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역전. 세상 모든 가난한 자들의 꿈이다. 비루한 일상을 떨쳐버리고 또 다른 세상으로 안내할 ‘한 방’을 꿈꾼다. 한국 사회 모든 이들이 ‘로또’를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단돈 몇 천 원으로 수백억의 당첨금을 받을 수 있다니, 그 사랑은 나라님에 대한 것보다 컸다. 비록 인기는 시들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한 방을 로또라 부른다. 근데 이런 욕망을 우리는 희망이라 부를 수 있을까? 여기 화장실 하나로 삶을 바꾸려는 사내가 있다. 잠시 그의 화장실을 들여다보자.
우루과이의 작은 마을 멜로에 사는 비토(세자르 트론코소)는 국경을 넘나들며 밀수를 해 생계를 유지하는 가장이다. 밀수라 하여 마약이나 무기 등 거창한(?) 것을 취급하는 건 아니다. 식료품, 생필품이 고작으로 이윤이 많이 남을 리 없고, 비토는 늘 더 나은 삶을 꿈꾸게 된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고민을 하던 어느 날, 비토는 이웃 주민들이 교황 요한 바오르 2세의 방문에 맞춰 엄청난 먹을거리 장사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바로 화장실. 먹을 게 있으면 비울 곳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비토는 인생을 건 ‘화장실 건립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작품의 이야기는 비토가 화장실을 지을 수 있느냐,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을 이용해 인생역전을 이룰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에피소드도 화장실을 짓기 위한 가족과의 갈등과 화합, 불의와 타협하는 비토의 모습으로 이뤄진다. 근데 먼저 비토의 행위가 헛된 욕망인지 아니면 희망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약 헛된 욕망이라면 이뤄진다 해도 유쾌할 리 없으며, 희망이라면 실패하더라도 그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토가 화장실로 번 돈으로 사고 싶은 것은 요트나 큰 빌딩이 아니다. 그가 사고 싶은 것은 오토바이 한 대로, 조금 편하게, 조금 더 안정적으로 자신의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 이는 로또 한 방으로 모든 일을 그만두고 화려하고 편안한 삶을 부추기는 광고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또 그는 시골 마을을 떠나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 딸의 꿈을 이뤄주고 싶어 한다. 몇 대째 변하지 않는 힘겨운 삶, 그 가난을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이처럼 비토의 꿈은 의외로 소박하다. 물론 그 꿈이 깨졌을 때 일정한 타격은 있겠지만 그것이 그의 삶을 파멸로 몰아갈 정도의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꿈을 욕망이 아닌 희망이라 부를 수 있다.
희망을 얘기하고 있기에 <아빠의 화장실>은 우리와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 비토와 딸의 이야기는 부녀의 공감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절실하게 보여준다. 애초 둘은 썩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비토는 아나운서가 되려는 딸의 꿈에 싶게 동의하지 못했고, 딸은 늘 같은 모습으로 사는 아버지의 삶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또 딸을 위해 어머니가 모아둔 돈을 화장실 짓는데 쓰자는 비토의 말에 분노와 절망을 동시에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화장실 건립 프로젝트를 위해 한 몸 아끼지 않는 비토의 모습을 보며 딸은 자신의 꿈을 유예시킬만한 공감을 느끼게 된다. 왜? 그들의 마음이 모두 진실된 것임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판단착오로 실수를 할 수 있지만, 공감하고 있기에 서로를 용서할 수 있다.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교황의 방문 하루 전 주민들이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장면이다. 언론에서는 교황 방문을 맞춰 수만, 수십만의 인파가 몰려들 것을 예상하고, 주민들은 대출을 받아 엄청난 양의 먹을거리를 준비한다. 몇날 며칠을 밤새워 준비한 음식들, 이제 곧 닥쳐올 운명의 시간. 그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 어떤 종교보다 숭고하다. 우리는 희망과 구원을 멀리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빠의 화장실>은 말한다. 희망과 구원은 우리네 삶 속에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1988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그 만듦새 또한 우리의 일상과 닮아 있다. 화려한 볼거리나 오감을 자극하는 에피소드는 없지만 소소한 사람들의 모습이 따뜻하다. 비토와 그의 절친 ‘깜씨’가 펼치는 자전거 경주 장면은 삶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또 간간히 드러나는 남미의 이국적인 풍경과 음악이 눈과 귀는 물론 마음까지 훈훈하게 만든다. 세자르 샬론, 엔리케 페르난데스 감독이 만든 <아빠의 화장실>은 조미료 뺀 담백한 맛이 썩 괜찮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단 전국 2100개가 넘는 스크린 중에서 이 작품을 상영하는 곳이 단 ‘한 곳’밖에 없다는 현실은 안타깝다. 안효원 기자(FILMON)
<아빠의 화장실>은 남미 영화다. 세자르 샬론, 엔리케 페르난데스 감독이 공동 연출한 이 작품은 가족의 따뜻함과 함께 남미에서 부패한 권력과 설레발치는 언론들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부패한 권력은 부패하고 무능한 언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영화에서나마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게 해준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하이퍼텍나다에서 개봉한다는 소리는 들었고, 다른 데서도 개봉할 줄 알았는데..
2009/06/29 20:02단관 개봉인 건가요 -ㅅ- 킁;; 그 많은 극장 수 중 한 곳이라니.
느낌이 좋습니다. 꼭 보러 갈 거에요! > </
단관개봉 맞습니다.^^
2009/06/30 09:26어제 보니 트랜스포머 2 상영한 스크린이 1174개라는데.. 쩝.
제 기억으로는 최고입니다.
기사를 읽다보니 아빠의 고군분투가 생각나서 또 눈물이 납니다.
2009/07/01 22:40나름 끝은 유쾌한...재미와 감동과 슬픔과 모든게 다 버무려져 있는 영화예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네. 저도 마지막에 카메라에 잡힌 비토의 모습이 정말 짠했어요. 에구. 저도 많은 분들이 보면 좋겠네요..^^
2009/07/02 09:57