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레보비츠(Annie Leibovitz)라는 이름은 몰라도 그녀가 찍은 사진을 보고 감탄해본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오노 요코를 격렬하게 끌어안은 나체의 존 레논이나 만삭의 배를 훤히 드러낸 데미 무어. 이게 너무 오래전 일이라면, 디자이너 톰 포드의 옆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요염함을 뽐낸 스칼렛 요한슨과 키이라 나이틀리, 혹은 뒷모습 누드로 화제가 된 틴에이지 스타 마일리 사이러스의 사진은 어떤가.
1980년 12월 8일 존 레논이 스토커에게 총살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찍은 이 기괴한 커플 사진은 레논이 생전에 찍힌 마지막 사진으로 영원히 기억된다. 또 데미 무어의 파격적인 누드 만삭 사진은 여성과 모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새로 쓰며 이후 스타들의 ‘자랑스러운 임신 사진’을 유행시켰다. <롤링 스톤> <베니티 페어> 등 미국 대중문화를 이끌고 있는 유명 잡지의 화보를 통해 애니 레보비츠는 톱스타들이 기꺼이 렌즈 앞에 서길 원하는 스타 사진가로 부상했다. 톰 크루즈 딸 수리의 생애 첫 사진을 찍은 사람도, 스타 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역대 부인들 사진을 모두 렌즈에 담은 사람도 바로 애니 레보비츠다. 쟁쟁한 할리우드 배우들을 한꺼번에 모은 단체 사진, 유명한 그림이나 영화 장면을 오마쥬 혹은 패러디한 스타 화보는 영화 팬들의 소장욕에 불을 지핀다. 스타의 관능미를 포착한 애니 레보비츠의 사진은 언제나 보는 이를 매혹시킨다.
<애니 레보비츠: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삶>(이하 <애니 레보비츠>)은 유명한 사진작가 애니 레보비츠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공군 아버지를 따라 기지를 전전하며 자동차에서 살다시피 한 어린 시절부터 <롤링 스톤>과 운명적으로 만나 포토 저널리스트로 성장한 70년대를 거쳐 <베니티 페어> <보그>의 화보를 만들며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사진작가로 인정받기까지의 연대기가 거친 화면의 홈비디오 녹화장면, 유명인들의 인터뷰, 애니 레보비츠의 작업 모습과 완성된 사진들을 통해 펼쳐진다.
스타와 사진은 불가분의 관계다. 스타들이 연기와 노래로 예술가로서의 자질을 뽐낸다면, 사진을 통해 비로소 대중의 아이콘으로 완성된다. 사진작가와의 긴밀한 교감으로 이뤄낸 한 컷의 절묘한 사진은 스타의 이미지를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끌어준다. 애니 레보비츠는 카메라가 앞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피사체와 편안한 관계를 유지해 자연스러운 인물 사진을 탄생시키고, 에디터와 광고주의 요구를 완벽히 반영하면서도 자신만의 미학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 뛰어난 사진가로 평가 받는다.
오노 요코는 당시 풋내기였던 레보비츠가 어떻게 존 레논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회상하고,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는 자신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사진으로 남아 있는 것에 놀라워한다. 우피 골드버그는 자신을 우유가 가득 담긴 욕조에 집어넣었던 레보비츠의 사진 덕분에 인지도가 높아진 것에 고마워하며,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지사는 수십 년 전 자신의 보디빌더 시절을 카메라에 담던 레보비츠가 얼마나 용감하고 사려 깊었는지에 대해 증언한다. 그리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악명 높은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는 “니콜 키드먼 같은 스타는 애니 레보비츠 같은 스타가 찍어야 움직인다”며 격찬한다.
<애니 레보비츠>는 인기 사진작가로서 애니 레보비츠의 활약상을 보여줌과 동시에 인간적인 고뇌와 예술가로서의 딜레마도 놓치지 않는다. 일에 미쳐 몸을 돌보지 않은 젊은 시절 약물중독에 빠져 치료를 받아야 했던 아픈 기억, 소울메이트인 소설가 수잔 손택을 먼저 떠나보내고 슬퍼하는 얼굴, 어린 딸을 촬영장으로 데리고 와서 돌보는 워킹맘으로서의 모습들이 스타사진가가 아닌 자연인 애니 레보비츠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당대 사회 문화를 날카롭게 담아낸 <롤링 스톤>과 수년간 동고동락하며 날 것의 인물사진을 포착하던 레보비츠는 <베니티 페어>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철저히 꾸며진 럭셔리 화보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록 스타의 콘서트 투어에 동행하며 헝클어진 모습을 거침없이 담던 히피 처녀가 명품으로 둘러싸인 스타 화보를 만들게 되면서 르포 사진과 상업 사진 사이에서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레보비츠는 “사진은 그냥 사진일 뿐”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스타의 진솔함을 포착하려한들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 꾸며진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레보비츠는 그렇게도 열심히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카메라에 담는 것인지도 모른다. 연신 “뷰티풀”을 외치며 까다로운 톱스타의 비위를 맞추는 그녀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는 삶이 곧 포토그래퍼의 삶이라고 여긴다. 세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도 몰려드는 일거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넘치는 열정으로 촬영장을 호령하는 애니 레보비츠는 스타의 순간으로 무수한 발견과 감동을 전하는 할리우드의 위대한 기록자다.
애니 레보비츠의 친동생 바바라 레보비츠가 연출한 <애니 레보비츠>는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여성 사진작가를 다뤘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다큐멘터리라 할 만하다. 특히 <롤링 스톤>이 탄생하고 성장하던 시기 애니 레보비츠를 비롯한 구성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기록한 진귀한 영상은 <롤링 스톤> 다큐멘터리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레보비츠와 작업했던 수많은 스타들의 아낌없는 회고 인터뷰도 가치 있게 빛난다. 그러나 <애니 레보비츠>는 레보비츠의 매력적인 사진들과 스타들의 인터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어 다큐멘터리 영화로서의 작품성은 평범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애니 레보비츠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해석하지 않은 것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단지 많은 사진들을 바쁘게 나열하고 약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곁들이는 것에서 그칠 뿐이다. 레보비츠의 작품을 관통하는 사상과 미학적 성취, 외부의 평가에 대해 다뤄졌다면 더욱 완성도 있는 다큐멘터리가 됐을 것이다.
한편 극장에서 <애니 레보비츠>를 감상하게 되면 유지태 감독의 신작 <초대>가 따라온다. <초대>는 사진의 연속 배치로 이뤄진 10분짜리 단편영화로, 사진가를 다룬 다큐멘터리 <애니 레보비츠>와 ‘동반 상영’이라는 새로운 배급형태로 공개된다. 프랑스 영화 <라 제테>(1962)에 대한 오마쥬로 제작된 <초대>는 유지태가 연출, 각본, 주연을 맡았으며 상대역으로 엄지원이 출연한다. 패션지 화보를 연상시키는 사진의 나열과 허무에 찬 내레이션으로 화려한 도시 속 현대인의 고독을 표현한 작품이다. 허나 <초대>는 재미보단 실험성이 강조된 작품이다. 마치 보너스처럼, 벌써 네 번째 연출작을 발표한 유지태의 신작을 만난다는 사실에만 집중해서 감상하길. 정미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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