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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 낯섦의 미학, 그 절정을 선보이다

REVIEW ON 2009/05/31 23:48 Posted by 농촌총각

김혜자가 춤을 춘다. 넓게 펼쳐진 갈대밭에서의 한바탕 춤사위. 누가 그녀에게 칭찬이라도 한 걸까. 아니다. 여고생 살인 용의자 도준(원빈)의 엄마에게 누가 칭찬할 리 없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웃는 것 같으면서도 찡그리고, 우는 것 같으면서도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이리저리 고개를 젓는 가운데 그녀는 관객을 응시한다. 영화 속 인물이 카메라, 즉 관객을 쳐다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그녀의 시선은 관객을 향하고, 알 수 없는 눈빛을 보낸다. 그녀는 대체 어떤 엄마일까. 작품의 오프닝에서부터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마더>의 내용은 간단해 보인다. 살인자 누명을 쓴 모자란 아들을 구하기 위한 눈물겨운 투쟁, 그리고 뜨거운 모정. 또 <살인의 추억>에서 등장한 의문의 살인사건과 범인을 추적해가는 이야기는 익숙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실제로 <살인의 추억>을 환기시키는 장면이 등장해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도준이 현장검증을 하는 장면은 <살인의 추억>에서 논에서 백광호가 현장검증을 받는 장면과 일치하고, 고개를 비스듬하게 한 형사 제문(윤제문)을 클로즈업한 것은 두만(송강호)이 시체가 있던 수로를 보는 것과 똑같다. 하지만 <마더>는 간단하지 않다. 모든 익숙한 것을 깨려고 작정한 듯한 작품이다.


먼저 캐스팅을 보자. 김혜자는 누가 뭐래도 지금껏 전형적인 ‘국민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전원일기>는 물론, “그래 이 맛이야”라고 읊조리던 조미료 광고까지. 하지만 이 작품에서 보이는 김혜자의 모습은 전혀 색다르다. 피해자의 장례식장에 찾아가 “우리 아들은 범인이 아니에요”라고 말할 때 눈빛은 섬뜩하다. (엄마 이야기는 추후 더하기로 한다. 작품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원빈도 마찬가지다. 누가 이 국가대표급 꽃미남 배우를 덥수룩한 머리에 흰색과 검은색을 헷갈리는 바보로 만들 생각을 했겠는가.

낯설게 하기는 인물들뿐 아니다. 작품의 전개과정에서 늘 새로운 공간이 등장한다. 살인 장소, 진태(진구)의 집, 피해자 아정(문희라)의 집 등. 새롭다는 것은 곧 낯선 것이 되고, 이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마더>처럼 살인과 추적이 모티브가 되는 스릴러 장르에서는 특히 그렇다. 작품에서 익숙한 공간은 엄마가 일하는 한약 창고와 경찰서 정도인데, 여기도 안전치 않다. 약방에서 그녀는 늘 도준의 사고를 목격한다. 손을 작두에 넣으면서. 도준과 작두를 보면 관객은 어느덧 불안감에 휩싸인다. 경찰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좋은 일로 경찰서를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더 큰 문제는 그녀의 편은 없다는 거다. 한 차례 홍역을 겪고 경찰서를 나오는 길에 유독 그녀만 비를 맞는 장면은 이를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물론 새로운 공간의 출현이 자동적으로 공포감을 만들지는 않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카메라 위치와 이동이다. 먼저 인물이 카메라의 정 가운데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인물은 스크린 한쪽에 있거나, 원거리에서 찍은 장면에서는 극히 작은 일부로 등장한다. 이러한 안정적이지 못한 인물구도, 공간에 압도당하는 인물 등은 시각적 불안감을 조성한다. 또 카메라 앞에 장애물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따라가는 자와 관객의 시야를 가리면서 무엇이 등장할지 짐작치 못하게 함으로써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도준이 좁은 골목에서 아정을 쫓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마더>에서는 공간이 인물만큼이나 중요하다. 작품을 보면 인물뿐 아니라 공간이 연기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이제 앞서 잠시 미뤘던 엄마에 대해 얘기해보자. 작품에서 엄마는 지극히 헌신적인 인물이다. 멀리까지 쫓아가 오줌을 갈기고 있는 아들에게 보약을 먹일 정도로 지극정성이다. 그에 비해 밥도 잘 안 먹고 엄마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도준이 오히려 비정해 보인다. 하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밝혀지는 엄마의 사연은 충격적이다(여기서 모두 밝히면 재미없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있는 장면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엄마는 도준의 친구 진태를 “근본부터 글러먹은 놈”이라며 무척 못마땅해 한다. 그런데 늦은 밤 엄마와 진태가 나누는 대화를 보면 둘의 관계가 엄마와 아들 친구의 관계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은밀한 관계를 가졌던 연인 같은 느낌이다. 이처럼 김혜자가 연기하는 엄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낯설어지고, 관객들은 충격을 받는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것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본다. 제목이 ‘엄마’가 아닌 ‘마더’인 것도 낯설게 하기의 일환이 아닌가 추측한다.


고백컨대 작품을 다 보고 생각하면 할수록 범인이 누군지 모르겠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범인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범인이 드러나는 방식은 진술과 추축이다. 만약 목격자가 거짓 증언을 했거나 작품에 드러난 행위가 단순히 그릇된 진술을 가시화 시키는 것이라면,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이는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에서 그랬듯 묘한 여운을 남긴다. 작품을 보는 내내 긴장하고, 끝났을 때에도 고민케 만드는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은 놀라울 따름이다.

봉준호 감독의 예리한 시선은 작품 사이사이 등장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에까지 뻗친다. 사건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적정한 수준에서 타협하고자 하는 권력층, 가난으로 인해 지긋지긋한 원조교제를 하는 여고생, 복지의 손길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빈민층, 그리고 ‘모자란 놈들’만 억울한 일을 당하는 현실까지. 봉준호 감독의 상상을 스크린에 재현한 홍경표 촬영감독, 류성희 미술감독, 이병우 음악감독 등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스타트렉: 더 비기닝> 같은 잘 만든 블록버스터, <그랜 토리노> 같은 감동적인 드라마 등을 보면서 한국영화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마더>를 볼 때 한국영화의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안효원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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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준표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숨죽이고 시간내내 긴장하며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원빈. 진구 아주 좋았습니다.

    김혜자님...............아 그건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영화 그 자체 엄마 그 자체......

    2009/06/01 14:37
    • Favicon of http://film-on.kr BlogIcon 농촌총각  수정/삭제

      네 저도 숨죽이고, 놀라고 했습니다.
      참 봉 감독과 동시대에 사는 게 감사합니다..^^

      2009/06/01 16:57
  2. Favicon of http://infobox.tistory.com/ BlogIcon 리카르도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에 원빈이 엄마에게 사건에 대해 몇마디 하는게..
    일종의 자백었던것 싶네요. 아마도 그 표면적 범인이 실제 범인인것 같습니다.

    2009/06/01 22:30
  3. 도시총각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태와 엄마가 은밀한 관계처럼 보이진 않던데요....

    2009/06/0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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