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전주영화제 데일리로 첫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하루 수십 명의 독자들이 내심 부담스러웠다. 집에 손님이 드는데 차려놓은 것은 별로 없고, 요리도 왠지 어수룩한 것 같았다. 조금씩 집도 손보고 테이블 세팅도 연습하면서 단계를 밟자, 생각했다. 십수 명에서 수십 명으로, 백여 명에서 수백여 명으로 차근차근 방문자가 늘었다. 기사를 쌓고 앞으로 뭘 써야할지 아이템 회의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러니까 바로 어제, 예약도 없이 단체손님이 들이닥쳤다. 반나절만에 2만 6천 명이 다녀갔다. 단 하나의 글, <스피드 레이서> 리뷰 덕분이다. 한꺼풀 더 벗겨보니 다음에서 ''스피드 레이서' 열기는 만들어졌다'라는 멋지구리한 제목을 다시 붙여주신 덕분이다.(내가 써놓고도 나는 저게 제목이 될거라 생각도 못했다.) 거기다 베스트 뉴스로 척척 걸어주시니, 방문자 수가 아니 늘지 않을 수 없다. 이거 어째야하나. 다음에게 고개숙여 감사라도 드려야 하나?
그나저나, <스피드 레이서> 리뷰가 이렇게도 폭주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필름온 기자들과 머리를 굴렸다. 여러가지 원인이 나왔다. 먼저는 <스피드 레이서>가 가진 그 자체의 화제성이다. 워쇼스키 감독에 대한 기대감, 척 봐도 돈냄새가 느껴지는 화려한 볼거리, 심장을 쿵쾅거리는 카레이싱이란 소재 등. 그리고 추가된 것이 비의 출연,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마케팅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적당한 시점에 맞춰 딱딱 올라오는 다양한 기사와 리뷰들, 적당히 땡기고 적당히 밀면서 언론에서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방식, 이제 겨우 두 번째 영화에 출연하는 신인 배우 비를 영화지에서도 인터뷰해주십사 바라게 만드는 힘, 스틸 하나도 공개 시점을 안배하는 세심한 계획.
그러나 이것만으로 손님을 모았을리가! 원인을 찾다보니 플러스 알파가 되어주었을 기사와 포스트를 발견했다. 미국에서 <스피드 레이서>가 <아이언맨>을 꺾는데 실패했다는 박스오피스 소식이 도화선이 되었을 '<스피드 레이서> 참패설' 덕분이었다. 게다가 '스스로의 매트릭스에 갇힌 <스피드 레이서>' 따위의 제목으론 가당치도 않았겠지만 다음에서 손수 ''스피드 레이서' 열기는 만들어졌다'는 제목까지 붙여주셨으니, 덕분에 필름온 포스트가 엉겹결에 '<스피드 레이서> 참패설'의 선봉장이 된 게 아닌가 싶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이어지자 "그래서 <스피드 레이서>가 정말 망한거야?"라는 궁금증으로 모아졌다. 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미국 첫 주말 성적은 3606개 스크린, 2021만달러. 한국 박스오피스도 나왔나 싶어 기사를 봤더니 잠정 집계 60만 정도라고 했고 근사치를 알고 싶은 마음에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을 찾았더니 석가탄신일이라 담당자 휴무 관계로 집계가 나오지 않았다.(5월 13일 4시 기준 집계로는 전국 486개 스크린, 36만 6천 정도다.) 미국에서 저 정도 성적이면 '망한' 쪽에 가깝긴 하다. 대부분 여름 블록버스터가 첫 주말 수입이 1억 달러에 근접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한국에서도 첫 주말 성적이 썩 좋은 편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보니 필름온 같은 불순한 신생 웹진에서 <스피드 레이서> '까대기'를(했다고 하시니) 한 것이 왜 이리 많은 방문자를 기록했는지 좀 이해가 된다. 그러나 걱정들 마시라. 재밌다는 사람 붙잡고 린치를 가할 것도 아니고, 일장 연설을 할 것도 아니니까. 그냥 살짝 졸았고, 졸렸던 이유를 찾았을 뿐이니까. '다음' 덕분에 흥행에 영향을 미치게 될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재밌게 본 사람은 재밌는 영화로 남을 것이고 아닌 사람에게는 아닌 영화로 남을테니까. 게다가 워쇼스키 감독들은 한국에 이런 글이 나돌고 있다는데 관심 없을테니까. 중요한 건 재밌는 영화도 흥행이 안될 수 있고, 성공한 영화가 꼭 재밌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으니까.
덕분에 초짜 블로거 신고식 하나는 제대로 치뤘다. 쌍방향 소통이란게 이런 거였구나. 필름2.0에선 도무지 느낄 수 없었던 댓글의 향연. 방문자 여러분께 감사의 박수를! 그리고 댓글을 달 때는 좀 더 유머러스 해지자고 다짐한다. 송순진 기자(www.film-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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