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정의 따위……

ESSAY ON 2009/05/27 09:43 Posted by 파란다이스

어제 퇴근하자마자 집에 와서는 쟁여놓은 술이란 술은 몽땅 마신 것 같다. 퇴근길부터, 아니 하루 반나절이 넘어가는 시점부터 시원한 맥주 생각이 간절했던지라 밥상 앞에 두고 마시는 요놈의 반주는 참 맛있게 넘어갔다. 이어 맥주 속에 소주가 들어가기 시작했고 와인 한 병을 슬그머니 내온 후부터는 간만에 가족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그리고 기분 좋게 이야기를 하던 도중 내 입에서 정말 쓸데없는 단어 하나가 튀어나온 탓에 보기 좋게 울고 말았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다가 흐느꼈고 이윽고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걸 보던 가족들도 뒤따라 울었다. 남들이 보면 세상이 망했던지 줄초상이라도 난 줄 알았겠지만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정의’라는 시시껍절하고 유치한 단어를 내뱉었을 뿐인데 그게 정말 가슴을 아렸을 뿐이다.

웃으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정의라고 하면 만화영화에서나 나오는 유치한 이야기 같지만 난 진짜 세상엔 정의란 게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러니까 아무리 세상이 잘못되고 막 나간다 할지라도 그것조차 바로 나아가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어. 나 좀 모자란 애 같지. 크크” 이야기를 마친 순간 마냥 웃을 수가 없었고 최근 회사에서 있었던 불편한 일들에 술기운까지 더해진 탓에 결국 울었던 것 같다. 한참을 목 놓아 울고 괜스레 가족들까지 다 울린 후에는 오랜만에 만나 인천 연안부두에서 회나 한 접시 먹자는 약속을 고작 자느라 깨버린 못된 친구한테까지 전화해서 “너 그러는 거 아니야”라고 여러 차례 반복하며 진상이란 진상은 다 떨다 잠이 든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죽음이란 언제나 그렇게 묵직하게 다가오곤 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더 그랬다. 죽음이 그저 마지막, 돌이킬 수 없는 종착지라면 난 그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아무리 해도 돌이키거나 변화시킬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아주 절실하고도 강렬하게 느끼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 무언가를 한마디로 뭉뚱그린다면 아마 ‘정의’라는 유치한 이상론에 불과할 테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정말로 그걸 믿고 살려 했었다. 믿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아닌 걸 뻔히 알면서 나 자신을 속여 가면서까지 애써 힘들여 믿었는지도 모를 테지만, 정말로 정말로 그걸 믿었다.

그 정의란 것은 어쨌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기 충분했으니까. 좋은 영화는 반드시 평가 받을 거야, 저 따위 돈만 좇는 양아치 쌈마이 작자의 영화 따위 망할 게 뻔해, 돈과 연줄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아, 후세에는 분명 옳고 그름이 판가름 나겠지, 좋은 사람들이 승리하고 나쁜 사람들은 죗값을 치를 거야…….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표를 썼던 내 생애 최초의 회사 대표가 임금체불에 시달리는 직원들이 생활고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페라 S석에서 와인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천인공노할 목격담을 전해 들었을 때도 그건 너무 없는 살 붙은 거 아니냐며 가벼이 치부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속으로는 꼭 그가 벌 받으리라 믿었기에 애써 태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과 맞물린 시점, 나는 지금 개인적으로 또 한 차례 갈림길에 서있지만 이번엔 태연한 척 할 수 없을 것 같다.

현재 FILMON 외에 몸담고 있는 회사(그러니까 주수입원이 되고 있는 곳)는 매체를 만들어 돈을 번다기보다는 오로지 당장 돈이 되는 것만 좇으면서 그 위에 쌓인 콘텐츠들을 매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리려는 작태를 계속 진행 중이다. 잘 참아왔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최소한 ‘연예 찌라시’ 기사에 이름을 올리고 싶지 않았고 그걸 하려고 기자가 된 것도 아니었지만 점차 그에 대한 압박은 심해지기 때문에. 좋은 기사? 그런 거 필요 없다. 기사수만 많으면 되고 사람들을 낚기만 하면 그만이란다. 어쩌면 애초부터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월급 꼬박꼬박 받아봤다고 겨우 그게 발목을 붙드는 건지. 하지만 좋은 기사, 좋은 매체에 서린 진정성만은 반드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오랜 믿음을 이제 무턱대고 가져갈 수 없게 된 것만은 너무 힘들다. 두렵다. 정말로 무섭다. 내가 뽑아 당선된 유일한 대통령인 그의 죽음은 그만큼 모든 것을 흩뜨려 놓았다. 무엇이 옳은 건지 무엇이 바른 건지 그리고 그게 중요한 문제기는 하는지, 혼란스럽다. 이렇게 가신 길 명복을 빌어드려야 마땅하겠지만 원망의 마음이 더 앞서는 까닭은 그래서이다. 진심으로 그가 밉다. 정의.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처럼 다가온다. 정의 따위……. 강상준 기자(FILMON)  


연관기사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 윤전기는 잘도 도네, 돌아가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AG

TRACKBACK :: http://film-on.kr/trackback/465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www.moviejoy.com BlogIcon 무비조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필름온에 와서 기사를 보면서도 트랙백만 자주 남기고 댓글을 남기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사이트 운영하기는 했지만 실제 제대로 영화 글이라고 흉내라도 내보고
    끄적 거리기 시작한지는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이제 6개월 정도된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때 너무나 감명 받았던 키노라던지 영화사이트 중에 아직도 최고라고 생각하는 엔키노, 그리고 필름2.0, 거기에다가 씨네21까지 합치면 제가 취미 생활이라도 영화사이트를 운영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란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하는 이야기가 무슨 위로가 되겠습니까만은.. 좋은 글이란 그걸 보고 바로 바로 저처럼 글을 남기지 않더라도 언제나 관심있게 지켜보고.. 저 같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필름온에 올라오는 글은 저한테 그래서 소중하고 행복한 영화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작성하신 영화글 정말 잘 보고 있고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멋들어지게 글을 적고 싶단 열망에 사로잡히고는 합니다.

    믿음 잊지 마시구요. 항상 이렇게 신경써서 지켜보고 열심히 읽고 감명 받는 애독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앞으로도 변함 없이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끝으로 정의란 것 역시 자신이 믿는 것을 향해 조금씩 전지해야만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무엇을 믿던 그것이 올바른 길이라면 주저없이 나갈 수 있게 항상 마음에 용기와 더불어 희망찬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2009/05/27 13:24
    • Favicon of http://parandice.tistory.com BlogIcon 파란다이스  수정/삭제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대에 부합하는 글을 써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해 죄송하구요. 조금 힘이 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2009/05/27 13:43
  2. 조르바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자 입장에서 좋은 기사는 어디에 있든 빛이 나고, 진정성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 같더라고요.
    강기자님의 진정성과 매체로서의 필름온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힘내세요.

    2009/05/27 23:04
    • Favicon of http://parandice.tistory.com BlogIcon 파란다이스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힘이 납니다. 지켜봐 주시는 만큼 더욱 힘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2009/05/27 23:13
  3.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09/05/28 10:35
  4. Favicon of http://ak20.tistory.com BlogIcon 농촌총각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냅시다. 뭐 뻔한 말이지만, 힘냅시다. 가까이 있어서 못느낄 수 있지만, 함께 하면서 늘 지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정의가 무너진다는 것.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정의가 무너지는 것과는 별개라고 봅니다.
    나의 정의는 놓지 않기 위해, 지치지 맙시다..

    2009/05/28 13:10
  5. 분명..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날이 올꺼예요. 그때까지 참고 인내하고 잘 기다린다면.. 분명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요?

    2009/05/28 16:08

◀ Prev 1  ... 420 421 422 423 424 425 426 427 428  ... 740  Next ▶

카테고리

FILMON (740)
REVIEW ON (343)
FEATURE ON (121)
PEOPLE ON (86)
CULTURE ON (68)
ESSAY ON (59)
TALK ON (15)
FOCUS ON (39)
NOTICE ON (8)
CONTACT US (1)

영화웹진 FILMON

'미래'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atter & Media
Copyright by '미래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atter & Media DesignMyself!
Copyrightⓒ FILM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