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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이라는 질긴 끈으로 묶여있지만 때론 그 어떤 타인보다도 소통이 적고 귀찮게 느껴지는 게 바로 가족이다. 오래된 부부는 더 이상의 대화 없이 각자의 공간에서 남은 시간을 살아가고, 장성한 자식들은 일과 결혼으로 뿔뿔이 흩어져 명절 때나 의무적으로 모여 형식적인 식사나 하게 되기 마련이다. <걸어도 걸어도>의 가족도 그렇다.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장남 준페이의 기일. 차녀 지나미(유)와 막내아들 료타(아베 히로시)의 식구들이 노부모 쿄헤이(하라다 요시오), 토시코(키키 키린)의 집을 찾는다.

자신이 바라던 직업을 갖지 않은 아들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이기적이라고 원망하는 아들, 부모에게 아양 떨면서도 자기 실속 챙기기에 바쁜 딸과 허풍쟁이 사위, 애 딸린 미망인과 결혼한 아들 때문에 속 쓰린 어머니, 그리고 새아빠를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 아이. 어떤가. 일일드라마에서 흔히 보아온 가족의 모습 아닌가.


감독 개인의 경험과 상념을 투영한 영화가 국경을 뛰어넘어 공감을 이끌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걸어도 걸어도>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며 감독 자신의 가족, 특히 어머니에 대한 세세한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전형적인 일본 소시민 가정의 시시콜콜한 하루를 진득하게 그렸을 뿐인데, 어쩜 그렇게 내 얘기 같고 우리 가족 얘기 같은지 모른다. 일본에서의 각종 영화제 수상뿐 아니라 홍콩 아시안필름어워드, 런던영화제, 토론토영화제, 바르샤바영화제 등 동서양을 넘어선 호평이 단순히 영화적 완성도에만 기인한 것은 아닐 것이다.

<걸어도 걸어도>가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는 것은 ‘어머니’다. 평생을 가정주부로 살며 살갑지 않은 남편을 묵묵히 내조하고, 자기 살길 바쁜 자식들 입에 밥 한술이라도 더 떠먹이려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할법한 ‘하찮은’ 엄마. 여기엔 금지옥엽 아들의 살인 누명을 벗기기 위해 날뛰는 엄마도, 딸의 죽음에 피눈물 흘리며 복수의 칼을 가는 엄마도 없다. 하지만 어떤 엄마라도 그러할만한 보통의 자식 사랑을 보여주면서도, 준페이의 죽음과 맞바꾼 삶을 어정쩡하게 보내고 있는 청년에 대해 보이지 않게 분노하고 둘째 료타의 의붓아들에게 철저히 거리를 두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어쩔 수 없는 혈연의 이기심이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 모성애는 너무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라 집착이나 복수보다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 급기야 집안으로 들어온 나비를 보고 준페이가 환생한 것이라며 순간의 광기를 드러내는 엄마의 모습에 이르러 영화는 예상치 못한 전율을 만들어낸다.


이렇듯 <걸어도 걸어도>엔 그 어떤 ‘마더’보다 평범하면서도 인상적인 마더가 등장한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걸어도 걸어도>를 만들었다. 제목 ‘걸어도 걸어도’도 어머니가 좋아한 노래의 가사이고, 극중 토시코가 하는 말과 요리하는 음식은 모두 실제 자신의 어머니가 했던 것이라고 한다. 히로카즈 감독이 투사된 캐릭터 료타는 앞치마와 부엌만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엄마가 먼저 간 아들을 가슴에 묻고 자신만의 소심한 복수를 실행하고 있었으며, 아무도 모르게 음악 감상의 취미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곤 자신이 그동안 어머니에게 너무 무심했던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이 가족의 균열이 섣불리 봉합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집을 나서는 자식들은 벌써부터 다음 방문의 귀찮음을 떠올리고, 부모 또한 다음엔 자식들이 어쩌면 안 올 수도 있겠다고 여긴다. 료타는 끝내 아버지와의 멀어진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아들의 차를 타고 싶다던 어머니의 작은 바람을 이뤄주지 못한다. 그렇게 부모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그때서야 비로소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죽은 가족의 묘로 향하는 발걸음을 정성껏 담아내면서 끊을 수 없는 가족의 정을 수수하게 표현할 뿐이다.

극적인 장치를 배제하고도 눈길을 잡아끌며, 철저히 냉정함을 유지하는 가운데 온기를 불어넣는 솜씨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장기다. 죽음이 남은 이들에게 미치는 고요한 파장 또한 히로카즈 영화에서만 맡을 수 있는 특별한 공기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연출에 누군가의 이야기라도 해도 될듯한 보편성으로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걸어도 걸어도>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래도록 기억될 걸작이다. 정미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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