란 개봉에 앞서 기자들에게 먼저 영화를 공개하는 자리건만, 요즘 같아선 화려하게 차려입은 배우들의 모습을 비추는 카메라 플래시와 그들의 신변잡기를 묻는 질문만이 공허하게 울리는 이벤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난 5월 20일. 하필이면 <보트>와 <마더>가 연이어 시사회를 가졌다. 하정우와 츠마부키 사토시가 공연한 <보트>와 두 말 필요 없는 기대작 <마더>를 연달아 보기 위해 기자들은 반나절의 스케줄을 용산CGV에 할애했다. <보트>는 애초 왕십리CGV로 잡혔던 시사회 장소를 용산CGV로 급 변경했고, 부득이하게 이 날 한국에 오지 못한 츠마부키 사토시 때문에 영화 상영 후 의례 열리는 간담회도 취소됐다.
어찌됐든 대부분 취재진의 목적은 <마더>였으니 크게 상관없었다. <마더> 시사회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몰렸고, 한참을 줄 서서 기다렸지만 결국 표는 동이 났다. 여기저기서 불만이 속출했고, 겨우 얻은 자리는 홍보사의 허술한 진행으로 인해 동영상 취재진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결국 “남는 자리에 앉으라”는 얘기까지 듣자, 이게 뭐하는 건가 싶은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영화에 대한 기사를 쓰려고 열린 언론시사회가 스타의 실시간 화보를 만들어내는 현장으로 변질됐을 때의 그 허탈함이란.
현실을 규탄하는 것도 잠시, 연이어 상영된 두 영화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흥미를 유발했다. <보트>와 <마더>를 비교한다는 건 웃기지도 않는 짓이지만, 두 영화는 생각지도 못한 상이한 접점을 지니고 있었다.
한일 양국을 오가며 벌어지는 마약 밀매와 그에 얽힌 두 청춘의 우정을 그린 <보트>는 포스터와 시놉시스를 보고 언뜻 가졌던 인상을 보기 좋게 배반하는 영화다. 알고 보니 <보트>는 범죄 따윈 중요하지 않으며 스릴도, 개연성도, 심지어 재미도 없는 ‘바보들의 행진’ 식 버디무비였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막장 인생을 사는 한국 남자와 가족 부양의 짐을 짊어지고 역시나 되는대로 막 사는 일본 남자가 어쩌다 만나 위로가 된다는 스토리. 나쁘지 않다. 일반적인 장르의 법칙을 무시하며 인과관계도 고려하지 않은 채 나름의 색깔을 추구하려 한 실험정신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영화엔 ‘연출’이 없다. 시나리오와 배우들을 어떻게 프레임에 담아낼 것인지를 연구하는 건 감독의 몫이건만, 이 영화는 작가가 써 준 시나리오 가지고 한국과 일본의 보석 같은 배우들을 데려다가가 카메라 앞에 그냥 내버려둔 느낌이다. <보트>를 보고 나온 한 지인은 “그 좋은 배우들을 데리고 어찌 저렇게 밖에 못 찍었냐”며 허망해했다. 여러모로 이상한 이 영화가 가장 크게 놓친 건 바로 미장센이었다. 아무런 느낌 없는 롱테이크, 인물의 감정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 클라이맥스는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는 이의 의욕을 상실하게 만든다.
<보트>에 이어 (겨우) <마더>를 봤다. 봉준호는 논두렁만 가지고도 스릴과 미장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감독이다. 어느 지방 소도시에서 오랜만에 일어난 살인 사건과 미친 모성애, 진저리나는 이 시대의 부조리를 꼼꼼하게 심어 넣은 감독의 뚝심이 넘실댄다. 탈색된 듯한 화면, 수미쌍관을 이루는 처음과 끝, 시골 형사 특유의 안일함, 수만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익스트림 클로즈업 등 곳곳에서 <살인의 추억>의 잔재가 스치긴 하지만, 진부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세계가 더욱 선명하고 견고해지는 느낌이다.
봉준호 감독은 ‘국민 엄마’ 김혜자를 살인적인 광기에 휩싸이게 하고, 꽃미남의 틀에 갇힌 원빈을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반푼이로 만들었으며, 은근한 진품 배우 진구의 재능을 비로소 관객이 알아차리게 도와줬다. ‘봉테일’이라는 별명답게 감독은 철저히 계산된 연기와 카메라의 앵글과 로케이션을 보여준다. 물론 그러한 디테일과 계산은 누구나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영화적 프레임으로 유려하게 표현하느냐 못하느냐는 다른 얘기다. 감독은 <마더>를 통해 봉준호식 미장센을 완벽히 구축한 듯 보인다. 그것은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영화는 영화다워야 한다. 봉준호는 영화 만드는 재미, 영화 보는 재미가 뭔지를 너무 잘 아는 감독이다. 영화를 만들지 않았으면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될 정도로 봉준호는 천생 영화감독인 것 같다. 나는 그를 열렬히 신봉한다. 정미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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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물주머니처럼, 건조한 청춘영화밀수품 심부름을 하는 청춘(형구)과 그 청춘을 감시해야 하는 청춘(토오루), 이 두 청춘에 어쩌다 엮이고 만 청춘(지수). 단 29회차라는 짧은 촬영 기간 동안 카메라에 담기고, 중간 과정을 거쳐 관객들 앞에 선을 보인 김영남 감독의 신작 <보트>에서 획득할 수 있는 단편적인 이미지다. 앞의 몇 문장에서 암시했지만 <보트>는 공개된 포스터와 시놉시스에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는 요상한 한...
* 아래 내용부터는 영화감상을 방해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함유되어 있습니다.혹여 못 보신 분들은 맨 아래로 이동해 주세요 : )mother, Mother, MOTHERIntroduce봉준호 감독의 신작 <마더>를 맨 처음 극장에 가서 눈에 담은 지난 주말 즈음. 극장가를 빠져나오면서 내 머릿속은 무작위로 복잡해지고 있었다. 장담하건대 <마더>는, 먼저 본 작품이자 올 상반기 흥행의 쌍두마차를 형성하는 박찬욱 감독의 <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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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가 훌륭한 원작을 못살리는 이유를 정확하게 지적하셨네요. 만화나 소설 특히 만화원작 살릴때 원작만 살린다고 영화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더군요. 데스노트가 대표적인데 영화랑 만화의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하는것 같더군요.
2009/05/24 14:37잘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2009/05/25 11:26미장센 이야기는 어디 있나요? 저렇게 제목 뽑았으면 한 두 장면이라도 구체적으로 다뤄야 하는 것 아닌지. 그냥 몇몇 연출만 개괄적으로 언급됐을 뿐이네요. 그것도 누구나 다 알 만한.
2009/05/31 0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